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계룡산 신원사 산내 암자 순례3) 공주 계룡산 고왕암
2022. 7. 27. 00:27ㆍ국내 명산과 사찰
금룡암을 순례하고 고왕암으로 향한다.
고왕암은 신원사에서는 900m 정도,
금룡암에서는 400m 정도 거리에 불과한 가까운 거리지만
신원사에서 소림원이나 금룡암 가는 길과 달리
고왕암 가는 길은 바위 너들길이다.
극락교를 지나 계속 나아간다.
계룡산 고왕암(古王庵)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6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인 공주 계룡산 신원사의 산내 5개 암자 중 하나로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왕자 융(隆)과 인연이 깊은 암자이다.
창건역사를 보면 고왕암은 660년(의자왕 21)에 창건하였고,
1419년(세종 1)에 서함(西函)이 중건한 이후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가 1928년에 청운(淸雲) 이후
여러 번 중건을 거듭해 오늘에 이른다.
암자의 이름을 고왕(古王)이라고 한 것은
공주읍지에 의하면 의자왕이 암자 창건을 지시했지만
완공되지 못하였는데 삼국 통일기 당나라 소정방(蘇定方)과
신라 김유신(金庾信)이 백제를 침공했을 때,
백제의 왕자 융(隆)이 나당연합군을 피해 이곳에 피신해 있다가
결국 사로잡혀 갔다고 한다. 이후 왕자가 머물렀던 암자라 해서
옛 고(古)자를 붙여 고왕암이라 이름 지었다 고 전한다.
고왕암(古王庵)의 古자는 옛적에 머문다는 뜻으로
자원으로 보면 古事, 故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주요 전각은 극락전, 백왕전, 산왕각과 요사채가 있고,
암벽에 마애약사여래입상과
극락전 뒤편 절벽에 석비를 조성한 누각이 있다.
극락전
극락전은 고왕암의 본당으로 선원사를 바라보고 있다.
옛 편액은 <고왕암>이었는데 법당을 보수하면서 요사채로 옮기고
극락전이란 편액으로 대치한 것이라고 한다.
법당 수미단에는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관음보살을 좌협시로,
대세지보살을 우협시로 봉안되어 있다.
양쪽 벽에는 칠성탱, 독성탱과 지장탱이 봉안되어 있다.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관음보살을 좌협시,
대세지보살을 우협시로 봉안하고 있다.
아미타불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칠성탱
독성탱
지장탱
극락전 뒤 절벽에 움푹 팬 이 굴은 고왕굴로 여겨지며,
그 앞에 조성된 누각형의 건물 안에는 2기의 석비가 있지만,
마모가 심해 판독할 수 없다.
옛적에는 칠성군의 신위를 모신 삼성각이라 불렸다고 하는데
별도 석비도 편액도 없어 확인할 수 없다.
누각의 좌측 바위 옆에는 한 사람이 겨우 좌정(坐定)할 수 있는
작은 굴이 보이는데 이를 원효굴이라고 한다.
고왕암의 창건 시기를 사찰 안내서대로 본다면 660년이고,
원효대사(617~686년)는 이미 이때 불도를 성취하고
다양한 포교 활동을 펼치는 시기인지라
어떤 연유로 이곳에서 수도했는지는 다소 의문이 가지만
원효굴의 이야기는 전설로 보면 족할 것 같다.
극락전 뒤편 암벽 사이로 흘러내리는 석간수(石間水),
푸른 이끼까지 서려 있다.
시리도록 청량한 물맛은
무상(無常)한 흥망성쇠의 번뇌를 씻어내리는 듯.
마애약사여래입상
백왕전 옆 암벽에 조성된 마애약사여래입상은
최근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천개(天蓋)를 한 약사여래의 외손에는 약함을 들고 있고,
구름무늬의 연화대좌 위에 조성되어 있다.
마애불이 있는 암벽 위에는 우람한 소나무 한 그루가 유독 눈길을 끈다.
백왕전
백왕전(百王殿)은 백제 제1대 온조왕부터 마지막인 31대 의자왕과
그의 태자 풍(豊), 왕자 융(隆), 충마(忠馬)의 신위(神位)를 모신 사당이다.
신위 뒤편 좌측에는 지장보살과 관음을 협시로 아미타탱이 걸려 있고,
우측에는 아미타경이 봉안되어 있다.
그 앞에는 법고가 놓여 있다.
벽에는 관음탱과 지장탱이 걸려 있고,
<이언절려(離言切慮)합물연생(合物緣生)>이라는
화제가 쓰인 그림이 한 폭이 걸려 있다.
알름알이를 내려놓아야
만물 그대로 합일한다는 의미인가?
@<삼국사기> 백제본기 기록에 따르면
공산성(공주)마저 힘없이 무너지고 의자왕과 태자 효(孝),
왕자 태(泰), 융(隆) 그리고 대신과 장군 88명,
백성 1만 2800명이 당나라로 끌려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백왕전 신위에 등재된 태자 풍(豊)은
태자가 아니라 의자왕의 왕자다.
백제 멸망 후 백제 부흥사를 보면 왕족 복신과 승려 도침이
일본에 가 있던 왕자를 모셔온 분이
바로 부여 풍(豊)이라고 역사는 전하고 있다.
충마(忠馬)는 왕자 융의 애마(愛馬)를 의미한다.
고왕암 위쪽에 있었다는 마명암(馬鳴庵)의 전설에 따르면
왕자 융(隆)이 신라군에게 잡혀가는 모습을 보고
왕자 융의 애마(愛馬)가 슬피 울다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이를 기리기 위해 마명암이라는 암자를 지었지만,
지금은 찾을 길이 없다. 백왕전 신위에서 충마(忠馬)를 올린 것은
백제 멸망의 슬픈 역사와 함께 미물이지만 이를 기리고자 함이 아닐까.
산왕각
백왕전 뒤편에 조성된 산신각이다.
백왕전 뒤편 이길은 연천봉 아래 등운암 가늘 길이다.
~제4부 등운암으로 이어진다~
'국내 명산과 사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주 계룡산 신원사 산내암자 순례5) 공주 계룡산 보광원 (0) | 2022.08.05 |
---|---|
(공주 계룡산 신원사 산내암자 순례4) 공주 계룡산 등운암 (0) | 2022.07.31 |
(공주 계룡산 신원사 산내암자 순례 2) 공주 계룡산 금룡암 (0) | 2022.07.22 |
(공주 계룡산 신원사의 산내 암자 순례 1) 계룡산 소림원(小林院) (0) | 2022.07.19 |
불암산 석천암(石泉庵) (0) | 2022.0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