강물에 떠가는 빈 배처럼 삽시다.

2023. 3. 14. 22:38잠언과 수상록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모두가 꿈속의 일인 것을

저 강을 건너가면

누가 너이고 누가 나인가

누구나 한 번은 저 강을 건너야 한다

나 또한 다를 바 없어

곧 바람 멎고 불꺼지리라

꿈속의 한 평생을 탐하고 성내면서

너다 나다 하는구나.

 

위의 시는 경허선사의 말씀이다.

죽음 앞에서는 사랑과 미움도, 선함과 악함도

옳은 것과 그름도 의미가 없다. 공허하고 부질없는 일들이다.

그러나 사는 동안 이 부질 없는, 공허한 것들 때문에

갈등이 생기고, 갈등이 번뇌가 되어 마음이 병들게 된다.

 

선가(禪家)의 교본으로 불리는

<신심명(信心銘)>의 첫구에 이른 말이 있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오직 간택함을 꺼리 뿐이다(至道無難 唯嫌揀擇).....

어긋남과 따름이 서로 다툼은

이는 마음의 병이 될 뿐이다.(違順相爭 是爲心病) 」

 

간택(揀擇)이란 분별(分別)함을 의미한다.

분별함을 꺼린다는 말은 그 마음을 <버린다>,

<비운다> 라는 의미다.

인간의 삶은 백명이면 백명 모두가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다.

그래서 애증(愛憎), 시비(是非), 선악(善惡) 등의 갈등이 생기고

그 갈등으로 마음의 병이 생기고 번뇌가 된다.

이는 따지고 보면 모두 상대적인 것들로부터

분별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나>가 있기 때문에 <너>가 있는 것이다.

<나>가 사라지면 <너>도 사라지는 것이다.

상대가 없다면 갈등이 야기 될 수 없는 것이다.

불교에서의 선(禪)은 <공(空)>의 수행이다.

마음의 비움을 닦는 수행인 것이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降伏其心(항복기심)」도

곧 마음의 비움을 의미하는 다른 표현인 것이다.

 

두물머리에서

마음의 비움에 대한 장자(莊子)의 유명한 이런 이야기가 있다.

 

「“배로 강을 건널 때 빈 배가 떠내려와서 자기 배에 부딪치면

비록 성급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배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면 비키라고 소리친다.

한 번 소리쳐 듣지 못하면 두 번 소리치고

두 번 소리쳐서 듣지 못하면 세 번 소리친다.

세 번째는 욕설이 나오게 마련이다.

아까는 화내지 않고 지금은 화내는 까닭은

아까는빈 배였었고 지금은 사람이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모두 자기를 비우고

인생의 강을 흘러간다면 누가 그를 해칠 수 있겠는가?“」

原文: 莊子 外篇<山木>中 虛舟

方舟而濟於河,有虛舟來觸舟,雖有惼心之人不怒.

有一人在其上, 則呼張歙之.

一呼而不聞, 再呼而不聞, 於是三呼邪,

則必以惡聲隨之. 向也不怒而今也怒, 向也虛而今也實.

人能虛己以遊世,其孰能害之

 

*편(惼) 좁을 편, 마음이 너그럽지 못함

*흡(歙) 줄일 흡.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바보가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마음의 근원을 찾아 순연(順緣)하는 자가 된다는 의미다.

모든 분별을 떠나 흘러가는 강물에 떠가는 빈 배가 되는 것이다.

흘러가는 강물은 세상이요, 빈 배는 그대가 되는 것이다.

 

분별을 떠난 마음이란 곧 「父母未生前」의 마음이다.

원효대사는 <금강삼매경논>에서 이렇게 말하신다.

「대개 一心의 근원은 유*무를 떠나서 홀로 깨끗하며,

三空의 바다는 眞俗을 융합하여 담연(湛然)하다.

담연함으로 둘을 융합하였으나 하나가 아니요,

홀로 깨끗함으로 변(邊)을 떠났으니 중(中)이 아니다.

중이 아니지만 변을 떠났으므로 유(有)가 아닌 법이라 해서

곧 무(無)에 머무르지도 않고,

무(無)가 아닌 상(相)이라 해서 곧 바로 유(有)에 머무르지도 않는다.

 

하나가 아니면서 둘을 융합시켰기 때문에

진(眞: 세상을 벗어난 법)이 아닌 사(事)가

일찍이 속(俗:세상 법)이 된 것도 아니요,

속이 아닌 이치가 일찍이 진(眞)이 된 것도 아니다..

둘을 융합시켰으면서도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진속의 성(性)이 성립되지 않는 것이 없고

염정(染淨)의 상(相)이 두루 갖추어지는 것이다.

변을 떠났으면서도 중이 아니기 때문에

유무의 법이 지어지지 않는 것이 없고

시비(是非)의 뜻이 모두 포섭되는 것이다.」

 

산청 겁외사

강물에 떠가는 빈 배처럼 삽시다.

 

 

마음을 비우고 사세요.

분별은 부질없는 질문이에요.

思念은 또 다른 思念만 낳을 뿐이에요.

어두운 미로(迷路) 같은 골목길도

청보리 익어가는 푸른 들판도

머물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생각의 여울도 그렇게 흘려보내세요.

삶이란 공수래 공수거 아니든가요

강물에 떠가는 빈 배처럼 살다 가세요.

빈 마음으로 살다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