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봉인사(奉印寺)

2021. 9. 14. 22:34문화재

 

봉인사(奉印寺)는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306)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이다.

사찰명에 <봉(奉)>가 들어 있는 것은

왕실, 또는 왕실의 능묘와 관련된 것임을 의미한다.

봉인사의 입구 주변에는 광해군의 생모인 선조대왕의 비인

공빈 김씨의 능묘(사적 제365호)와 그의 형 임해군의 묘를 비롯하여

광해군의 능묘(사적 제363호)가 있는 것으로 보아

봉인사는 광해군과 깊은 연관이 있는 절임을 알 수 있다.

 

봉인사는 조선 중기 광해군 때 부도암(浮圖庵)과 함께 창건된 것으로 보이나

분명한 문헌이 없어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봉인사의 <사리탑중수기비>에 의하면 광해군 11년(1619년)에

중국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들어오자 이를 이듬해

천마산 봉인사에서 2백 보 떨어진 곳에 석가법인탑(釋迦法印塔)과

부도암(浮圖庵)을 세우게 하고 또 태실과 왕세자의 수복강녕을 위해

따로 법당을 따로 세워 예불케 했다고 하는 기록이 있어

봉인사는 광해군 시대에 부도암과 동시대에 건립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봉인사는 광해군이 재위(재위 기간: 1608~1623)하고 있을 때는

원당(願堂)으로서 왕실의 지원을 받았지만,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자 사세가 기울고

임진왜란 등 전란으로 폐사되었다가 중건되었지만,

고종 24년(1887년) 화재로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중건을 반복했는데 현재의 사찰은 1979년

대한불교 원효종의 한길로 스님을 시작으로

1984년 태고종 법륜사 조실 덕암스님이 스리랑카 바자라시의 방장스님으로부터

진신사리 1과를 기증받아 불탑을 세우는 것으로 시작되어

지금의 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현재 당우로는 지장전, 대웅전, 산신각과 요사채가 있고,

남양주시가 운영하는 청림공원 납골당이 경내에 있다.

 

 

불유각(佛乳閣)

觀音菩薩大醫王(관음보살대의왕)

爲諸衆生澍甘露(위제중생주감로)

@澍: 때맞춰오는 비 주

 

 

종무소

 

지장전

 

봉인사의 본당으로 보이는 지장전은 2007년에 건립된 것이다.

수미단에는 화려한 닫집에 법륜 앞에 육환장을 든 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좌우에 인로왕번을 든 두 보살이 시립해 있다.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은 죽은 자의 영혼을 맞이하여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보살이다.

사찰에서는 망자(亡者)들을 극락정토로 인도하고,

망자의 영혼을 천도하는 우란분재(盂蘭盆齋)나 49재 때

'나무대성인로왕보살'이라고 쓴 번을 도량에 설치한다.

 

 

 

 

 

 

 

 

 

 

 

 

남양주시가 운영하는 청림공원 납골당

 

 

삼매에 든 여래, 수인은 선정인을 하고 있다.

 

 

관음보살

보병과 감로수병을 든 관음보살, 뒤편은 큰법당(대웅전)이 보인다

 

봉인사 진신사리 사리탑

<불탑(佛塔)>이라 명명된 비가 세워져 있는 봉인사의 사리탑은

1984년 법륜사 승려 덕암이 스리랑카에서 기증받은

부처님의 진신사리 1과(顆)를 가져와 세운 탑이라고 한다.

그 후 일본에 반출되었던 봉인사 부도암지 사리탑이

1987년 돌아와 함께 출토된 사리장엄구와 석관이 보물 제928호로 지정되어

중앙박물관에 보관하고 진신사리가 1과가 든 수정사리병은

문화재청으로부터 돌려받아 이 봉인사의 현 사리탑에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봉인사에 조성된 불탑(佛塔)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 중인 보물 제928호로 지정된

원본과 너무 차이가 문화재청의 원본 사진과 위키백과의 설명으로 대신한다.

 

남양주 봉인사 부도암지 사리탑 및 사리장엄구

南楊州奉印寺浮圖庵址舍利塔─舍利莊嚴具

시대: 조선

문화재지정: 보물 제928호

건립 시기: 1620년

성격: 불탑, 부도, 사리장엄구

크기: 3.08m

 

이 사리탑은 조선 후기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팔각원당형 불탑으로

원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석관(石棺)과 함께 보관되어 있다.

이 승탑에서 나온 사리장치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으며,

승탑에서 출토된 사리는 봉인사에서 이 사리탑의 복제품을 만들어 세울 때

문화재청으로부터 환수하여 봉인사의 불탑을 조성할 때 봉안했다고 한다.

 

이 탑은 조선 시대 광해군 때 왕세자의 만수무강과

부처님의 비호를 함께 기원하는 뜻에서

불사리(佛舍利)를 봉안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1620년(광해군 12)경 봉인사 부도암에 세워졌던 것으로,

1927년 일본인들에 의하여 고베[神戶]로 반출되고

그 뒤 오사카[大阪]시립미술관에 보관되었다가 1

987년 2월에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탑의 높이는 3.08m이며 삼국시대 이래 일반적으로 쓰인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 평면을 기본평면으로 삼았고,

기단은 상·중·하대를 갖추었으며 북[鼓]모양의 탑신(塔身) 위에

8각 지붕과 길쭉한 상륜(相輪)을 얹어 전통적인 형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중대석(中臺石, 기둥돌)에 새겨진 구름, 당초(唐草), 꽃잎,

여의두문(如意頭文), 상대석 옆면 테두리 속의 당초문,

탑신부의 운룡문(雲龍文) 등에서 새로운 조형적 특색을 엿보게 한다.

 

특히 경사가 급한 지붕에 처마 밑으로 서까래의 흔적을 남기고

윗면에 용머리를 새긴 수법이나 상륜부가 길쭉하게 올라간 형태,

그리고 왕릉의 호석(護石)처럼 주위에 난간과 궁판석을 돌린 방식은

이 탑이 불탑임에도 불구하고 조선 초기에 제작된

충주의 청룡사(靑龍寺)의 부도나 양주 회암사(檜巖寺)의 부도를 모방하여

조선 초기 부도 양식을 계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이 탑의 탑신 윗면 한가운데에는

지름 19.4㎝, 깊이 9.8㎝의 사리공(舍利孔)이 나 있는데,

여기에서 8점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이들은 외합(外盒)·내합(內盒)·사리병(舍利甁)·비단보자기 등으로,

대리석으로 만든 합이 1점, 은으로 만든 합이 2점, 놋쇠로 만든 합이 3점

그리고 금으로 만든 뚜껑이 있는 수정사리병 1점과

이를 쌌던 남색 비단보자기가 있다.

수정병에는 사리 1과(顆)가 들어 있었는 데

봉인사가 복제품인 사리탑을 세울 때

수정사리병채로 이 탑에 봉안했다고 한다.

 

발견 당시 외합 속에는 명주실과 비단·향(香)이 남아 있었으며,

은으로 만든 내합의 뚜껑에는 마름모형의 무늬를 볼록눌러새김의 수법으로 내고

그 안에 역동적인 운룡문을 장식하고 금박을 입혔다.

놋쇠로 만든 유제합(鍮製盒)은 주조된 것으로

그릇 표면은 녹로에 걸어 깎아서 면을 고르게 한 흔적이 뚜렷하다.

한편, 이들은 은제합보다 유난히 두껍고 투박하여

사리탑을 중수한 1759년 영조(英祖)대의 봉납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리 석제 사리합에는 꽃봉오리가 홍색으로 채색되었고

덩굴은 흑색으로 그려진 이름 모를 꽃이 등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다.

 

 

 

한편 은제합의 밑바닥에는 넉 줄의 명기(銘記)와 함께

‘萬曆四十八年庚申五月(만력48년경신5월)’의 글귀가 새겨져

이 유물이 1620년에 봉납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에는 합형(盒形) 사리장치가 주로 사용되었는데,

여기에서도 그러한 형식을 잘 따르고 있다.

 

그러나 합형 사리장치는 두, 세 개를 사용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처럼 일곱 개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매우 독특한 법식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탑과 사리장치 유물은

조선 초기 양식을 거의 변함없이 계승하고 있다.

 

또 사리합의 명문(銘文)과 탑의 내력을 새겨 탑 옆에 세운 비석의 글을 참조한다면

이 탑도 1620년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비록 도식화된 경향은 있어도 이와 같은 조선 중기의 유물이

조선 초기 양식을 반영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그리고 길쭉한 상륜을 조성한 것이나 7점의 사리장치를 중복시킨 점 등은

왕실의 후원으로 독특하게 고안한 또 다른 특성으로 보인다.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불탑임에도 불구하고

승려의 탑인 부도 형식을 모방한 독특한 형식으로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우수작이다. 또한, 분명한 조성 연대를 지니고 있어

조선 시대의 석조물과 사리장치를 연구하는 데에

편년 자료를 제공하는 중요한 유물이다.

현재 사리는 봉인사 불탑을 조성하면서 봉안되어 있다.

 

@큰법당(대법당)은 1979년 대한불교 원효종 조실 한길로 스님 중창하였다.

수미단에는 아미타 여래를 본존으로 좌협시로 관음보살을,

우협시로 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좌측에 관음보살을 한 분 더 모셨고, 나한상들을 봉안하고 있다.

 

 

본존은 아미타불을

좌협시는 아미타상을 보관에 조각한 관음보살, 우협시는 지장보살이다.

아미타불

관음보살

 

 

 

 

삼성각

 

 

 

칠성탱

독성(나반존자)

산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