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말이 돼? 안 돼? (제1화) 구마라집 이야기

2023. 1. 29. 21:55경전속의 우화들

 

구마라집(鳩摩羅什 344-413)은 구자국(龜玆國) 사람이다.

구자국은 지금의 쿠차(庫車) 지역이다.

구마라집은 <중론>, <백론>, <반야경>

35348권에 달하는 방대한 산스크리트 불교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한 4대 역경가들 가운데 한 분으로

삼장법사로도 유명한 분이다.

그러나 그의 출생 내력은 참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전해 온다.

 

판교출토 비로자나불 좌상

구마라집의 조부는 구마달다(鳩摩達多)로

대대로 천축국의 재상으로 지낸 명문가이며

그의 부친 구마염(鳩摩炎) 또한 대대로 재상가인 명문가의 후손답게

천부적으로 총명했고 지조도 높아

부친의 뒤를 이어 재상으로 추천될 정도였다.

그런데 구마염은 이를 사양하고 출가(出家)해서

동쪽으로 파미르고원을 넘어 구자국 건너가

그곳에 머물며 수행을 하고 있었다.

당시 구자국의 왕은 구마염이 출가하여 구자국에 왔다는 소문을 듣고는

직접 나아가 영접하고 국사(國師)가 되어줄 것을 간청했지만

구마염은 거절하고 수행에만 몰두했다.

 

청두 가무쇼에서

 

그런데 구자국의 왕에게는 갓 20세가 된 누이동생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집(什, jīva)이다.

집은 미인인데다 금상첨화로 총명까지 하여

구자국의 내로라 하는 명문 자손들이 몰려들어 청혼을 넣었지만

모두 거절하였는데 인도에서 온 구마라염을 보자 첫눈에 반해버렸다.

그러나 출가한 승려는 결혼을 할 수 없게 되자

여러 방편으로 설득해 보았지만 성사되지 않아

결국 왕권을 이용해 강제로 환속시켜 결혼하게 된다.

구마염과 집의 결혼으로 둘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바로 구마라집이다.

 

그런데 집은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은 후에는

이번에는 자기가 출가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여러 번 간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아들 구마라집이 7세 되던 해 집은 아들 구마라집과 함께 출가해 버렸다.

아니, 싫다는 승려를 강제로 환속시켜 결혼할 때는 언제고

아들까지 낳고는 이제 자기가 출가해서 비구니가 되겠다고 하니

이게 말이 돼, 안 돼? 이거 내로남불 아닌가.

 

남이섬에서

 

결과만 좋으면 과정이 어떠하듯 좋다는 말인가.

하긴 권력을 이용해서 자기 며느리를 후궁으로 취한 당나라 현종도 있지만….

색욕(色欲)은 인간의 본성이라 어쩔 수 없는가 보다.

 

그래서 색욕을 이기는 것은 수행자로서는 더욱 힘든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 부처님은 말씀하시길

「거시기가 하나인 게 다행하지

둘이 였다고 도 닦을 사람 하나 없을 것이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는 내가 한 말이 아니고《사십이장경》에 나온 말이다.

 

송성 가무쇼에서

그런데 역사를 보면 대개 남자가 여자를 유혹하여 취하는 데

그 반대의 경우도 없지 않다.

먼 나라의 이야기도 아니고 조선의 풍습도 있으니 말이다.

늙은 과부들이 모여 백상계(白孀契)란 묘한 계를 조직하여

젊은 남자를 남의 밭에서 토마토와 오이 등을 서리하듯 보쌈하여

곗날 낙찰자에게 상으로 하사하였는데 이에 그치지 않고

젊은 나이에 청상과부가 여인들도

청상계(靑孀契)을 조직하여 남자를 서리했다고 한다.

 

상하이 주가각에서

여자가 남자를 서리하듯 취하는 풍습은

중국의 한 소수민족에서 지금도 볼 수 있다

시쳇말로 한다면 자유부인이라고 할까.

 

중국 윈난성(雲南省)의 고도 리지앙이란 지역에 루구호(瀘沽湖)라는 호수가 있다.

이 호수 주변에는 살았던 모계사회 전통을 지키는

모수오족(摩浚族)의 이런 이야기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는데

코로나 이전에는 한국 관광객도 호기심으로 많이 방문하고 있다.

이곳은 중국의 55대 소수민족에도 속하지 못한

15,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며

이곳은 여자가 가장(家長)이기 때문에 모든 재산권과 양육권을 가지고 있으며

따로 결혼이라는 제도 없이 여자가 맘에 드는 남자를 골라

잠자리만 같이한다고 한다. 쉽게 말해서 하룻밤 짝짓기를 하는 것이다.

 

운남 민속촌에서

성생활은 있어도 가정이나 애정이라는 정해진 규정이나

규범이 없으므로 여자의 부름을 받지 못하는 남자는

옛날 궁중의 후궁들이 황제의 부름을 기다리듯

여인들이 눈길 주기를 바람뿐이었다고 한다.

여인의 눈길을 받지 못하면 평생 총각딱지를 못 떼고

노총각으로 살아야 한다. 이곳은 여인들은 황제인 셈이다.

시세 말로 하자면 완전 자유부인이다.

그래서 모수오족 여자에게는 남편이라는 단어가 없고

아이들에게는 아버지 대신 삼촌이라는 단어만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짝짓기한 파트너가 두루두루 많았던 모양이다.

하긴 지금도 아랍의 대부호들은 많은 첩을 두었는데

그 거느린 첩의 소생이 너무 많아 이름을 다 붙이지 못하고

1호, 2호 3호로 식으로 이름을 짓고 있다나….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이게 말이 돼?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