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제655호 칠곡 노석리 마애불상군

2020. 12. 25. 15:27문화재

 

문화재급으로 지정된 석불이나 마애불이 사찰 경내에 있을 경우는

쉽게 네비의 주소만으로도 쉽게 찾아갈 수 있으나

산속이나 들판에 있는 경우는 네비의 주소만으로는

찾아가기 힘든 경우가 많다. 칠곡노성리마애불상군도 그중 하나다.

<칠곡군 기산면 노석리 산13>이라는 네비의 주소만으로 따라나섰다가

길을 잃고 한참 헤매다가, 다행스럽게도 마을 사람들 만나

가는 길을 안내받아 겨우 찾아가게 되었다.

 

참고로 가는 길을 안내하면 네비의 주소를 따라

끝 지점에서 마을로 바로 꺾어 들어가지 말고

거기서 도로를 따라 조금 지나다 보면 도로 좌편에 방앗간이 보이고

오른쪽에 노석리마애불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따라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가다가

다시 길이 갈라지면 좌측으로 진행하면 된다.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이 노석리마애불상군 가는 들머리가 된다.

 

 

 

마을의 포장도로가 끝나고 계속 진행하면

사진과 같이 물받이가 보이는 곳이 나오는데

이곳에 주차하고 좌편으로 올라가면 마애불상군 이정표를 만나게 된다.

 

 

 

샘터

 

 

 

 

 

 

 

 

칠곡 노석리 마애불상군 (漆谷老石里磨崖佛像群)

동의어 ; 성주 노석리 마애불상군

 

시대: 고대/남북국/통일신라

문화재 지정; 보물 제655호

건립 시기; 7세기 후반

크기: 본존 높이 140㎝, 좌협시 보살 높이 90㎝,

우협시 보살 높이 80㎝, 여래좌상 높이 115㎝

소재지;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노석리 산43-2번지

 

성주 노석리 마애불상군으로도 불리는

보물 제655호로 지정된 칠곡 노석리마애불상군은 1

977년 노석리 도고산(해발 349m) 중턱에서 발견된 것으로

가로 5m 세로 4.5m의 바위 면에 아미타 삼존불과

여래 1기를 저부조(低浮彫:얕은 돋을새김)로 조성된 석불군으로

발견 당시 붉은색 주황색, 푸른색 등의 채색 흔적이 남아 있었으나

채색된 시점은 알 수 없다고 한다.

 

지금까지 발견된 여러 마애불 중 칠곡 노석리 마애불이

이색적인 것은 삼존불에 여래 1기가 더 부조된 4불(佛)이라는 것과

석탑의 사천왕상 등에서 볼 수 있는 유희좌(遊戲坐)의 변형인

교각형태의 좌법과 윤왕좌(輪王坐)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좌로부터 여래상, 대세지보살, 아미타불, 관음보살

 

 

<본존 아미타여래>

삼존 모두 넓은 원형의 두광(頭光)을 갖추고 있다.

본존인 아미타불은 불꽃무늬가 조각된 주형 거신광(舟形擧身光) 및

2중 원광의 두광 속에 정좌하였다. 소발(素髮)의 머리에는

육계(肉髻)가 높이 솟아 있다. 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은 마멸로 인하여

윤곽이 희미하나, 눈·코·입 등이 얼굴 중앙으로 몰려 있다.

양쪽 귀는 위쪽은 머리에 가려 보이지 않으며,

타원형의 구멍이 뚫린 귓밥 부분만이 길게 늘어져 있다.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는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허리로

평행한 옷자락 무늬가 흘러내리고 있다.

가슴 부분에는 법의를 묶은 띠 매듭이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가지 주목되는 것은

오른쪽 어깨 부분에 약간 걸쳐진 옷자락이다.

이러한 모습의 옷자락은 한국의 불상에서는 거의 없는 것으로,

유사한 것으로는 대조사 석조 미륵보살(보물 제217호)에서 볼 수 있다.

대조사 석조마애여래불

왼손은 왼쪽 무릎과 팔 부분의 암석이 파손되어 손 모습을 잘 알 수 없으나

오른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가슴 부분으로 들어 올려

중품중생인(中品中生印)을 하고 있다.

본존의 무릎 아랫부분이 파손되어 잘 드러나지 않지만,

오른쪽 무릎이 올라가 있고, 또 오른쪽 무릎 밑에

단엽복판(單葉複瓣)의 연화문이 약간 남아 있는 점으로 보아

원래 연화좌 위에 유희좌나 윤왕좌의 좌법이 아닌가 사료된다.

이와 비슷한 좌법을 한 마애불은

경주 남산 탑곡마애불상군(보물 제201호)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경주 남산 탑골마애불상군

<관음보살>

왼쪽 협시보살인 관음보살은 본존을 향하여 얼굴을 돌리고 연화좌 위에 앉아 있다.

머리에는 보관을 썼고, 왼손에는 비스듬히 연꽃 봉오리를 들고 있다.

오른손은 거의 눈높이까지 들어 연봉을 받들어 본존을 향하고 있다.

얼굴은 윤곽이 뚜렷하며 눈매만이 확실할 뿐 그 밖의 부분은 파손되어 알 수 없다.

 

천의는 통견으로 가슴 부근에 큼직한 천의대(天衣帶)가 표현되었다.

무릎 중앙에 평행의 뚜렷한 옷 주름 선이 4, 5선가량 보일 뿐

나머지 옷 주름은 오른쪽 무릎 부분이 크게 파손되어 그 모습을 알 수 없다.

복련(覆蓮 : 아래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의 연화좌는

큼직한 단엽의 연화문을 중심으로

좌우로 단판연화문(單瓣蓮華文)을 장식하였다.

<대세지보살>

오른쪽 협시보살인 대세지보살은 역시 본존을 향하여 앉아 있는데,

왼쪽 보살과 동일한 보관을 쓰고 있다.

이 보살은 네모나고 각진 얼굴과 떡 벌어진 어깨로 인하여

건장한 느낌을 주지만 팔이나 무릎 등의 윤곽은

부드러워 양감(量感) 있고 풍만한 느낌을 준다.

 

법의는 통견으로 가슴에는 의대(衣帶)가 뚜렷하다.

배 부분에는 부채꼴의 옷 주름이 넓게 펴져 있어

통일신라 시대 석불좌상들의 옷 주름과 유사함을 보여 준다.

오른손은 연봉을 들고 있으며

왼손은 가슴 부근에 대어 본존 쪽을 향하게 하고 있다.

 

충주 봉황리 마애불상군

이 보살상에서 특이한 것은 좌법(坐法:앉은 모습)이다.

두 발을 가운데로 향하여 교차하고 앉는 이른바 교각자세(交脚姿勢)인데

이는 윤왕좌의 변형으로 보인다.

중국의 용문석굴(龍門石窟)이나 운강석굴(雲岡石窟)에서 유행하던 자세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청도 운문사 동서쌍탑(보물 제678호) 등 석탑에서 주로 나타나 있고,

마애불상군으로로는 충주 봉황리마애불상군(보물 제1401호)의

대불의 화불에서 드러나 있다.

대좌는 연화좌로서 관음보살의 대좌와 동일한 형식이다.

청도 운문사 동서쌍탑
팔부중상/중앙박물관소장

 

<여래좌상>

이 삼존불상의 오른쪽[向左]에 새겨진 또 하나의 여래좌상은

삼존상과 같은 넓은 원대(圓帶)의 두광을 갖추고

정면을 향해 앉아 있는 단독상이다. 소발의 머리에는 육계가 뚜렷하며,

원만한 얼굴의 윤곽도 뚜렷하나 각 부분은 마멸되었다.

통견의 법의는 삼존상의 본존과 같이

오른쪽 어깨에 살짝 옷자락을 걸쳤는데,

옷 주름은 굵고 뚜렷한 각선으로 조각하여 힘찬 역동감을 느끼게 한다.

연화좌 위에 올려놓은 무릎 부분에도 평행의 옷 주름 선이 조각되었으며,

이 옷자락은 두 무릎을 덮고 아래까지 흘러내리고 있다.

이 여래상 역시 특이한 자세를 하고 있다.

오른발은 내려 연화 위에 올려놓고 왼발은 발끝을 아래로 향하게 하여

유희좌세(遊戱坐勢)를 취하였다.

이런 유희좌를 취한 형태의 대표적인 마애불로는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보물 제199호)을 들 수 있으며

충주봉황리마애불상군이나 청도 운문사 동서쌍탑을 비롯하여

무위사 극락보존 아미타 삼존불(보물 제1312호)의 좌협시인 관음불과

서울 보타사 금동보살좌상(보물 제1318호)에서도 볼 수 있다.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무위사 극락보전의 삼존불

칠곡 노석리 마애불상군은 조각 수법이 평면적이어서

마치 선각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불상들의 형태는 전체적으로 딱딱한 느낌이 들지만

사실미와 긴장미가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특징은 대세지보살의 교각자세 등과 함께

새로운 당나라의 불상 양식을 수용한 것으로 보이며,

조성 연대는 충주 봉황리 마애불상군보다는 조금 늦은 7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