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제189호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漆谷松林寺五層塼塔)

2020. 12. 28. 22:19문화재

 

보물 제189호로 지정된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은

송림사의 마스코트 역할을 하는 전탑(塼塔)이다.

칠곡 송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로

신라 진흥왕 때 진(陳)의 사신 유사(劉使)가 중국 유학승인

명관대사(明觀大師)와 함께 신라에 오면서

불경 2,700권과 불사리를 이운해 왔는데

이때 불경과 불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지은 절이 송림사이다.

그 가운데 일부를 호국안민(護國安民)을 위한 기원보탑에 봉안하였는데

이 탑이 송림사 오층전탑이다.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국보 제230호

@탑의 기원을 살펴보면 붓다가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娑羅雙樹) 아래서 입멸한 후

시신은 다비(茶毘, 화장)했고, 유골은 여덟 부족에게 분배되었는데

이 부족들은 각각 탑(塔)을 만들어 그곳에 유골을 안치한 것에서 비롯된다.

이를 근본 8 탑(根本八塔)이라 한다.

유골을 분배받지 못한 부족은

유골을 담았던 병을 가지고 가서 병탑(甁塔)을 세웠고,

어떤 부족은 재를 가지고 가서 회탑(灰塔)을 세웠다.

지금까지 알려진 인도 초기의 탑은 흙이나 벽돌로 만들어져

대부분 파괴되었고

현재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기원전 3~1세기에 건립된

중인도의 산치대탑(Sanchi大塔)이며,

인도에서 시작하여 불교의 전파와 함께

중국에 전해져 조성된 최초의 전탑은

정광(正光) 4년(523)의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

숭악사(嵩岳寺) 12각 15층 탑을 최고(最古)로 꼽는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신라의 석탑은

634년(선덕여왕 3년)에 건조된 경주 분황사 탑인데

이것은 전탑이 아니라 검은 회색을 띠는 안산암(安山巖)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模塼石塔)이다.

 

안동 법흥사지 7층전탑 국보 제16호

지금은 탑의 분류를 나무로 만든 목탑(木塔), 벽돌로 만든 전탑(塼塔),

돌로 만든 석탑(石塔)으로 분류하는데,

중국은 주로 전탑을 많이 건립했고,

한반도에서는 석탑, 일본은 목탑을 많이 건립했다.

그래서 흔히들 한국은 석탑의 나라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탑이 많지만,

순수한 전탑은 현재까지 몇 기가 되지 않고

특히 탑의 상륜부까지 오롯이 갖추고 있는 전탑은

송림사 5층 전탑으로 전탑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와 함께

미술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희소가치 또한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로 현재까지 발견된 통일신라 시대의 작품으로는

분황사 모전석탑을 포함하여 6기이며,

고려 시대 작품으로 알려진 여주 신륵사의 다층탑을 포함하면 모두 7기가 된다.

 

 

여주 신륵사 다층탑 보물 제226호

1)경주분황사 모전석탑 국보 제230호 통일신라

2)안동 법흥사지 7층 전탑 국보 제16호 높이 16.13m 기단 폭: 7.75m 통일신라

3)칠곡 송림사 5층 전탑 보물 제189호 높이 16.13m, 기단 7.3m 통일신라

4)안동 조탑리 5층 전탑 보물 제57호 높이 8.65m 기단 7m 통일신라

5)안동 운흥리 5층 전탑 보물 제56호 높이 8.35m 기단 3.65m 통일신라

6)청도 불령사 전탑(경북 시도문화재 472호 높이 3.8m 통일신라

7)여주 신륵사 다층탑 보물 제226호 높이 9.4m 고려 시대

 

칠곡 송림사 5층전탑 보물 제189호

@보물 제189호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漆谷松林寺五層塼塔)

문화재 지정; 보물 제189호

건립시기; 8세기(통일신라)

성격 : 불탑, 전탑

크기: 높이 16.13m, 기단 폭 7.3m.

 

보물 제189호. 송림사 대웅전 앞마당에 있다.

탑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기단과 벽돌로 쌓은 탑신,

청동으로 주조된 상륜으로 구성되었다. 1959년 완전 해체 복원되었는데,

수리 당시 1층, 2층, 3층과 상륜의 복발 등에서 다량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사리장엄구는 현재 보물 제325호로 지정되어 국립대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사리장엄구관/국립대구박물관소장

 

이 전탑의 건립과 중수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1959년 해체 수리 시에 탑 내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를 통하여

여러 차례 수리복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층 탑신 내부에서 발견된 조선 시대 목불과 파손된 석불, 동불 등은

원래 감실을 막아 봉안된 것이다. 또한, 2층 옥개석에서는

거북모양[龜形] 석함 속에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특히 이 석함에서 발견된 사리기는 감은사 석탑에서 발견된

보장형(寶帳形) 사리기와 유사하며 사리병을 비롯한 유리잔은

최고의 사리구로 평가된다. 한편 상륜의 복발에는

청자상감합(靑磁象嵌盒)이 봉안되었고, 그 내부에는 향나무(香木)가 들어있었다.

따라서 이 전탑은 통일신라 초기에 건립된 후

고려, 조선 시대를 거치는 동안 여러 차례 수리가 있었으며

그때마다 추가로 사리기가 봉안되면서 탑의 변형이 있었다고 추정된다.

 

 

기단은 지대석을 놓고 면석을 세운 후 갑석으로 덮는 가구식으로 되어 있는데

상단부를 흙으로 채웠다. 탑신은 사각형(方形)과

직사각형(長方形)의 벽돌로 쌓아 올렸다.

탑신의 비례는 1층에 비해 2층에서 절반에 가까운 급격한 체감을 보이지만

2층부터 5층까지는 거의 변화 없이 완만하다.

탑신에는 별다른 흔적은 없으나 초층탑신 남면은

원래 있던 감실을 채운 흔적이 발견된다.

옥개석은 하단을 내어 쌓고 상단을 들여쌓아

전형적인 전탑의 옥개석 양식을 보이고 있다.

각층의 탑신 받침은 1층부터 9, 7, 7, 6, 4단으로 줄어들며,

옥개 상단은 1층부터 11, 9, 8, 7, 5단으로 감소하고 있다.

지붕의 추녀는 재질의 특성상 짧고 평박하다.

상륜은 5층 옥개석 위에 벽돌을 3단으로 쌓아 높이고

철판을 놓아 노반을 형성하였는데, 모서리에는 풍경을 달았다.

그 위로는 청동제 복발(覆鉢), 앙화(仰花), 보륜(寶輪), 수연(水煙)의 일부,

용차(龍車), 보주(寶珠)의 순으로 남아 있다.

 

 

이 탑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전탑 가운데 원형을 가장 잘 유지하고 있다.

기단부는 화강석을 이용하여 지대석, 장대석(長大石), 면석(面石),

갑석(甲石) 등 완벽한 가구식 기단으로 구성되었다.

현재 안동지역에 남아 있는 전탑들은 기단부가 크게 변형되거나 유실되었는데,

전탑도 화강암을 이용한 가구식 기단이 원형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초층 탑신부 하단에는 화강암으로 탑신 괴임을 두어 내구성을 높였으며

탑신의 체감률이 적절하여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지녀

5층 전탑의 전형을 보여준다. 특히 높이 약 4.5m의 금속제 상륜부는

기록상으로만 남아 있는 안동지역 전탑의 형태를 추정하는데

결정적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대부분의 전탑은 재질의 특성상 파괴되거나 외형이 크게 변형된 그것에 비교해

이 탑은 거의 완벽한 형태로 전승되어 왔다.

금동 상륜부는 1959년 해체 수리할 때에 원형을 복원한 것이지만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전탑의 상륜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배레석. 앙련이 부조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내부에서 완벽한 형태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는데,

사리구의 구성이나 내용 면에서 최고의 예술적 가치를 지녀

당대 공예기술의 백미로 평가된다. 특히 2층 거북 모양 석함에서 발견된

방형 사리기는 경주 감은사지 동탑사리기,

일본 호류지(法隆寺) 금당삼존불 천개(天蓋)와 형태가 유사하며

녹색유리잔은 소쇼인(正倉院)에 남아 있는

유리잔과 거의 같아 당시 동아시아 문화교류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자료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 사리장엄구(漆谷 松林寺 五層塼塔 舍利莊嚴具)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에 자리 잡은 신라 시대

고찰 송림사의 오층전탑(보물 제189호) 안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문화재지정 보물 제325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진출처: 나무위키/대구국립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