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한산사

2021. 10. 2. 22:56문화재

 

보물 제459호인 제천 장락사의 칠층모전석탑을 보고 나오면서

한산사(寒山寺)를 들렸다.

한산사는 장락사에서 10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사찰 이름은 통상 그곳의 지역명, 경전이나 불보살의 명호나

고승들의 이름을 따서 짓는 것이 상례인데

한산사(寒山寺)라는 사찰명은 중국 강소성 소주시(蘇州市)에 있는

천태산 국청사의 삼은(三隱)으로 알려진 한산과 습득 스님이

남북조 시대의 남조 양나라 천감 연간(502년~519년), 무제 시대에 창건된

조그마한 암자였던 ‘묘리보명탑원(妙利普明塔院)’에 주지로 부임하면서

이 암자를 개명한 <한산사(寒山寺)>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절은 전성기에는 전각을 둘러 보려면 말을 타고 둘러보아야 할 정도로

거대한 사찰이었다고 하며 중국의 10대 사찰 중 하나에 속하기도 하였다.

한산사가 세인(世人)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당(唐)나라 때 시인 장계(張繼)가 풍교(楓橋) 및 한산사를 배경으로 지은

유명한 〈풍교야박(枫桥夜泊)〉이라는 시로 말미암은 것도 있지만,

사찰에서 한산사라는 사찰명을 붙이게 된 것은

선종화(禪宗畵)의 효시라고도 할 수 있는

<한산습득도(寒山拾得圖)>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선종화(禪宗畵)는 약칭하여 ‘선화(禪畵)’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선종의 전법(傳法) 형식이 직관적으로

사자상승(師資相承 :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 학예를 이어 전함) 되기 때문에

그 정신적 체험의 경지를 직관적인 시각의 세계로 표현하는

전법의 수단으로 그리기 시작한 것인데,

선(禪)을 중시하면서부터 사찰에서 한산과 습득이 머문

<한산사>라는 사찰명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선방이 있는 사찰이나 대웅전 벽에

한산과 습득의 그림이 많이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우리나라 사찰에서도 선승(禪僧)으로 알려진 한산을 기리는 사찰로

고려 때 사찰로 추정되는 한산사지(漢山寺址)가 있고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63호로 지정된 한산사지 삼층석탑이

전남 화순에 남아 있는 것을 볼 때 한산사라는 사찰명은

우리나라에서도 그 역사 또한 깊다고 볼 수 있다.

제천 한산사 역시 그런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사료해 본다.

(본방 ‘중국 천태산 고승들의 기담(5) 한산습득도’ 참조)

 

제천 한산사(寒山寺)는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의 말사로 제천지역 중심부의 대표적인 사찰로서 알려져 있다.

창건된 역사적인 자료를 통해서 보면,

고려 명종 24년(1194년)에 조혜사(照慧寺)로 창건되어 법등을 밝혀오다가

1934년에 사찰의 면모를 일신하는 과정에서 한산사로 개칭하였다.

1984년 현해스님이 법당과 요사채를 중창했고,

2003년에 주지로 부임한 동범스님이 경내에 모셔 있는 마애석불 부처님을

2004년 10월 ‘제천 한산사 석조여래입상(提川 寒山寺 石造如來立像)’으로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45호 지정받았다.

또한, 큰 법당 요사채 도량 등을 재정비 보수하고

전통사찰의 법등을 이어가기 위하여 2005년 12월에는

문화관광부로부터 전통사찰로 지정되었다.

2007년 5월에는 큰 법당 기와 보수 불사를 마무리했다.

전각은 대웅전과 능현당(能顯堂), 요사채로 조성되어 있으며

모두가 근래에 조성된 것이며, 문화재로는

대웅전 앞에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45호인

석조여래입상이 누각 안에 봉안되어 있다.

 

 

 

 

@제천 한산사 석조여래입상

충청북도 제천시 용두천로8길 27 (남천동)

문화재 지정: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45호(2004.10.22. 지정)

조성 시기: 조선 후기

석불상의 크기: 높이 282cm, 두께 35cm.

 

제천 한산사의 석조여래입상은 후덕한 얼굴에

민초들의 해학적인 웃음을 머금은

고려 말기의 불상 양식이 남아 있는 조선 시대의 불상이다.

 

 

석불은 높이 2.8m이며 벽돌로 만든 대좌 위에 세워져 있다.

대좌를 제외한 몸체는 하나의 돌로 이루어진 돌기둥형이다.

윗면보다 아랫면이 더 넓고 옆면은 넓적한 형태이다.

 

정면은 부조형으로 조각되어 있고

좌우 옆면과 뒷면은 아무것도 조각되어 있지 않다.

 

석불의 얼굴은 타원형으로 얼굴보다 입과 코가 큰 편이다.

눈 끝이 날카로우며 눈두덩이가 높게 부조되어 있고,

입은 살짝 벌린 채 미소를 띠고 있다.

불상의 전체적인 조각 수법은 선을 하나하나 조각한 수법이다.

 

 

 

대웅전

한산사의 본당인 대웅전은 2층으로 1층과 2층이 법당으로 되어 있다.

1층은 영산전의 형식을 취하여

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좌우에 나한상을 봉안해 놓았다.

 

 

 

 

 

2층 법당

2층은 대웅전으로 항마촉지인을 한 여래를 본존으로

좌협시로 관음보살을, 우협시로 지장보살을 봉안했다.

 

편액과 항마촉지인을 한 것으로 보면 석가모니불로 보아야 당연하지만

협시불로 보면 본존은 아미타불이 된다.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을 협시로 둔 본존불은

(무량수전의) 아미타불이기 때문이다.

항마촉지인을 한 아미타불상의 대표적인 것은

부석사 무량수전의 소조 여래좌상(국보 제45호)을 꼽을 수 있다.

이는 통일신라 시대에는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학계는 보고 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삼존불의 형식상 지장보살을

석가모니불의 협시로 두지 않은 이유로는

석가모니불의 유촉을 받은 보살이기 때문인데,

근래에 조성되는 대웅전에 이런 형식의 삼존불을 봉안하는 것은

사찰 운영의 편의에 따른 것이 아닌가 사료해 본다.

 

신중탱

 

 

 

산신탱(호랑이 상이 무섭기 보다는 귀엽게 묘사했다)

 

칠성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