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미륵박물관

2021. 2. 12. 13:48문화재

 

포천 왕산사 가는 길 도로변에 미륵박물관이라는 이정표가 있어 들러 보았다.

이정표를 보니 <사단법인 구천 미륵회>라고 되어 있었다.

구천 미륵회는 대순진리회 분파 중 하나로

포천 금주산 금룡사를 비롯해 연천 영농법인 하늘마당을 근거지로 하여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단체다.

금룡사에 갔을 때 법당보살로부터 미륵박물관에 대해서 들었지만,

불교의 미륵신앙과 다소 괴리된 묘한 소리를 해서

귀담아들을 것이 아니라서 스쳐 가는 소리로 묻었던 것인데,

미륵박물관의 많은 석물을 보니

오로지 미륵신앙에 대한 열성만은 대단하다고 느꼈다.

특히 미륵박물관에 조성된 많은 석조상 중에서도

석조 미륵대불은 정말 그 규모가 거창했다.

이 석조미륵대불은 356톤의 석제로 27m의 높이에 달한다고 한다.

조성 기간은 9여 년이라고 한다.

 

양주, 포천 이 일대는 유달리 미륵신앙과 연관이 깊은 지역이다.

이는 아마도 역사적 사건과도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측될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의 미륵신앙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그 초창기에 관한 문헌 기록이 없으므로 잘 알 수 없으나,

고구려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서 순도(順道)를 파견하였던

전진(前秦)의 왕 부견(符堅)이 서역으로 사신을 보내

간절한 마음으로 미륵불상을 구해 왔던 것으로 보아,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된 초기부터 미륵신앙이 전개되고

삼국시대를 그치면서 미륵신앙이

민중들에게까지 크게 주목받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는 현재 발견된 국보 제78호와 83호로 지정된 금동미륵반가사유상 2기,

마애불로는 국보 제199호인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국보 제84호인 서산 용현리 마애삼존불 좌협시불,

보물 제1401호인 충주 봉황리 마애불상군에서 보듯이

미륵신앙의 열기는 삼국시대에는 대단했던 것이다.
이들은 모두 남북국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미륵불을 자칭한 궁예의 난을 비롯하여

고려를 거처 조선조에 들어와서 미륵신앙은 무속과 결탁하여

수난을 겪었던 것도 또한 사실이다.

특히 조선 숙종 14년(1688년) 요승 여환(呂還)이 일으킨

역사적 역모 사건이 대표적인 것으로 들 수 있는데,

여환은 아내 원향(遠香)과 무녀인 계화(戒化), 아전이었던 정원태(鄭元泰),

그리고 황회(黃繪) 등을 규합하여

“석가불이 다하고 미륵불이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라 하며

역모를 일으킨 주요발생지가

바로 양주시 청송면이 중심이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역사적 사건으로 말미암아

세월이 흘러도 민중 속에 미륵신앙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북방다문천왕

서방 광목천왕

 

동방 지국천왕

 

남장 증장천왕

 

 

 

 

 

 

 

 

포대화상

 

 

나라연금강

 

밀적금강

 

서방광목천왕

 

남방 증장천왕

 

북방 다문천왕

 

동방 지국천왕

 

 

지장보살

 

 

미륵전, 미륵박물관의 주 법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