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상환암(上歡庵)
2022. 5. 27. 23:19ㆍ국내 명산과 사찰
이번 속리산 산행은 천왕봉 쪽에 있는
두 개의 암자를 순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하나는 상고암(上庫庵)으로 상고암은
속리산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암자라는 것도 호기심이 댕기지만
속리산에서 가장 매력적인 암자로 숨겨진
관음암의 전경을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상환암(上歡庵)으로 가파른 암벽을 이용하여 조성한
전각들을 보기 위함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상고암의 약사전을 들리면서 나오는 길에 길을 잘못 든 바람에
천왕봉은 물론 상환암까지 포기하고 하산하였다.
그런데 행운이라면 행운이라 할까.
하산길 상환석문에 이르러 작은 언덕 사이에
반쯤 열인 작은 쪽문이 있어 행여나 하는 마음에서 들어가 보았더니
거기가 상환암이었다. 窮卽通이라 했든가.
그 쪽문은 상환암에서 천왕봉 가는 탐방객을 위한 후문이었다.
천왕봉을 코 앞에 두고도 들리지는 못했지만
상고암과 상환암의 두 암자에 대한
소기의 목적은 성취한 것이 다행이었다.
속리산 상환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산내 암자로
『보은군지』에 의하면
신라 33대 왕 성덕왕(聖德王) 19년(720년)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창건주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1391년(공양왕 3)
이성계(李成桂)가 즉위하기 전에 이곳에 와서
백일기도를 드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또, 창건 당시부터 이 절을 상환암이라고 했는지도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세조가 복천암(福泉庵)을 다녀갈 때
이곳에서 7일 동안 기도하고 선왕 태조의 유적을 추모하는
즐거움이 비할 데 없다 하면서,
이 암자를 상환암이라고 했다는 구전이 있기 때문이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상환암의 창건 시기는 바로 위에 있는 상고암 창건 시기와도
일치함으로 상고암을 창건할 때 동시에 창건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상고암의 창건주 역시 알려진 바가 없다.
일설로는 상환암 이전에 사찰명은 길상암이라고 하는 데
이 또한 자료는 없고 구전뿐이다.
일설로는 창건주가 의신조사(義神祖師)로 알려진 곳도 있지만,
의신조사는 진흥왕 14년(553년) 법주사 창건주로 알려져 있어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다.
현재의 건물은 6·25 한국전쟁 시 전소됐던 터에
1963년 이법운 화상이 중창한 것이며,
현재 당우로는 원통보전, 약사전, 독성각, 산신각과 요사채가 있다.
@원통보전
정면 3칸, 측면 3칸, 다포식 팔작지붕의 건물로
상환암의 본당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원통보전(圓通寶殿)이란 현판은 퇴경 권상로 선생의 글이다.
원통보전 앞에는 1976년 이법운 화상이 세운
높이 3.35m의 삼층석탑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상륜부만 남아 있다.
법당 안에는 항마촉지인을 한 아미타여래를 본존으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협시로 두고 있다.
항마촉지인은 원래 석가모니불의 수인이지만
신라 불교에서는 아미타불을 석가모니불의 화신으로 동일시하였음으로
혼용되어 불상이 조성된 예가 많다.
항마촉지인을 한 아미타불의 대표적인 불상으로는
국보 제109호 군위 삼존석불을 비롯하여
국보 제45호 부석사 무량수전의 소조여래좌상을 들 수 있다.
양평 용문사 대웅전에 가보면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협시로 둔 본존불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지만,
아미타불이 아닌 석가모니불로 명기하고 있는데
이는 신라 시대의 고찰임을 알리기 위함인 것으로 생각한다.
(양평 용문사 대웅전 )
용문사의 경우 편액이 대웅전이므로
아미타불 대신 석가모니불로 명기되어 있지만,
상환암 경우는 편액이 원통보전이므로
석가모니불보다는 아미타여래로 보는 것이 합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불상 뒤편 탱화는 11면 관음보살탱이 봉안되어 있다.
@아미타내영도
신중탱
원통보전과 종무소 사이, 뒤편 암벽 사이에 돌계단이 조성되어 있다.
이 돌계단을 통해 독성각과 산신각을 오른다.
암벽 위에 조성된 독성각이다. 돌계단을 지나면
철계단으로 법당에 으르게 되어 있다.
좌측 철계단은 독성각을 오르는 계단이고
우측 난간의 돌계단은 산신각을 오르는 길이다.
@독성각
가파르게 솟은 바위의 한편을 깎아 만든 돌계단을 오르면
전면 1칸 측면 1칸 주포식 팔작지붕으로
이중 처마를 한 이 건물은 독성각으로 전각이 협소하여
앞면의 한쪽은 기둥을 세워 그 위에 전각을 조성하였다.
전각 안에는 독성탱이 봉안되어 있다.
붉은 철계단이 보이는 우측 돌계단길은 산신각 가는 길이다.
@산신각
독성각 위에 다시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수직으로 된 바위 위에 전면 1칸,
측면 1칸 주포식 맞배지붕으로 조성되어 있고
전각 안에는 산신탱이 봉안되어 있다.
암벽을 오르는 것 같이 협소하면서 가파르다.
이런 암벽에 전각을 조성했다는 것이 정말 경이롭게 느껴진다.
산신각에서 바라본 맞은 편 바위에 뿌리를내리고 있는 솔.
독야청정이라는 말처럼 그 위용이 참으로 고고하며 우람하다.
올려다 본 산신각.
산신각을 내려다 오면서 본 전각 지붕들.
좌로부터 요사채, 종무소, 원통보전의 지붕이다.
좌측만 제외하고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고,
원통보전에는 <원이삼점>의 도형이 보인다.
요사채 옆에는 장독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장독 단지를 보니 그리 많은 식객은 아닌 모양이다.
상환암이란 편액이 보이는 이 건물은 종무소이며,
그 옆에 약사전이 조성되어 있다.
하산길 계단을 내려오면서 바라 본 원통보전
원이삼점이 보이는 건물은 요사채이며, 그 뒤에 종무소와 약사전이 있다.
상환암을 오르는 계단은 거의 1km가 된다.
@중생의 삶이란 苦海다. 生老病死의 덫을 벗어날 수 없고,
思念과 욕망의 번뇌라는 틀에 갇혀 사는 것이 중생의 삶 아니던가.
그 덫을 벗어나기 위해 유토피아의 꿈을 꾸면서,
해탈의 경지 淨土에 들어가고자 深山을 찾고,
또 절애의 도량을 찾는 것은 어찌 僧俗의 구별이 있겠는가.
重重無盡의 이 얽히고설킨 저 숲과 나뭇가지 같은 중생의 삶.
아~ 아 언제 저 숲을 벗어날 수 있으랴.
산문을 나서니 一然선사의 시 한 구절이 귓전에 맴돈다.
@ 일연스님
즐거운 한 시절은 자취 없이 가버리고
시름에 묻힌 몸은 덧없이 늙었구나.
한 끼 밥 익도록 기다린들 무엇하랴?
인생사 꿈결인 줄 내 이제 알겠노라.
修身의 길이야 誠意에 달린 것인데
홀아비는 이미(蛾眉)를 꿈꾸고 도둑은 창고 꿈꾸네
어찌 가을날 하룻밤만의 꿈으로
때때로 눈을 감아 청량에 이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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