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애(天涯)의 암자 고성 문수암

2021. 10. 10. 17:40문화재

 

경남 고성 문수암 가는 길은 이른 새벽에 떠나서 그런지

도착하기 내내 짙은 운무가 시야가 가려

사찰 순례가 어렵지 않을가 걱정 했는데 다행히 목적지에 도착하니

운무가 가시기 시작했다.

 

경남 고성군 상리면 무이산(549m) 정상 아래 자리 잡은 문수암은

관악산 연주암과 같이 깎아지른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문수암 사리탑이 있는 조망대에서는

자라만 일대의 한려수도 비경을 조망할 수 있다.

문수암은 강원 평창 오대산 상원사와 충북 영동 백화산 반야사,

구례 화엄사 연기암, 북한산 문수사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문수보살 기도 도량 성지의 하나로

청담스님의 사리탑이 조성된 암자다.

문수암은 또한 소가야 옛 도읍지 고성에서 전통과 맥을 이어오는

사찰 중 한 곳이기도 하며, 문수암이 있는 무이산은

일찍이 삼국시대부터 해동의 명승지로서

화랑들의 수련장으로도 널리 알려져 온 곳이기도 하다.

문수암 조금 아래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10분 쯤 가면 문수암이 나타난다. 주차장으로 따로 조성된 것이 없고

문수암 입구 계단 오르기 전 도로가 주차장 역할을 한다.

 

문수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 쌍계사(雙磎寺)의 말사 소속이다.

문수암의 창건 역사는 2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신라 성덕왕 5년(706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의상(義湘)대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며,

다른 하나는 신문왕 8년(688년/대한민국 구석구석)에 의상대사 창건했다고 한다.

창건주가 의상(義相)대사라면 대사의 생몰연대가 625~702년이므로

신문왕 8년(688년)이 적합하다.

 

창건 이후 기록이 없어 알 수 없고

다만 조선 인조 20년(1642)에 이르러 중창되었다고 하나

자세한 내력 또한 전하지 않고 있다. 현존하는 암자는

사라호 태풍 때 건물이 붕괴한 뒤에 지은 현대식 건물이며,

청담(靑潭) 대종사의 사리를 봉안하여

1973년에 세운 청담 대종사 사리탑이 있다.

청담 대종사는 6·25 무렵 이곳 금선대(金仙台) 토굴에서

10년 동안 참선하였으며, 그때 시봉한 상좌(上佐) 스님이 정천 스님이다.

 

문수암의 창건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하고 있다.

의상 조사가 남해 보광산(지금의 금산(錦山))으로 기도하러 가던 길에

상리면 무선리 어느 촌락에서 유숙하게 되었는데

비몽사몽 간에 한 노승이 나타나서

“내일 아침에 걸인을 따라서 보광산보다 무이산을 먼저 가보라” 라고 말하고

홀연히 사라져 잠을 깨니 꿈이었다. 날이 밝아 과연 한 걸인이 나타났는데,

급히 밥상을 차려주면서 무이산의 주소를 물었더니

무이산에 간다 하기에 동행하게 되었다.

걸인을 따라 무이산 중턱에 오르니 눈앞에 수많은 섬이 떠 있고,

동·서·남·북 그리고 중앙에 웅장한 다섯 개의 바위가

오대(五臺)를 형성하고 있어 마치 오대산의 중대를 연상하게 하였다.

 

이때 그 걸인이 중대를 가리키며 "저곳이 내 침소다"라고 말하자

한 걸인이 또 나타나서 두 걸인은 서로 손을 잡으며 바위 틈새로 사라져버렸다.

의상 조사는 석벽 사이를 살펴보았으나 걸인은 보이지 않았고,

이상하게도 석벽 사이에는 천연적인 문수보살상만이 나타나 있는 것을 보고

의상 조사는 홀연히 깨달은바, 꿈속의 노승이 관세음보살이고

두 걸인이 문수와 보현보살임을 깨달았고

의상 조사는 무이산을 두루 살펴보고는

“이곳은 족히 사자를 길들일 만한 곳이며

이곳이야말로 산수 수도장이다”라고 예찬하고

문수단을 모아서 문수암을 세우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지금도 석벽 사이에는 천연의 문수상이 나타나 보인다고 전해지고 있다.

 

문수암의 지금의 전각들은 정천스님이 문수암의 주지로 부임한 후

1967년과 1985년 2차에 걸쳐 중창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주요 전각으로는 본당인 문수암과 천불전 독성각과 요사채와 전부이며

대웅전 아래 기암절벽 위에 조성된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전각이 하나 있다.

 

 

 

돌계단을 오르면 바로 입구에 종무소가 자리하고 있다.

문수암은 암자이기 때문에 전각들이 단촐하다.

문수암의 대웅전격인 문수전이다. 편액은 문수암이다.

문수암의 본당인 문수전의 법당에는 문수보살과 지장보살 문수동자가 봉안되어 있다.

문수보살과 문수동자는 오대산 상원사의 문수보살과

문수동자상을 모본(模本)으로 삼은 것 같다.

문수암 뒤에는 문수보살이 사라졌다는 문수굴이 있다.

문수보살의 형상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찾아볼 수 없었다.

중생의 눈이라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문수보살

 

문수동자

 

지장보살

위태천을 중앙에 배치한 신중탱이다.

 

 

문수암 뒤에 있는 문수굴

 

 

@독성각은

오르는 돌계단 하며, 난간 등 단양 청련암 삼성각을 닮은꼴이다.

암벽 사이에 조성된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법당 안에 독성 한 분이 모셔져 있다.

 

 

 

 

 

@청담스님의 사리탑을 봉안한 곳이다.

청담 대종사 사리탑은 3곳에 세워져 있다.

청담스님(1902~1971)의 열반 후

삼각산 도선사 다비장에서 다비한 후 나온 사리 15과 중

일부는 출가 본산인 옥천사와 노년에 주석하시던 도선사에 봉안하고

일부는 6·25 때 10년 동안 수행하시던 문수암에 봉안하고

사리탑과 탑비를 세운 것이라고 한다.

 

청담 대종사 사리탑비

 

 

 

 

 

 

 

 

 

@천불전

지형을 이용 계단식으로 3층 건물이다.

천불전은 3층에 해당하며 전면 4칸, 측면 2칸으로

다포식 팔작지붕을 형성하고 있다.

법당 안에는 항마촉지인을 한 여래(아미타불)와

좌협시 관음보살, 우협시 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좌우 양 벽 쪽에 작은 불상 1000여 기를 조성해 놓았다.

 

아래 입구에서 바라 본 천불전 

 

천불전 일반 참배객 출입구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지만 본존불은 석가모니불이 아닌 아미타불로 보아야 한다.

협시불이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모셨기 때문이다.

항마촉지인을 한 대표적인 아미타불은

국보 제45호로 지정된 부석사 무량수전의 소조여래좌상을 꼽을 수 있다.

 

 

 

 

 

 

@문수암 순례를 마치고 이제 보현암 약사전으로 향한다.

천불전을 내려오면서 수태산 정상에 조성된 약사여래 대불을 망원으로 담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