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일산동 석불입상과 5층 석탑

2021. 2. 14. 12:00문화재

 

원주 역사박물관은 원주시 명륜동 51번지에

2000년 11월에 개관한 박물관이다.

주로 원주 일대에서 출토된 유물과 석탑부재를

이곳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는데 일산동 석불을 비롯하여

3층과 5층 석탑 또한 이곳에서 함께 볼 수 있다.

 

 

 

 

목이 분실된 석상인데 수인은 항마촉지인이다. 석가모니불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삼층 석탑의 부재인듯 한데 탱주는 없고 우주가 양끝에 모각되어 있다.

탑의 상륜부로 옥개석과 노반 부위만 남아 있다.

면석에 조각된 사천왕상인 듯 하다. 칼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동방지국천왕으로 추정된다.

선각으로 처리된 이 보살상은 흐릿한 윤곽이지만 관음보살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일산동 석불입상>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호

주소:강원도 원주시 봉산로 134 (봉산동) 원주 역사박물관

 

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전시된 이 석불은 2기로써

조성 시기는 통일신라 말 고려 초기로 추정되는 비로자나 석불좌상이다.

원래 원주시 중앙동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절터에 있던 것을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남산 추월대로 옮겨 놓았으며

1962년 일산동 5층 석탑을 중심으로 좌우에 1구씩 옮겨 놓았다가

현재의 위치로 다시 옮겨진 것이다.

2구 모두 몸에서 나오는 빛을 표현한 광배(光背)와 머리가 없어졌으며,

머리는 새로 만들어 얹은 것이다.

2구의 불상은 옷 주름과 대좌(臺座)의 상대 문양 표현이 조금씩 다를 뿐

기본적인 특징은 동일하여,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좌측 비로자나불좌상

옷 주름은 2구 모두 유려하며

좌측〔向左〕 불좌상의 경우에는 도식화가 엿보인다.

2구 모두 배 부근의 띠 매듭이 뚜렷하므로 고려 시대 복식사를 엿보인다.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다리의 양 무릎의 폭과

상반신의 균형이 양감 있게 조각되었다.

양손은 파손이 심하여 세부의 형태를 알 수 없다.

 양손 모두 가슴 부위로 모아 오른손을 약간 위로

왼손을 약간 아래로 두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비로자나불의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있다.

오른손이 왼손을 감싸고 있는 이런 형태를

우권인(右拳印)으로 통칭 부르는데

우리나라 최고(最古)로 불리는 지리산 내원사의 비로자나불도

이와 같은 지권인을 하고 있다.

 

 

 

대좌는 전형적인 8각 연화대좌(八角 蓮華臺座)이다.

손상된 부분이 거의 없으며 각 부분의 조각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상대는 앙련(仰蓮 : 위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이 2단에 걸쳐 조각되어 있다.

연꽃잎마다 꽃무늬가 있다.

중대는 8개의 목조기둥이 조각되어 있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 갖가지 조각을 하였으며

하대에는 큼직한 8개의 복련(覆蓮 : 아래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이 새겨져 있다.

 

이 2구의 석불좌상은 불신(佛身)의 신체 비례가 매우 뛰어나며

대좌를 포함한 각 부분의 조각이 화려한 수작(秀作)이라 할 수 있다.

보수 전 원래 얼굴의 모습을 전혀 알 수 없어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불의 주름이 형식화되었고,

상대의 연꽃잎 내에 꽃무늬 모양이라든지,

중대의 우주 사이의 다양한 조식(彫飾 : 잘 다듬어 꾸밈) 등으로 미루어

나말여초(羅末麗初)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우측 비로자나불좌상

 

 

 

 

 

<일산동 5층 석탑>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5호

조성 시기: 고려 중기

주소 강원도 원주시 봉산로 134 (봉산동)

- 원주 역사박물관 소장

 

이 탑은 두기의 비로자나좌상불과 함께

원래 중앙동의 절터에 있던 것을 일산동으로 옮겼다가

다시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이 탑은 단층 기단(基壇) 위에 5층 석탑을 올린 전형적인 고려 시대 석탑이다.

기단 하단에 깔린 지대석은 1장의 판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위에 4장의 면석을 세우고 한 장으로 된

갑석을 올린 다음 탑신부를 조성한 석탑이다.

면석 중앙에 탱주가 1개 묘각되어 있다.

 

탑의 각 층 옥개석은 파손된 부분이 많지만

네 귀퉁이의 추녀 끝은 위로 살짝 치켜 올려져서 날렵하게 보이며

건물 공포를 추상화하여 위로 오를수록 서서히 줄어드는

방형 조각의 비율이 단아하게 정돈된 품격있는 석탑이다.

 

탑신석과 옥개석은 통석으로 되어 있으며

탑 최상단의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고

4층과 5층 탑신석의 높이 차이가 있어 체감비가 잘 맞지 않지만,

전체적으로는 간결하고도 장중한 모습을 보인다.

 

지붕은 얇은 편이고 밑면의 받침이 3단씩인데

안타깝게도 파손된 부분이 많다.

단층 기단의 양식과 특히 기단 갑석의 형식,

각층 옥개석의 조성 수법 등으로 보아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