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비상 1)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국보 제106호

2021. 4. 29. 21:37문화재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癸酉銘全氏阿彌陀佛碑像)은

문화재청이 지정한 7기의 불비상(佛碑像) 중 국보로 지정된 2기 중 하나로

나머지 5개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 불비상은 세종특별자치시(舊名 연기군) 전의면

비암사길(다방리) 운주산(雲住山)에 있는

고려 시대에 조성된 비암사(碑巖寺)의 삼층석탑을 보수할 때(1960년)

이 삼층석탑의 상단부에서 발견된 3개의 비상(飛霜) 중 하나로

아미타삼존불이 4각의 긴 돌 각 면에 불상과

글씨를 조각한 비상(碑像) 형태를 하고 있다.

1962년 12.20일 국보 제106호로 지정되어 있다.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癸酉銘全氏阿彌陀佛碑像)

@비암사에서 1960년 발견된 3점의 납석제불비상 중 하나.

문화재 지정: 국보 제106호.

크기: 높이 43cm, 밑면 세로 26.7cm, 가로 17cm.

소장: 국립청주박물관

조성: 673년

 

비암사에서 출토된 3개의 비상은

⓵국보 제106호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癸酉銘全氏阿彌陀佛碑像)

⓶보물 제367호 기축명아미타불비상(己丑名阿彌陀佛碑像)

⓷보물 제368호 미륵보살반가사유비상(彌勒菩薩半跏思惟碑像)이다.

 

비암사의 삼층석탑

충청남도 연기군(현 세종특별자치시) 비암사에서 발견된 이 불비상은

정면은 가장자리를 따라 테두리를 새기고,

그 안쪽을 한 단 낮게 하여 아미타삼존상을 조각하였다.

커다란 연꽃 위의 사각형 대좌에 앉아 있는 본존불은

얼굴 부분이 갸름한 모습이며, 신체는 건장하면서 안정된 자세를 이루고 있다.

부처가 설법할 때의 손 모양은 비교적 크게 표현되어

삼국시대 이래의 전통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양어깨를 감싼 옷은 사각형의 대좌(臺座)를 거의 덮고 있으며,

대좌 밑의 좌우에는 사자상을 배치하였다.

둥근 머리 광배는 3줄의 동심원 안에 연꽃을 장식하고 있다.

 

사자 등위의 연꽃무늬 대좌 위에 서 있는 협시보살상은

본존불 쪽으로 몸을 약간 튼 자세로,

얼굴은 훼손이 심하여 알아볼 수 없으나

연꽃이 새겨진 둥근 머리 광배가 남아 있다.

본존불과 협시보살의 어깨 사이에는 나한상이 얼굴만 내밀고 있으며,

협시보살상의 양옆에는 인왕상이 서 있다.

불상 위로는 불꽃무늬가 새겨진 광배가 이중으로 있으며,

안쪽의 광배에는 5구의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다.

광배 밖의 좌우 공간은 한층 더 낮추어 비천상을 새겼다.

 

양 측면의 하단에는 정면을 향하고 있는 용머리를 조각하고,

그 위로는 연꽃 위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을 표현하였다.

뒷면은 4단으로 나누어 단마다

5구씩의 작은 부처가 앉아 있는 모습을 조각하였으며,

불상 사이사이에 사람의 이름과 관직을 새겨 넣었다.

 

조각이 정교하면서도 장엄하고, 세부 양식에서도 옛 형식을 남기고 있는 점이

계유명삼존천불비상(국보 제108호)과 비슷하며,

만든 연대는 삼국통일 직후인 문무왕 13년(673)으로 추정된다.

<자료출처:문화재청>

 

지붕돌과 대좌는 없어졌으며, 밑폭이 조금 넓은

4각 기둥 모양의 비신(碑身) 앞면에는

가장자리에 약간 도드라지게 테를 만들고

그 안에 커다란 주형(舟形) 광배를 뒤로하여

불좌상을 중심으로 한 군상을 돋을새김했다.

 

본존상 좌우에 보살입상과 인왕상이 1구씩 서 있고,

그 사이로 뒷줄에 서 있는 나한상들의 얼굴이 양쪽에 2구씩 보인다.

본존은 방형 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설법인의 불좌상이며

머리 위에 연꽃과 연주문으로 장식된 원형 머리 광배가 표현되어 있다.

통견(通肩)의 옷 주름은 형식화되어 배 앞에서 둥글게 도드라진 형태로 반복되며,

대좌를 덮으며 늘어진 옷자락도 여러 겹의 주름을 이루는데

옷 주름들 사이에는 연주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본존불 좌협시불은 오른손에 정병(淨甁)을 든 관음보살이 분명하며

따라서 우협시는 대세지보살이 되는데

대세지보살의 상징인 보병(寶甁)은 마모가 심하여 판독할 수 없다.

오른손에는 두루마리 경전을 쥔 것처럼 보인다.

좌우 협시보살입상 뒤에는

끝이 뾰족한 연잎으로 장식된 머리 광배가 있다.

보살의 몸에는 무릎까지 오는 긴 영락이 걸쳐져 있으며,

무릎에서 교차하는 천의(天衣)와

세로선으로 음각된 군의(裙衣)가 눈에 들어온다.

보살상과 그 옆에 서 있는 인왕상들은 모두

줄기가 달린 2중의 연화좌 위에 서 있다.

좌측 인왕상은 왼손에 창을 들고 있어

북방천왕인 다문천왕이 아닌가 사료되고,

오른쪽 인왕상은 비파를 든 형상임으로 동방지국천왕이 아닌가 사료된다.

 

비상 전면의 아랫단에는 이 불상군 전체를

맨 밑에서 받쳐주는 단판중엽의 대형 연화대좌가 있으며

그 위로 마주 보는 2마리 사자가 군상과 연꽃대좌 사이에 배치되어 있다.

 

비상 전면의 거의 반을 차지하는 넓은 주형광배는 연주문으로 구획하여

바깥쪽에는 9구의 비천을, 안쪽에는 불꽃무늬 속에

5구의 화불(化佛)을 부조하고 중앙의 불좌상 두광 위쪽에는

화염보주를 배치하여 빈틈없이 화려하게 장식했다.

광배 좌우의 3각형의 여백에는 인동문과 천궁(天宮)을 받쳐 든 비천을 배치했다.

 

비신의 양 옆면에는 비스듬히 뻗어난

가지 위 연꽃대좌에 앉아 있는 주악 비천상을 4구씩 양각했는데

각각 생(笙)·비파(琵琶)·소(簫)·적(笛)·금(琴) 등의 악기를 들고 있다.

비천상 밑에는 용머리를 옆모습으로 양각했다.

 

비신의 뒷면에는 좌상을 4단으로 나누어 20구를 배치했는데

모두 연꽃 대좌와 보주형 두광을 갖추고 양손은 옷소매에 끼워 넣은 모습이다.

이 상들의 오른쪽 위에는 각각 1행으로 관명과 인명을 새겨놓아

이 불비상의 조성을 발원한 향도 중 주요인물 20명의 승속(僧屬)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비상에는 앞면 하단에

14줄(1줄 4자씩)의 명문을 비롯하여 양 옆면에 작은 글씨의 명문이 있다.

 

 

 

 

명문에는 백제의 관직에 해당하는 명칭과 함께

신라의 관직명이 보여 통일신라 시대 초에

백제 유민의 발원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 명문에 의해 '내말전씨'(乃末全氏)를 비롯한 50명이

국왕 대신과 칠세부모를 위해

아미타불·관음·대세지상을 계유년 4월에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통일 직후 백제 유민에 의해 백제의 옛 땅에서

백제의 불상 양식을 따라 673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비상 전면에 아미타불의 권속과 주악 비천까지 등장시켜

장엄한 극락정토의 전경을 묘사한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