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 오봉산 석굴암
2022. 6. 6. 15:37ㆍ국내 명산과 사찰
오봉산 석굴암(石窟庵)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 1번지
오봉산 자락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오봉산은 도봉산 5봉을 일컫는 것으로 5봉으로 본다면
관음봉 아래 중턱에 해당한다.
오봉을 오르는 길은 여러 코스가 있지만,
양주시 쪽에서는 우이령(牛耳嶺) 고갯길을 많이 이용하게 된다.
우이령 고갯길은 서울특별시 강북구 우이동과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 사이에 있는 고갯길로
1969년에 일어난 1·21 사태로 인해 폐쇄되었던 것을
2009년 7월 10일에 탐방객 수를 제한하는 조건으로 개방되면서부터
세인(世人)들에게 회자하기 시작하였고
우이령 탐방길 개방과 더불어 알려지게 된 사찰이 오봉산 석굴암이다.
특히 오봉산 석굴암은 석굴 법당 나한전이 백미로 꼽힌다.
오봉산 석굴암의 동굴법당인 나한전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우리나라는 중국과 달리 석굴 법당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산은 주로 석질이 단단한 화강암이기 때문에
석굴을 조성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우리나라 대표적인 동굴법당으로는
@경주 불국사 석굴암(국보 제24호)
@군위 삼존석굴(국보 제109호)을 꼽지만,
그 외 @경주 함월산 골굴사 관음전 @소요산 자재암 나한전
@밀양 여여정사 약사전 @의령 일붕사 대웅전 석굴
@울산 송운사 미타석굴 @양산 천태사 천수천안관음굴
@밀양 용두산 천경사 대웅전 등을 꼽을 수 있다.
우이령 탐방지원센터는 두 곳이 있는데 차로 사찰까지 갈 수 있지만,
이 경우는 교현탐방지원센터를 이용해야 한다.
사전 예약은 인터넷을 필수로, 65세 이상은 전화로도 가능하다.
1)교현탐방지원센터 : 031-855-6559
2)우이탐방지원센터 : 02-998-8365
오봉산 석굴암의 일주문은 불이문(不二門)이다.
그런데 일주문 아래 해태상이 조각된 석교(石橋)가 놓여 있다.
이런 돌다리는 대개 사찰에서 극락전 앞에 연못을 파고
건너는 다리를 조성해 놓는데 이를 극락교 내지 피안교로 부른다.
그런데 일주문 아래 뜬금없이 이런 돌다리계단을 놓았는지 알 수 없다.
해태상의 해태는 불교에서는
선악(善惡)을 판단하는 영물(靈物)로 알려져 있다.
사찰 홈피에 의하면
『석굴암 창건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께서 창건했다는 설도 있고,
도선국사께서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고려 시대 공민왕 6년 1357년 당시 왕사(王師)였던 나옹화상이
이곳에서 3년간 수행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왕조가 개국한 후 무학대사의 제자인 설암관익(雪庵寬益) 대사가
1443년(세종 25년) 주석하면서 석굴에 지장과 나한 두 존상을 조성했으며,
1455년( 세조 원년)에는 단종왕후가 왕세자를 위해
3년 동안 천일기도를 드리고 거금 일만 냥을 시주하여
왕후원찰로 중수하였다고 한다.
이는 양주 봉선사의 본말사지에 기록이 남아 있고.
또 1652년(효종 3년)에는 고암대사가
대웅전과 칠성각을 중수했다고도 전한다.
이후 끊임없는 고승들이 주석하며 선맥을 이어갔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어 이 가람은 일반인들에게 잊혀진 사찰이 되었다.
그러나 근래에 초안 스님의 불사와 기도, 그의 상좌인 도일스님을 이어
사부대중의 원력으로 현재 석굴암은
일반인들에게 나한 기도도량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불이문을 지나 조금 오르면 석굴암의 전각이 나타난다.
종무소와 요사채를 겸한 건물이 전면에 있고
그 위에 대웅전을 비롯하여 나한전, 대적광전, 다선루가 보이고
맨 위에 삼성각이 자리하고 있다.
사찰 탐방은 왼쪽 다선루에서부터 시작하였다.
다선루
다선루 위 전각 앞에 있는 소나무가 고찰의 멋을 풍긴다
대적광전
아직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았는지 전각의 편액을 비어 있지만,
주불이 비로자나불인 것으로 보여 대적광전인 모양이다.
비로자나불은 법신불이며 화엄경의 주불이다.
법당 안에는 적멸보궁과 같이 불상을 모시지 않고
유리벽을 통해 암벽에 조성된 비로자나불을 참배하게 되어 있다.
한쪽 편에는 목각 신중탱이 장엄하게 조성되어 있다.
비로자나불이 조성된 이 석벽은 이곳의 자연 암벽은 아니고
다른 지역에서 옮겨 온 것이라고 한다.
현재까지도 불사가 진행되고 있다.
범종각
초안당이 1980년대에 지은 것으로
1984년에 범종이 조성되어 봉안되어 있다.
옆의 돌계단은 삼성각을 오르는 길이다.
나한전
오봉산 석굴암의 백미로 꼽히는 나한전이다.
4개의 석주(石柱)를 세우고 석굴 안에 법당을 조성했다.
양주 소요산 자재암의 나한전 보다 그 규모가 웅장하다.
자재암의 나한전은 석가모니불과 협시인 가섭과 아나존자를 봉안하고
좌우에 나한들을 봉안했는데
오봉산 석굴암은 나한들을 위주로만 봉안되어 있다.
@석굴암 나한전 수미단 중앙에 봉안된 석조나한상은
조선 후기에 조성된 석조 나한상으로
2011년 3월 8일 경기도의 문화재자료 제162-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나한상은 현재 삼성각에 봉안된
지장보살상과 같이 1873년에 제작되었다.
나한전 중앙 수미단에 봉안된 조선 후기의 이 나한상은
『봉선사 본말사지(奉先寺本末寺誌)』 고적편(1873)에
한봉창엽(漢峰瑲曄)과 금곡영환(金谷永煥)이 제작하였다고 언급되어 있다.
높이 60cm 이며, 오른발을 왼쪽 무릎 위로 올린
길상좌(吉祥坐)을 하고 있으며,
수인(手印)은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다리 위에 오른손을 위로하고,
왼손은 아래로 한 선정인(禪定印)을 하고 있다.
얼굴은 둥근 형태로 가는 눈과 뭉뚝한 코를 가지고 있으며,
입술은 꼬리를 살짝 올려 미소를 머금은 듯하다.
머리는 승형(僧形)으로 나한상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양어깨에는 가사(袈裟)가 둘려져 있고,
대의 안에는 복견의(覆肩衣: 승가사)를 입고 있다.
대의 깃 안쪽에는 수평 형태의 묶음띠가
가슴까지 올라와 있는 내의가 단정해 보인다.
얼굴과 손발은 호분(胡粉)으로 칠해져 있고,
대의는 옻칠이 두껍게 되어 있다.
어깨는 빈약하고 어깨에 비해 머리가 큰 편이며,
무릎 높이가 상체에 비해 높은 편이다.
뒷면은 왼쪽 어깨에 전면에서 넘어온 대의 자락이 길게 덮여 있다.
불상 바닥 면에 복장구가 마련되어 있다.
양주 석굴암 석조 나한상은 사적기를 통해 제작연대와
작가를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전국 사찰에 산재한 석조불상 가운데
19세기 후반에 불화승이 제작한 기년명 불상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조선 시대 불교 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나한전의 이 탱화는 탑과 창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금강역사로 보기보다는 사천왕 중 서방 광목천왕으로 보인다.
삼성각
삼성각 오르는 길은 돌계단으로 이어진다.
전각 앞에는 삼층석탑이 조성되어 있다.
삼성각에는 칠성, 산신, 독성을 봉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석굴암의 삼성각에는 지장보살상이 중앙에 봉안되어 있고
산신탱과 칠성탱은 보이는데 독성탱은 보이지 않는다.
지장보살상 뒤 탱화는 약사여래 탱으로 보인다.
1985년에 조성된 산신탱과 칠성탱과 함께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석조지장보살좌상
양주 석굴암 삼성각에 봉안된 석조지장보살좌상은
조선 시대의 석불이다. 2011년 3월 8일
경기도의 문화재자료 제162호로 지정되었다.
양주 석굴암 삼성각에 봉안된 이 석조지장보살좌상은
佛石(慶州石)이라 부르는 활석을 쪼아 만든 것으로,
머리 위에 두건을 두른 피건형으로 양어깨에 두건 자락이 늘어져 있다.
이 지장보살좌상은 『봉선사본말사지』에
1873년 戊子生 李氏進明行이 발원하여 한봉창엽과
금곡영환이 나한상과 같이 제작하였다고 한다.
이 불상을 만든 한봉창엽과 금곡영환은
19세기 경기도를 중심으로 활동한 대표적인 불화승이다.
조선 후기 불교 조각사의 흐름을 살펴보면,
18세기 중반부터 불화승에 의하여 불화의 제작과 더불어
불상 제작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산신탱
칠성탱
대웅전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식 팔작지붕 건물로
살짝 들려진 지붕 추녀의 맵시가 인상적이다.
이 건물은 1975년에 초안당이 지은 것으로
높이 기단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세워 제법 위엄이 있어 보인다.
건물 중앙에는 1970년 우봉(又峰)이 쓴 대웅전 편액과
주련 4기가 걸려있어
며 수미단에는 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관음보살상 옆에 따로 조성되어 있는 관음보살상이다.
신중탱은 1991년 금어 김용희 그렸다.
@석굴암 석조불좌상
양주 석굴암 석조불좌상은 1975년 새로 건립된 대웅전에 보관되어 있으며,
내부 수미단 향우측에 석조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새로 제작된 관음과 지장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의 배열은 뒤바뀐 것 같다.
불상은 조선 후기 제작된 소형불상으로
오른발을 왼쪽 무릎 위에 올린 길상좌를 하고 있다.
석조여래좌상은 오른쪽 팔꿈치 일부가 떨어져 나간 상태로
표면에 개금을 하여 매끄럽지 못한 상태이다.
이와 같은 석조불은 경주지역에서 산재하는
佛石, 慶州石 등으로 불리는 활석으로,
1655년에 조각승 도우가 만든 칠곡 송림사 극락전 삼존불상이나,
1680년대 활동한 조각승 승호가 주로 이용한 재료이다.
이와 같은 소형 석조불상은 천불전에 봉안하기 위하여 제작된 예가 많고,
그 일부가 조성 사찰을 벗어나
다른 지역의 사찰이나 암자 등에 봉안되어 있기도 하다.
석불의 크기는 42cm, 무릎 폭은 25cm이며
양팔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있으며
머리는 약간 아래로 구부리고 있으며 신체보다 머리가 크며,
허리는 짧고 무릎이 놓은 조선 후기 석조불상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방형의 각진 얼굴 반쯤 든 눈은 눈꼬리가 조금 올라갔고,
코는 원통형이며, 입은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다.
대의는 통견으로 안에 승각기를 걸치고 있다.
옷을 입은 방식과 주름, 네모난 턱,
귓불이 약간 반전된 형태의 귀 등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에 나타나는 불상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2011년 3월 8일 경기도의 문화재자료 제161호로 지정되었다.
윤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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