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상고암(제2부)

2022. 5. 22. 14:52국내 명산과 사찰

 

속리산 상고암(上庫庵)은 속리산에서 제일 높은 위치에 있는 암자다.

지리산 법계사(1915m)와 설악산 봉정암(1244m)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속리산 천왕봉 가는 길목인 해발 900m 정도이니 암자로서는 높은 편이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속리산 상고암(上庫庵)은

대한불교조계종 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사내암자로

창건주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신라 성덕왕 19년(720년)에 창건하였으며,

처음은 법주사를 짓기 위한 목재를 저장하여두던 창고로 이용되다가

뒤에 암자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를 뒷받침하듯 상고암 입구 천년송이 있는 곳이

금강송의 군락지인 것으로

이곳에서 목재를 벌채한 것이 아니었나 사료된다.

 

또, 일설에는 비로봉을 중심으로 해서 모자성을 구축하고

군량미를 비축하였다고 해서,

뒷날 상고암(上庫庵)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고(庫)는 창고 등을 의미한다.

그 뒤 1876년(고종 13) 인명(仁明)이 중창하였고,

1897년 보봉(普峰)이 다시 중수하였으나, 광복 후에 황폐해졌다.

 

1963년 법혜(法慧)의 원력(願力)으로 옛터에 법당을 다시 세웠고,

1975년 극락보전(極樂寶殿)을,

1976년 영산전(靈山殿)과 산신각과

남북통일기원탑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래 속리산에는 상고·중고(中庫)·하고(下庫)의 삼고(三庫)가 있었는데

중고암·하고암은 약 70년 전에 파괴되었다고 하며,

이 상고암은 속리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암자이다.

 

암자의 동북방에는 유명한 입석대(立石臺)와 경업대(慶業臺)가 있고,

뒤편에 비로봉과 속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이 자리하고 있다.

 

 

관음전

천년송을 지나 상고암에 이르면 제일 먼저 보이는 전각이 관음전이다.

주지스님이 친절하게도 법당문까지 열어주셨다.

법당 안에는 관음보살이 유리관에 봉안되어 있다.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목에는 삼도가,

가슴에는 영락이 장식되어 있고 승각기 안쪽으로

가사가 접혀있는 것과 두발이 귀를 감싸고

어깨까지 내려온 것이 조선 후기 작품인

서천 봉서사 목조 아미타삼존 좌상(보물 제1751호)의

좌협시인 관음보살상을 많이 닮았다.

 

#서천 봉서사 목조아미타여래 삼존좌상(보물 제1751)의 좌협시 관음보살

 

 

극락전

정면 3칸 측면 2칸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된 이 건물은 1975년 건립된 것으로 법당 앞에는 1976년에 조성된 일명 남북통일기념탑이

라 불리는 팔각 원형 구층석탑이 조성되어 있다.

 

법당 안에는 아미타여래를 본존으로 협시로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있다.

벽 쪽에는 칠성탱, 지장탱, 신중탱이 봉안되어 있다.

칠성탱

 

신중탱

 

도명존자가 시립한 것으로 보아 지장탱인데

지장보살의 수인이 특이하다. 

 

범종

 

산신각

정면1칸, 측면1칸의 주포식 맞배지붕으로 된

단출한 이 건물은 산신각으로 1976년 조성된 것이다.

법당에는 산중 영물인 호랑이와 두 동자승을 거느린

산신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법당에 올려진 공양물을 보니 소주와 양주, 와인,

포카리스웨트 등이 보인다.

속리산 산신은 애주가인가 보다(?)

 

상고암에 올라왔으니 전망대는 올라가 보아야 한다고

주지 스님이 몸소 안내까지 해 주신다.

천년송 앞 바위에서 보는 보았던 풍경 그대로다.

상고암 전망대에서 바라 본 관음암이다.

이번 상고암의 탐방은 사실 관음암의 이 조망을 보기 위함이었다.

 

 

 

 

저멀리 문장대도 조망된다.

비로봉 쪽 전망

 

 

전망대를 내려와 영산전으로 향한다.

 

영산전

정면 2칸 측면 1칸 주포식 맞배지붕으로 된 단출한 전각이다.

법당 안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나한상들은 불상 뒤 탱화로 대신하고 있다.

 

영산전을 내려오면서 올려다 본 풍경이다.

 

상고암이 편액이 붙어 있는 이 건물은 요사채로 이용되고 있는 모양이다.

팔공덕수(八功德水)

영산전을 내려오는데 <八攻德水大施主>라 암각된 바위 앞에서

스님이 보살 한 분에게 공덕수에 관해 설명을 하고 계셨다.

 

공덕수는 팔공덕수를 일컫는데 여기에 암각된 <공>자가 <功>이 아니라

<攻>이라서 이것의 진위(眞僞)를 논하고 있는 것같다.

스님의 설명을 들어보니 <攻>의 의미는

공격하다. 거세하다. 다스린다는 의미가 있어

여기서는 <功> 대신 <攻> 을 부조한 것이라고 한다.

다도(茶道)에서도 팔공덕수 있듯,

이설(異說)이 많긴 하지만 스님의 해설도 그럴 듯하기도 한데 글쎄...

 

불교에서는 부처나 보살에게 공양으로 올리는 물을

<공덕수>라 하는데 불교사전에서는 공덕수는

팔공덕수를 말하며 팔공덕수(八功德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극락의 못 가운데와 수미산과 칠금산(七金山)의 내해(內海)에

모두 팔공덕수(八功德水)가 가득하다는 것.

<無量壽經上> 에 「팔공덕수가 담연(湛然)히 가득 차고,

청정하고 향결(香潔) 하여 맛이 감로와 같았다.」 하였고,

<칭찬정토경(稱讚淨土經)> 에 「무엇을 팔공덕수(八功德水)라 하느냐 하면

①징청(澄淸) ②청랭(淸冷) ③감미(甘美) ④경연(輕軟)

⑤윤택(潤澤) ⑥안화(安和)

⑦ 마실 때에 기갈(飢渴)등의 무량한 과환(過患)을 제(除)한다.

⑧ 마시면 이미 정해진 제근(諸根)을 장양(長養)하여

사대(四大)가 증익(增益) 한다」고 하였다.

<구사론(俱舍論)>11에

「묘고(妙高)가 처음이 되고 윤위(輪圍)가 최후가 된다.

중간에 팔해(八海)가 있고 앞의 7개의 名內와

七中에 모두 팔공덕수가 갖추어져 있다.

①감(甘) ②냉(冷) ③연(輭=연(軟)) ④경(輕) ⑤청정(淸淨)

⑥불취(不臭) ⑦음시불손후(飮時不損喉)

⑧ 마신 뒤에는 창자가 상(傷)하지 않는다」 고 했다.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79호로 지정되어 있는

보은 법주사 상고암 마애불상군은 보살 1기와

사천왕과 관음보살 좌상이 부조되어 있다.

조성연대는 기록이 없어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조선 후기로 추측되며, 위치로 보면

천년송이 있는 곳으로부터 진입하면 관음전이 입구가 되지만

천왕봉 올라가는 쪽으로 보면 마애불이 입구가 된다.

사천왕상을 천왕문이 대개 사찰 입구에 조성한 예를 추측한다면

천왕봉으로 올라오는 길목이 이 절의 입구 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2단으로 조성된 이 마애불은 하단은 보살 한 분과

사천왕이 부조되어 있고 상단에는 관음보살이 부조되어 있다.

사천왕상의 배열은 조선 시대의 사천왕 배열순서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비파를 든 북방 다문천왕, 칼을 든 동방지국천왕,

용을 쥐고 있는 남방증장천왕, 탑을 들고 있는 서방광목천왕이다.

 

보살상은 합장하고 있으며 머리 위쪽에는

태양과 가랑빈가가 부조되어 있다.

 

관음보살상을 보관을 쓰고, 가부좌를 하고 있는 좌상으로

우수(右手)에 연꽃을 받쳐 들고 좌수(左手)는 연꽃 줄기를 받치고 있다.

가사는 통견으로 가슴에는 염주가 드리워져 있다.

상고암의 이 마애관음보살상은 조선 후기에 조성된 된

<이천 태평흥국명마애보살좌상(보물 제982호)>과 유사한 점이 많다.

 

<이천 태평흥국명마애보살좌상(보물 제982호)>

@약사전

마애불상을 지나 조금 위쪽으로 오르면 약사전이 있다.

석굴 속에 조성된 것으로 법당 안에는

보함을 든 석조약사여래가 봉안되어 있고

뒤편에는 석조 탱화가 부조되어 있다.

양쪽으로 석조 소불(小佛)이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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