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위산 불암산이 좋다,

2020. 12. 30. 21:54넋두리

 

 

나는 산이 좋다.

그래서 산을 간다.

불암산을 간다.

 

불암산은

풍상을 겪은 바위가 많아서 좋다.

어느 산인들 바위가 없겠느냐마는

불암산은 유독 그런 바위가 많다.

그래서 불암산을 간다.

세월의 傷痕을 지닌 바위가 많아 좋다.

 

비바람에 찢기고 눈비에 할퀴어진

그런 바위들을 만나면

방황의 늪에서 파닥거리든 혼절 된 마음이

침묵의 망치에 새로운 나래를 얻게 된다.

 

삶에 대한 허무와 무상은

그 중후한 질감에 무색해지고

인고의 세월 소리 없는 그 침묵의 설법에

문드러진 앙금진 삶의 추억들이

새살을 돋게 한다.

 

살아있기에 고통을 느낀다는 어느 시인의 말도

천년의 침묵을 지녀온 바위 앞에 서면

사치스러운 비아냥에 지나지 않는다.

 

똑똑한 염세주의자 보다는

어리석은 낙천주의가 낫다는 말도

풍상에 찢긴 상흔을 보면

바람에 실린 단소리일뿐

 

삶이란

희(喜)도 아니요, 비(悲)도 아니라고,

무심(無心)도 하나의 벽이 된다고

달마가 그랬던가?

 

짧은 인생 긴 하루에

그 너머 삶은 왜 없겠느냐고

바위들이 외치는

暗黙의 소리가 들리는 듯 마는 듯.

 

산을 보고 산을 잊으라는 말

無心於事 於事無心이란 말인가

상흔(傷痕)처럼 뇌리(腦裏)에 박힌 이 말이

차라리 금언처럼 들린다.

 

그래서 산을 간다.

바위가 좋아 나는 산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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