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제1299호 괴산 보안사 삼층석탑(槐山寶安寺三層石塔)

2021. 11. 26. 21:34문화재

 

중국이 전탑(塼塔)이 유명하다면, 일본은 목탑이 발전하였고,

우리나라는 석탑이 발달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석탑도 많고,

지방문화재로 등록된 것도 많다. 국보나 보물급으로 지정된 것은

대개 박물관이나 사찰에서 관리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문화재를 찾아 순례하다 보면

지방문화재도 아닌 보물급으로 지정된 석불이나 석탑이

외딴 숲이나, 과수원, 밭 또는 민가의 텃밭에 방치되어

애물단지처럼 취급되고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한 두 번 아니다.

우리의 문화재는 우리 민족의 역사요, 종교요,

선조의 얼이 담긴 정신문화의 유산이라고 문화재로 지정할 때는

요란을 떨지만 정작 관리는 그렇지 못하고 방치하고 있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괴산 보안사 삼층석탑(槐山 寶安寺 三層石塔)은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에 있는 고려 시대의 석탑이다.

괴산 보안사의 창건 및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전하는 바가 없으나

현재의 이 절은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수암사(水庵寺) 터에 중건한 것으로,

조선 초기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조선 고종 때 간행된 『청안군읍지(淸安郡邑誌)』에 의하면

이 절은 폐사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후 기록은 알 수 없고 1957년에 마을 주민들이

파손된 탑의 부재(部材)를 모아 탑을 세우고,

석불 1구를 발굴하여 보호각을 지어서 봉안한 뒤

보안사라고 명명하였다고 전하는 절이다.

삼층석탑은 이때 발견된 것으로 지금은 보안사 입구에서

300m 정도 우측에 있는 민가 텃밭 안에 있다.

 

 

 

@보안사 삼층석탑

조성: 고려 중기

탑의 높이: 3.58m

문화재 지정: 보물 제1299호

소재지: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효근1길 23(효근리) 

 

보안사 삼층석탑은 단층 기단 위에 3층 탑신부,

노반으로 구성된 석탑으로 1층 탑신에 감실(龕室)이 조성된 것이 특색이다.

조성 시기는 고려 중기로 추측되고 있다.

보안사 삼층석탑은 1997년 6월 27일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90호로 지정되었다가,

2000년 2월 15일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예고를 거쳐,

2000년 8월 4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299호로 지정되었다.

 

보안사 삼층석탑의 원래 위치는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를 통해

이 석탑이 1942년경부터 현 위치에 있었던 것이 확인되므로,

이곳이 석탑의 원위치인 것으로 생각된다.

원 사찰에 대한 자료는 전해지지 않는다.

1956년 세워진 옛 보안사 경내의 북쪽 담장 옆에 무너진 채 있었으나

1957년 주민들이 복구하였다.

 

보안사 이전 후 탑 구역이 민가 안에 자리 잡게 되었다.

괴산군에서 2001년 7월 19일∼2002년 11월 18일 기간에 석탑을 해체하고

지대석 하부를 보강한 후 재조립하였으며

이때 이전한 보안사의 옛 담장의 블록 벽을 철거하고

보호책과 배수로를 설치하였다.

이어 2012년 9월 5일∼2012년 11월 3일 기간에 석탑 보존처리를 하였다.

 

석탑은 단층 기단 위에 세운 3층 석탑으로 상륜부는 노반석만 남아 있다.

현존 높이는 대략 3.58m이며, 전체적으로 탑신이 1층에 비해

2, 3층이 크게 체감된 형태이다.

 

186×154㎝의 남북으로 긴 커다란 자연석 1매를

지대석 겸 기단 하대석으로 삼고 있으며

상부에는 안으로 낮은 턱을 만들어 기단 중대석을 끼워 결구하고 있다.

 

기단 중석은 4매의 판석을 사용하였는데,

앞뒤로 면석을 세워 양 우주를 모각했으며

그 사이에 2매 판석을 끼워 드러난 앞뒤면 측면으로 우주를 표시하였다.

기단 갑석은 짧고 다소 두꺼운 1매 판석을 사용하였다.

윗면에는 역시 얕은 턱을 안으로 파서 탑신 중석을 받고 있다.

갑석은 별도의 조각이나 장식은 없다.

 

탑신은 모두 1석으로 조성되었으며 초층은 평면이 60×61㎝로

정사각형에 가깝지만 높이는 다소 높으며

이에 비해 2층 높이는 급격히 낮아진다.

탑신 폭은 각 층이 적절하게 감축되었다.

 

탑신에는 전혀 조식이 없고 오직 1층 남면 중앙에

12×9㎝의 감실을 두고 있는데,

안으로 1단의 턱을 두어 내부는 10×7㎝의 작은 공간이다.

 

옥개석은 각 1석으로 하부 층급이 1층은 3단,

2, 3층은 2단으로 다소 두껍고 투박하게 새겨져 있으며

각 층이 적절하게 체감되었다.

낙수면은 조금 넓게 내려오며 우동마루가 있고

처마는 단면이 경사지게 치석 되었으며 상단에서 양 끝쪽으로 들리고 있다.

 

탑신과 옥개석은 각 1매의 석재로 조립하였다.

탑의 지붕돌인 옥개석의 낙수면은 완만하고 둔탁한 느낌을 주며

전각에 이르러 약간 반전을 보이고 있다.

 

옥개받침은 1층 3단, 2·3층 2단으로 조성되었고,

옥개석 상부에 각형 1단의 탑신 괴임이 조성되어 있다.

 

상륜부는 높이가 높고 위로 갑석 형태의 굽형이 조각되어 있는 노반석만 남아 있다.

 

 

석탑의 각 부재는 비교적 완전하게 남아 있으나

남서쪽 옥개석 모서리 및 동쪽 탑신 일부 부재가 떨어져 나간 상태이다.

전체적으로 비례가 잘 어울리지 않는 석탑의 체감률 및

옥개받침의 약식화 등 석재의 조각 수법 등은

고려 중기에 조성된 석탑의 양식을 잘 보이고 있다.

 

보안사의 삼층석탑의 특징은 고려 시대 건립된 석탑 중

1층 탑신에 감실이 조성된 예로는 몇 기에 불과한데 그중 하나에 속한다.

대표적인 것은 국보 제48호인 월정사 8각 9층 석탑이다.

<자료 참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월정사 8각 9층탑(국보 제48호), 시대:고려 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