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미평리약사여래입상

2020. 11. 27. 22:00문화재

 

용인 미평리 약사여래입상(龍仁 彌坪里 藥師如來立像)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 있는 불상이다.

1983년 9월 19일 경기도의 문화재자료 제44호로 지정되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미평리에 있는 화강암으로 만든 이 석불은

마을 사람들이 병의 치유를 기원하면 약을 준다고 하여

‘의왕불(醫王佛)’이라고 불린다.

석불은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으나,

머리 위에는 자연석의 넓은 돌이 별도로 놓여 있다.

얼굴에는 눈꼬리가 길게 표현된 초승달 모양의 눈과 오뚝한 코가 묘사되어 있다.

목에는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새겨져 있으며,

양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에는 넓은 U자형의 주름이 흐르고 있다.

양손은 가슴에 놓여 있는데, 왼손에는 정병(淨甁)을 들고 있다.

불상 앞에는 자연석으로 된 불단이 있고

불상의 주변에는 돌기둥이 있는 것으로 보아

본래는 불상을 모시던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용인 미평리석조약사여래입상

문화재명: 경기도 유형문화재 자료 제44호

크기: 높이 4.3m

조선 시대: 고려 시대

 

 

 

 

보개(寶蓋)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되고 또 마모되어 있다.

석질이나 그 현재의 형상을 보면

원래의 보개가 아닌 후대에 보완한 것으로 보인다.

얼굴은 이마와 턱을 둥글게 처리하였으나 전체적으로 사각형에 가깝고,

눈썹은 깊게 부조되어 있고 눈은 초승달처럼 부조하였으나

눈썹이 눈보다 길게 덮여 있다. 미간에는 백호가 있고,

목에는 수행의 세 단계를 의미하는 삼도가 선명하다.

귀와 코는 큼직하게 부조되어 있다.

 

 

 

풍만하고 넉넉한 얼굴과는 달리 신체는 평면적으로 부조되어 있고,

오른팔과 왼팔의 크기가 조화롭지 못하다.

수인은 오른손의 손등을 밖으로 향하고 가슴 위에 올려놓았고,

왼손은 가슴 부위까지 올려놓고 정병(淨甁)을 쥐고 있다.

 

정병(淨甁)은 범어(梵語) 군디카(Kundika)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음역(音譯)하여 군지(軍持) 또는 군치가(桾雉迦)라 하고,

수병(水甁)이라고도 하는데 중생들의 고통과 목마름을 해소해 주는

감로수(甘露水)와도 서로 통하여, 감로병 또는 보병(寶甁)이라고도 일컫는다.

 

불교의 정병은 인도에서 발생하여 불교와 함께 우리나라에 전래한 것으로,

부처님 앞에 물공양으로 바치는 불기(佛器)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불·보살의 지물(持物)로서 구제자(救濟者)를 나타내는 하나의 방편이자

자비심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내용을 잘 표현해 주고 있는 것이 바로 관세음보살이 들고 있는 정병이다.

 

안성대농리석불입상(경기도 유형문화재자료 제46호)

그런데 관음보살의 지물로 알려진 정병을

약사여래가 들고 있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며

학술적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따르지만,

이는 귀족불교인 신라에서 고려로 넘어오면서

고려의 주축세력인 호족세력의 영향으로 불교 문화 역시

귀족인 아닌 민간 주도로 불교가 형성되면서

이 과정에서 이러한 불상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사료된다.

그 일례로 용인과 멀지 않은 안성 대농리석불입상도

미륵불이지만 정병을 쥐고 있다.

이 석불 역시 고려 초에 제작된 것이다.

 

 

 

 

법의는 양어깨에 법의를 걸친 통견이며,

옷 주름은 발밑까지 크게 ‘U’자형으로 새겨져 있는데

불상의 다리와 다리 사이에는 굵은 선이 돋을새김으로 부조된 것이 특이하다.

이러한 돋을 띠 형식의 굵은 옷 주름이 새겨진 것으로는

안성 매산리 석조보살입상에서 볼 수 있다.

 

 

 

 

이천 매산리석불입상(경기도 유형문화재자료 제37호)

 

 

@배례석

불상 앞에 투박한 이 돌은 배례석으로 보인다.

통상적으로 배례석은 중앙에 연화(蓮花) 무늬와

좌우 양면에 안상(眼象) 등이 부조되어 있는데

그러한 부조 양식은 보이지 않는다.

 

 

@석주

주변에 석주가 늘려 있는 것으로 보아 옛적에 이 불상을 보호하기 위한

전각이나 보호각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