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서광사

2022. 7. 2. 20:34문화재

 

서산 죽사(竹寺)를 탐방하고 돌아 나오는 길

서광사라는 이정표가 도로변에 보여

귀경길에 호기심 삼아 잠시 둘러보았다.

 

 

서광사(瑞光寺)는 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 556번지에 있는 절로

마을에 인접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서산에서는 시내에서 가까워 접근하기가 쉬워

많이 알려진 사찰로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 소속이다.

사찰 안내서에 의하면 신라말인 928년(경순왕 2)에

대경대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여기서 말한 대경대사(大境大師)가

신라말에서 고려 초기에 활동한

성주산문(聖住山門)의 대경대사 여엄(麗嚴: 862~930)을 말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또 893년(진성여왕 7)에 최치원 선생이

부성군(현 서산) 태수로 역임하면서 공부하였다던 구전도 전해지고 있다.

창건시대와 창건주가 불명하지만

본래 부춘산내의 상부, 중부 아랫부분에 3개의 암자를 건립하였으나

조선 말엽 상부와 중부에 있는 암자가 폐사되고

현재의 사찰만 남아 삼선암이라 불리어 오던 중

1987년 삼선암을 서광사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경내 입구를 들어서니 2층 누각형태로

거대한 건물에 서광사(瑞光寺)라는 편액이 보인다.

계단을 통해 올라가니 이 건물은 범종각인 모양이다.

범종각 안에는 불전사물(법고, 범종, 운판, 목어)이 봉안되어 있다.

 

 

 

 

범종각 앞 넓은 마당을 지나면 서광사의 본당인

대웅전이 장엄하게 조성되어 있다.

3층으로

전각인 이 건물은 1층은 인곡수련원, 2층에는 서광사,

3층에는 대웅전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독특한 것은 대웅전을 계단을 이용할 수 있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올라갈 때는 엘리베이터를 내려올 때는 계단을 이용하였다.

 

 

수미단의 닫집보다 팔각원형의 천장의 등이 이색적이다.

대웅전 수미단 위에는 좌협시로 관음보살,

우협시로 지장보살을 봉안한 본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편액이 대웅전이므로 본존불은 석가모니불로 보아야 당연하겠지만

협시불로 보면 이 본존은 아미타불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근세에 조성된 사찰에서는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을 봉안하면서

석가모니불을 조성하고 있는 사찰이 많아서 조금 혼동된다.

불상의 배열상으로만 본다면 지장보살은

석가모니불의 협시로 봉안하지 않는 것이 상례이다.

 

서광사의 대웅전은 석가모니불과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협시로 좌우에 유리관 속에 관음불을 모셔 놓았다.

노랑 방석 위에 올려진 관음상은 최근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비 지정문화재이고,

나무 대좌 위에 올려진 관음상이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관음보살이다.

 

 

 

@서광사 목조보살좌상

종목: 문화재자료 제421호(2014년 9월 1일 지정)

조선 시대: 조선 시대

불상 크기: 불상 높이 42.4cm

 

서산 서광사 대웅전에 봉안된 목조보살좌상은

조선 시대의 불상으로 2014년 9월 1일

충청남도의 문화재자료 제421호로 지정되어 있다.

 

 

서광사 목조보살좌상은 보살상과 대좌가 하나의 나무로 제작되어 있으며

신체보다 얼굴은 큰 편이고 머리에는 높고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다.

보계는 끝이 두 가닥으로 갈라졌으며

보발은 어깨 위에서 원으로 겹치면서 묶여 짧게 늘어져 있다.

 

방형의 얼굴을 앞으로 숙여 구부정한 자세를 취하고

눈은 옆으로 길고 코는 뭉툭하며 입은 옆으로 길면서

입술 양 끝에 작은 홈을 내어 미소를 만들었다.

방형의 얼굴은 조성 중기에 조성된 불상에서 흔히 나타나는 특징이며,

또 신라말에서 고려 초기에 조성된 아미타불상을 보면

이렇게 약간 굽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관음보살이 이런 형태를 취한 것은 조금 이색적이다.

 

수인은 양 무릎에 올려놓은 자세인데

오른손은 엄지와 중지를 구부렸으며,

왼손은 손바닥을 위쪽으로 하여 역시 엄지와 중지를 맞대었고

착의법은 변형 편단우견에 편삼을 입었는데

오른쪽 어깨에 둥글게 흘러내린 대의 자락,

무릎 밑에 펼쳐진 군의가 밑으로 흘러내린 옷 주름이

마치 문양처럼 도식적으로 표현되었다.

대좌는 2단으로 형성되었는데 2겹의 앙련 대좌와

6각으로 꺾인 기단부로 구성되어 있다.

 

대좌 밑에는 복장공이 있는데 현재 중요한 복장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대부분은 나중에 다시 만들어 다시 복장한 것으로

내부는 현재 다라니를 찍은 종이로 발라져 있어

내부를 확인하기 어렵지만,

전체가 하나의 나무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불상 내부에 작은 철심이 하나 확인되어

정확한 제작기법은 알기 어렵다.

 

서광사 목조보살좌상은 얼굴이 크고 무릎이

높은 비례감에 방형의 큰 얼굴 그

리고 무릎에서 직선으로 흘러내리는

균일한 옷 주름이 특징으로 비교 작품으로는

1711년 여찬이 제작한 충청북도

《영동 영국사 목조보살좌상》과 상의 비례라든지 표정,

옷 주름의 표현 기법 등에서 유사하다.

따라서 서광사 목조보살좌상은

조각승을 여찬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18세기 전반경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광사 목조보살좌상은 복장물과 발원문은 없지만

18세기 전반경의 제작 시기의 추정이 가능하고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조형성 및 예술성이 높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자료출처: 위키백과)

 

 

신중탱

비지정관음보살좌상

 

 

 

범종

 

법고

 

 

 

 

대웅전 참배를 끝내고 계단으로 내려가면서 본 벽화의 탱화

아미타삼존도

인곡수련원의 편액이 붙어 있는 1층 법당이다.

 

 

일층 법당에도 유리관에 봉안된 관음보살조상을 모셨다

 

칠성탱과 산신탱

 

요사채인 모양이다. 좌측 오솔길에 다른 전각이 있을 법한데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여 탐방은 생략하고 귀경길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