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추조사(秤錘祖師) 이야기

2023. 2. 5. 10:41경전속의 우화들

 

중국 운남(雲南)에 칭추조사(秤錘祖師)란 분이 있었는데

명나라 때 사람으로 성은 채(蔡)씨이고

곤명(昆明)의 소동문(小東門) 밖에서 살고 있었다.

 

중국 용석제천 다랭이마을

 

채 씨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전답과 재산이 많아

부족함이 없었지만 검소하게 살았다.

틈틈이 채소를 가꾸어 시장에

내다 팔아  용돈까지 넉넉하게 챙기면서 살았다.

그런데 채(蔡)씨의 아내는 용모가 아름다웠지만

게으르고, 놀고먹기만 좋아했다.

거기다 얼굴값 한다고 끼가 있어 남편 몰래

동네 건달과 눈이 맞아 바람까지 피우곤 했다.

채(蔡)씨는 비록 그 사실을 알았지만 모르는 체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된다고 점점 간이 커진 아내는

남편이 채소를 팔러 시장으로 나가기만 하면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아예 그 건달을 집으로 데려다 놓고 놀아나곤 했다.

 

중국 계림

 

그러던 어느 날 채(蔡)씨는 일찍 일을 마치고

술과 고기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도 건달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아나든 아내는

뜻밖에 일찍 돌아온 남편을 보고 어쩔 줄 몰라 당황한 나머지

건달을 침대 밑에 숨기고 남편을 맞이했다.

채 씨는 아무 말 없이 부엌으로 들어가 요리를 만들었다.

그의 처도 시치미를 뚝 떼고 남편을 도왔다.

음식이 다 되자 아내는 두 사람분의 수저를 놓았다.

그러자 채 씨가 하나 더 놓으라고 했다.

영문을 모르는 아내는

「우리 둘뿐인데 웬 수저를 세 사람분을 놓아요?」

「응, 내가 손님 한 분을 초대했거든.」

아내는 더 말을 잇지 않는 게 좋겠다 싶어 더 묻지 않았다.

방으로 돌아가자 채 씨는 점잖게 말했다.

「밑에 계신 분 나와서 식사하세요?」

그렇지 않아도 내심 불안해하던 아내는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시치미 뚝 떼고 모르쇠로 나가렷다 사태를 직감하고는

「애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하는 생각으로

침대 밑에 숨어있는 그 건달을 불러냈다.

침대 밑에서 얼굴이 사색이 되어 나온 건달.

그런데 호통을 칠 줄만 알았던 남편 채 씨가 술을 권하지 않는가.

「혹, 이 잔에 독을 타서 나를 죽이려는 것이 아닐까?」

겁이 난 건달은 잔 받기를 주저주저하자

채 씨가 먼저 잔을 마시자 그때서야 잔을 받았다.

냉랭한 분위기였지만 술과 안주로 몇 순배 돌리고 나서

상을 물리더니 채 씨가 건달에게 머리를 땅에 대며 삼배를 올리지 않는가.

그리고 입을 열었다.

 

곤명 민속촌에서

 

「오늘은 좋은 인연을 만났습니다.

제 처는 아직 젊은 데 아무도 제대로 돌보는 사람이 없어

고민하고 있었는데 당신이 돌보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보답으로 저의 모든 전답과 처를 당신에게 드릴 테니 부디 받아주십시오.」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요절내지 않은 것만 해도 감지덕지(感之德之)한 데

재물과 자기 여인까지 내주겠다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인가? 아니면 나를 떠보는 것인가?

이리저리 생각을 짜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잘못 대답했다가는 무슨 낭패를 당할지도 몰라

그저 아연해 있는데 채 씨가 칼까지 들이대면서

거절하면 죽이겠다고 윽박질렀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니 미친 소리 같지만 손해될 것도 없어

못이기는 척 수락해도 될 듯도 싶었다.

건달은 빨리 이 장소를 모면해보고 싶어 그러겠다고 고개를 꺼덕꺼덕했다.

 

곤명 민속촌에서

다음날 날이 밝자 채(蔡)씨는 어젯밤 자기 말대로

모든 것을 남겨두고 홀몸으로 집을 나와 장송산(長松山)으로 가서

서림암(西林庵)에서 출가했다.

그리고 그 암자에서 틈틈이 채소 농사를 지어가면서

일심으로 수행에 수행을 쌓아갔다.

공부에 진전이 있는지 마침내 한 소식(깨달음)을 얻었다.

 

곤명 운남 민속촌에서

한편 밤길에서 횡재한 격으로 재물과 여인까지 얻은 건달은

옛 습성 그대로 채 씨의 재산으로 호의호식으로 질탕 놀고먹는 바람에

그 많은 재산을 탕진하고

끝내 얻은 아내까지 구박을 주더니 내쫓아 버렸다.

빈 몸으로 거지가 되어 쫓겨난 채 씨의 마누라는

후회막급이지만 이미 자기가 스스로 저질은 일이라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는 처지다.

재산도 잃고, 기둥서방이라 좋아했던 새 서방에게

소박까지 당하고 보니 갈 곳이 없다.

그래도 믿고 의지할 곳은 한때 살을 맞대고 살았던

전 남편이라 생각하고 울며 용서를 구하면

그래도 옛정을 생각해서 받아주겠지 하는 한 가닥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채 씨가 늘 즐겨 먹든 곤양(昆陽)의 금사잉어를 요리하여

그가 머물고 있다는 서림암을 찾아갔다.

 

채(蔡)씨는 그의 아내가 들고 온 금사잉어를 받고는

<그대가 주는 것이니 받기는 받지만,

이 고기는 내가 가지고 가서 방생(放生)하겠네> 라고 했다.

 

그의 처는 놀라서

「이 금사잉어는 귀한 고기이긴 하지만

이미 삶아버려서 발생을 못 합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채 씨가 강으로 가

그 고기를 강물에 놓아주자 다시 살아나지 않는가.

지금도 곤명의 흑룡담(黑龍潭) 고적(古蹟)에는

이 고기(금사잉어)가 살고 있다고 한다.

 

광저우 봉황성에서

 

여기 인용된 고사는 속인(俗人)이었지만

재물, 처자식, 부귀 등을 놓아 버릴 수 있었기 때문에

도를 닦아 성공할 수 있었다는

전장(典章)에 나온 이야기를 중국의 허운(虛雲:1840~1959) 선사가

<방편개시(方便開示)>에 인용한 이야기로

이를 다시 <여시아문>에서

대성 스님이 옮겨 놓은 것을 재편집했음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