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를 굽어보는 청주 구룡산 현암사
2022. 6. 16. 20:42ㆍ국내 명산과 사찰
청주 현암사(懸巖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로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현도면 구룡산(九龍山) 자락에 있는 사찰로
1980년 대에 완성한 거대한 인공호수 대청호와 더불어
세인들이 관심을 가지게 된 사찰이다.
현암사를 오르는 철계단 아래 주차장이 있지만 너무 협소하다.
현암사 안내판이 붙어 있는 곳에서 언덕쪽으로 50m 정도 올라가면
넓은 주차장이 있다. 현암사의 전용 주차장은 아니며
대청호댐 관리를 위한 직원용으로 보이는데
이용하는 데 별도 제약은 없다.
주차한 후 현암사 안내판 있는 곳으로 다시 내려오면
도로 맞은 편에 대청호댐을 전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대청호는 금강 수계 최초의 다목적 인공 저수지로
1975년 3월부터 1980년 12월까지 5개년에 걸쳐
4대강 유역 수자원 개발 계획이 일환으로
대전광역시 대덕구 미호동과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덕유리 사이의 좁은 협곡에
높이 72m, 길이 495m의 필댐(fill dam)이 건설됨으로써
조성된 거대한 인공호수다.
현암사를 오르는 철계단이 시작된다.
대략 100m 정도이며, 철계단을 지나면
현암사 오르는 오솔길로 이어진다.
입구에는 현암사 사력을 적은 안내판이 있다.
오솔길을 오르면 제일 먼저 2층 전각이 보인다.
2층으로 된 이 건물은 현암사의 범종각과 종무소를 겸하고 있다.
사찰 안내서에 의하면 현암사(懸巖寺)는
「백제 전지왕(腆支王) 3년(407년)
고구려 승려 청원선경(淸遠仙鏡)이 창건하였다.
선경은 달솔해충(達率解忠)의 발원을 받아서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창건 설화에 의하면 선경이 노루가 앉았던 자리에 절을 세웠다고 한다.
665년(신라 문무왕 5) 원효(元曉), 혜통(惠通) 국사가 중창하였다.
그 후 조선 정조 7년(1783) 시황(是幻)대사께서 중창하였지만,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1928년 동인(東寅)이
김상익(金相益)의 발원을 받아서 옛 절터에 중창하였다.
1945년 중건하였고, 1978년 종현(宗玄)이 2층 요사를 세웠다.
1986년 도공(道空)이 주지로 부임한 이후
대대적인 불사를 진행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현암사에 대한 기록으로는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충청도읍지》 등에는
견불사(見佛寺) 또는 견불암(見佛庵)으로 나온다.
《문의읍지》에는 현사(懸寺)로도 기록되어 있으며,
현지에서는 다람절이라고도 한다.
사찰 안내서에 의하면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보임수도(保任修道) 하실 때
이 절이 있는 산의 9홉 줄기가 강물에 뻗어 있다 하여
산을 구룡산(九龍山)이라 명하고
사찰은 절벽에 매달려 있는 암자(庵子)라 하여
현암(懸岩)이라고 했다고 한다.
현재 건물로 대웅보전과 용화전·삼성각·요사 등이 있다.
(자료출처:현암사 안내판과 두산백과사전)
@사찰 안내서에 등장하는 전지왕은 백제 18대 왕으로
재위 기간은 405~420년이다.
불교가 백제에 전래된 시기는 침류왕 1년(384년)이며,
백제의 최대 사찰로 알려진 익산 미륵사가
백제 30대 왕 무왕 시절(600~641)에 창건된 것을 감안하여
안내서 대로 해석한다면 청주 현암사는
우리나라 最古 고찰 반열에 들어가며
또한 충북 일대의 사찰 중에서도 가장 역사가 깊은 사찰이 되겠지만
역사적 유물은 물론 절터도 발견된 바는 아직 없다.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유물로만 추측한다면
삼국시대가 아닌 고려 후기 이후에 창건된 사찰로 추정된다.
범종각에서 바라 본 대청호
범종각 옆 건물은 용화전이고 그 옆이 대웅보전이며,
대웅보전 뒤 편에 삼성각이 있다.
용화전은 미륵보살을 모시는 전각이다.
용화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 주포식 맞배지붕 건물로
1993년에 세워졌다. 내부에는 창건 당시 선경대사가
자연석에 조각한 것으로 전해지는 석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석조여래좌상
조성시대: 고려 말기~조선 시대(추정)
높이 : 110cm
2015년 4월 17일 청주시의 향토유적 제68호로 지정되었다.
백제의 선경대사가 자연돌출석에 조각했다고 전해지지만,
조각 양식으로 보아
고려 말기에서 조선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광배(光背)와 대좌(臺座)가 모두 결실되어
지금은 불신(佛身)만 남아 있다.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머리는 나발(螺髮)이고
그 위에 육계(肉髻)가 큼직하게 마련되어 있다.
얼굴은 둥글고 넓은 편인데
전체적으로 조각 수법이 정교하지 못하다.
법의(法衣)는 양어깨를 모두 덮은 통견(通肩)으로
옷 주름이 거의 표현되지 않았다.
손 모양은 무릎 위에서 양손을 잡은 선정인(禪定印)을 결하였다.
용화전에서 바라 본 대청호
대웅보전
전면 4칸, 측면 2칸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된 이 건물은 대웅보전으로
수미단에는 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좌협시로 노사나불을, 우협시로 석가모니불이 봉안되어 있다.
일반사찰에서 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모신 전각은
비로전이나 대적광전 등으로 편액을 다는데
현암사는 대웅보전으로 달았다.
벽 쪽으로는 신중탱과 지장탱이 걸려 있다.
중앙에 본존으로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좌협시로 노사나불, 우협시로 석가모니불을 모셨다.
지장탱
신중탱
대웅보전에서 바라 본 대청호
삼성각
전면 3칸, 측면 2칸 주포식 맞배지붕으로
삼성각 법당은 칠성, 독성, 산신탱이 봉안되어 있다.
이들 탱화는 1992년 조성된 것이라고 한다.
칠성탱
독성탱
산신탱
현암사 승탑
현암사의 삼성각 뒤쪽에 있는 높이 144㎝의 팔각원당형 승탑이다.
8각의 지댓돌 위에 2단의 둥근 돌로 하대석(下臺石)을 올리고
위에 탑신(塔身)을 올렸다.
하대석은 1매석 위에 연꽃무늬를 조각한 굄을 마련하여 탑신을 받고 있다.
신은 석종형으로 특별한 문양은 없다. 옥개는 팔각지붕 모양에
기와골을 만들었으며, 상륜부는 연봉 형태로 장식하였다.
현암사의 이 부도는 조선 중기 이전의 유물로 추정된다.
현암사 부도(賢都 懸岩寺 浮屠)는 2017년 3월 17일
청주시의 향토유적 제155호로 지정되었다.
범종각 옆에 5층석탑으로 가는 오솔길이 나 있며,
이 길은 또한 구룡산 정상으로 가는 들머리가 된다.
좌우에 석등을 두고 5층 석탑 정면에는 쌍용이 조각되어 있다.
현암사가 있는 곳이 구룡산이기 때문에
특별히 용을 조각한 모양이다.
상대석에는 사천왕상과 팔부신장을,
1층 탑신에는 불보살을 조각해 놓았다.
현암사에서 구룡산 정상까지는 400m란 이정표를 보고 산행을 나섰다.
구룡산은 육산인데도 정상 가는 길에 돌무더기가 많았다.
이 나무계단을 오르면 바로 구룡산 정상이다.
정상은 이정표를 알리는 돌 이정표와
나무로 조각된 용과 장승상이 조성되어 있다.
정상 바로 아래 정자를 조성해 놓았다.
뚜렷한 볼거리도 없고 해서 현암사로 원점회귀 한다.
위쪽 전망대에서 바라 본 대청호 상류쪽
주차한 곳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대청호 전망대가 또 있다.
주차장도 넓고, 휴계소도 있지만 전망은 숲에 가려 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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