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인심(直指人心)이라

2020. 1. 9. 23:06잠언과 수상록

직지인심(直指人心)이라

 

자기 생각을 쫓아다니는 것은 주인이 던진 막대기를 찾으러 가는 개가 되는 것이다.

개가 되지 말고 사자가 돼라. 사자의 시선은 막대기가 아니라 막대기를 던진 주인을 향한다.

 

이는 시다(Siddha)라고 불리는 티베트 최고의 성자들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가장 사랑받았던 인물로 추앙되었던 밀라레파(Milarepa)의 말이다.

밀라레파는 불행히도 그를 시기하는 승려에게 독살당하여 84세에 생을 마감하신 분이다.

 그의 생몰연대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1028~1111, 1040~1123, 1052~1135 등등).


(계림 상공산)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은 자기의 생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그런 문제가 아니지만,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삶은 자기의 생각을 따라 살다 가는 것이다.

자기의 생각 없이 어떻게 남의 생각으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당연히 이런 반문이 따를 수 있다.

밀라레파의 말은 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분별 망상을 넘어 본질을 직시(直視)하라는 의미다.



자기의 생각이란 객관의 세계에서 형상화된 주관의 세계다.

 객관의 세계는 참으로 다양하다.

객관의 세계가 다양함으로 주관의 세계가 또한 다양하게 된다.

 千江流水千江月이다.

욕망, 욕심, 愛憎과 부귀공명은 물론, 理念思想

모두가 객관의 세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어떻게 경계를 넘어 본질을 바라볼 수 있을까?

(고려산) 

선어(禪語)에도 이런 말이 있다.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 전처실능유(轉處實能幽)

수류인덕성(隨流認得性) 무희역무우(無喜亦無憂)

마음이 만 가지 경계를 따라 굴러가니 그 굴러가는 경계가 참으로 그윽하다.

(그러나) 흘러가는 그 경계를 따라 본성을 깨달으면 기쁨도 슬픔도 없다는 의미다.

경계란 기쁜 것도 슬픈 것도 아니다. 경계는 희비애락(喜悲哀樂)이 없다.

그 희비애락을 느끼는 것은 단지 우리의 마음일 뿐이다.


(관곡지 수련) 

밀라레파의 말은 선어(禪語)에 이르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보라는 말과 같은 의미다.

자기 생각을 쫓아다니는 다는 것은 현상에 세계에 머물러

진실을 바로 보지 않고 허망한 망상분별을 쫓는다는 의미다.

경계에 따라 마음이 굴러가는 것이다.

사자가 되라는 의미는 형상에 집착하여 매달리지 말고 실체를, 진실을 바로 보라는 의미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현상의 세계란 보이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가 실체가 아니다.

눈앞에 보이는 현상의 세계란 있는 것 같으면서도 실체가 없고,

실체가 없는 것이 눈앞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경계의 실체다.

경계란 비유(非有), 비무(非無)도 비유비무(非有非無)인 것이다.


(월출산 도갑사

우리가 보고, 느끼는 현상의 세계란 분별 망상에 따른 나의 주관적인 세계일 뿐이다.

경계가 있으므로 주관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선()의 귀감으로 여기는 신심명(信心銘)의 첫 귀도

 지도무난(至道無難) 유혐간택(唯嫌揀擇)으로 시작된다.

 도에 이르는 길은 어렵지 않다. 다만 간택심을 버리라는 의미다.

간택심(揀擇心)이란 곧 분별 망상이다.

이로 인해 시시비비(是是非非)가 일어나고,

()불호(不好) 가 일어나고 애증(愛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백양사)  

간택심을 버린다는 것은 분별 망상이란 진실된 자아(自我)를 가리는 껍질을 벗어버리는 것이다.

나무는 한겨울을 지내기 위해 여름 한 철 키운 그 무성한 잎들을 떨구어버리고

 추위와 눈비를 이기려고 껍질을 두껍게 하여 보호막을 치듯

 사람도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을수록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인식과 분별이란 껍질로 보호막을 두껍게 치는 것이다.

그 보호막이 바로 분별 망상이다.

나를 보호하기 위한 세속의 지식과 사념, 탐욕과 이기심,

시시비비와 편애심, 애증의 아집 등이 분별 망상인 것이다.

더 나아가 세월의 무게를 느낄 나이를 먹으면,

 죽음을 생각하여 그것을 대비하고자 그 분별 망상의 껍질은 더욱더 두꺼워져 생각은 배타적이고,

더 고루화 되고, 끝내 속된 말로 꼰대가 되는 것이다.


(와우정사)

우리의 생각이란 시간을 통한 얻어진 과거의 경험과 오감으로 얻어진 지식과

생각이 쌓여 모여진 것이 전부다. 이것들이 분별 망상의 실체다.

이 분별 망상이 참된 자아(自我)를 돌아보는 눈을 가리는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간택심을 버리라는 의미는 진실을 가로막은 분별 망상이란 그 껍질을 벗어버리는 것이다.

 일체 경계를 놓아 버린다는 의미이다.

경전의 말을 빌리면 육진(六塵)을 놓아 버리는 것이다.

일체 경계는 기뻐할 대상도 슬퍼할 대상도 아니다.

청산녹수(靑山綠水)를 노래하지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일뿐이다.

삶도 그렇다. 기쁘다. 슬프다, 하는 것은 단지 우리의 마음이 일구어 놓은 망상일 뿐이다.

그래서 선사들은 경계를 따라 흘러가면서 그 실체를 깨달으면 기쁨도 슬픔도 없다고 한 것이다.

(남이섬) 

삶이란 나이가 들어 돌아보면 사실 지나간 그 날의 기쁨도, 슬픔도

, 사랑도 미움도 한갓 푸른 하늘에 떠도는 흰 구름과 같이 허망함 것임을 알게 된다.

일어났다 사라지는 구름과 같은 이 인생사.

서산에 해지니 동산에 달이 올라오듯

삶의 굴레는 그렇게 굴러가지만 괜스레 우리의 마음만 분주했을 뿐이다.


(남이섬) 

돌아보라. 걸어온 인생길. 마음을 내려놓으면 무엇이 남던가.

마음의 의구심이 살아지면 무엇이 보이는가.

 

흰 구름 맑은 바람 절로 오가고

서산에 해지니 동산에 달이 뜰 뿐인 것을.

 

白雲淸風自去來(백운청풍자거래)

日落西山月出東(일락서산월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