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동도사 어비리삼층석탑과 석불좌상

2020. 11. 12. 19:56문화재

 

전통사찰 제95호로 지정된 용인 동도사(東度寺)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어비리(魚肥里)에 있다.

도로변에 있어 접근이 용이하다.

필자가 방문 시 동도사는 불사 중이라 조금 어수선했다.

동도사는 원래 법화종 소속의 사찰이었으나

현재 한국대중불교 불이종(不二宗) 소속의 전통사찰로 등록되어 있고

종단의 총무원이 있는 총본산이라고 하는데

다른 자료에 의하면 현재는 태고종 소속이라고 한다.

 

 

본래 절 이름은 금단사(金丹寺)였다고 하는데, 창건주와 조성연대는 알 수 없다.

동도사의 홈피에 의하면 신라말의 도선국사와 동일시대의 선승으로

신라말과 고려 초에 활동한 금단선사가 창건주라 하는데 기록이 없어 알 수 없고,

또 세조실록지에 어비리산 천금당곡에

금단사가 있었다고 하는 기록이 보인다고 밝히고 있다.

그 후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서 유실 폐사되었던 것을

어비리동 주민이 불상, 석탑, 석등을 수습하여 법당을 짓고

어비율절로 명명하여 동리의 사찰로 이어오다

1960년 수리조합 저수지 공사로 수몰 위기에 처하자

남사면 진목리에 사는 차장업(車壯業) 거사가

석탑과 석불, 석등 등을 보호하기 위하여 옛 절터의 유물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여 1963년에 복원하면서

사명을 동도사로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하여 동도사는 새로 창건된 사찰이지만

신라 때의 사찰 법등을 소장하게 되어

1990년에 경기도 전통사찰 제95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동도사의 문화재로는 동도사 3층석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94호)과

동도사석불좌상(용인시 향토문화유적 제65호)이 있다.

 

(일주문을 겸한 이 전각은 2층 누각 형태로 보아 후일 종각으로 사용될 것을 보인다.

아래층은 사천왕상들이 조성된 것으로 보아 천왕문을 겸하고 있다.)

 

석불 좌상은 대좌와 석불의 양식적인 특성으로 보아

통일신라 시대 말기나 고려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삼층석탑의 상륜부는 결실되었으나

지대석과 기단, 탑신 및 옥개 부분은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신라계 석탑의 전형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규모가 작아지고 층급 받침이 4단으로 줄어든 점,

기단 갑석 상면의 물매가 완만해진 점, 상층 기단 갑석 위에 별석으로

탑신 받침을 마련한 점 등은

신라 말기에서 고려 전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양상을 보이는 석탑이다.

 

북방 다문천왕
서방 광목천왕
동방 지국천왕
남방 증장천왕

 

 

 

대웅전 앞에 삼층석탑과 석등이, 좌측에 황금종을 올려 놓았다. 종각이 완성되면 옮겨갈 모양이다.

 

@용인어비리삼층석탑(龍仁魚肥里三層石塔)

삼층석탑은 이동면 어비리 동도사  대웅전 앞에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하여 소실된 사지(寺址)에 있는 것을,

주민들이 파손된 부분을 보수하여 같은 장소에 세웠다가

1960년 이동저수지 공사로 수몰 되게 되자,

1963년 동도사(東度寺) 주지(住持) 차장업(車壯業)이

사찰 경내로 이전하여 복원한 것이다.

어비리삼층석탑은 2004년 8월 경기도 문화재위원회에서

시도문화재자료 제43호로 지정되었다가

시도유형문화재 제194호로 격상 지정하였다.

1988년 『기내사원지(畿內寺院誌)』에 의하면

1963년 해체할 때 어비리 삼층석탑 내부에서

소탑 1점, 옥석, 향로 1점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하나 현전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의 모습은 1963년에 복원한 모습이고

현재 석탑의 총 높이는 270㎝이다.

 

석탑의 형태를 살펴보면,

커다란 기단과 3층의 탑신을 지니고 있어 안정된 구조감을 보인다.

기단부는 2단으로 나뉘었는데 하대석은 4매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다.

하대 면석에는 각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 모양을 부조하였다.

 

하대 갑석은 2매의 석재로 구성하였는데,

그 하단에 1단의 부연을 각출하였고, 상면에는 2단의 받침을 마련하였다.

상대의 면석은 4매의 석재로 구성되었는데,

각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 모양을 부조하였다.

 

상대 갑석의 받침부에는 별매석으로 제작된 옥신받침을 두었다.

탑신부는 상륜부가 멸실된 상태이고

1층과 3층의 옥개석은 부분적으로 파손되었다.

탑신부와 옥개석은 별도의 화강암으로 각각 제작하였다.

 

 

각 옥개석 상단에는 탑신 받침을 마련하고

처마의 곡선은 날렵하고 세장하게 만들었으며 전각은 얇고 끝을 살짝 올렸다.

층마다 옥개받침을 4단으로 모각하고 외면으로는 낙수 홈을 팠다.

그 이하로는 탑신을 올렸는데, 탑신 양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크게 모각하였다.

상륜부는 멸실 되어 어떤 유형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석등(石燈)

석탑 앞의 이 석등은 어비리삼층석탑을 이전 할 때 함께 옮겨온 것으로,

전체적으로 화재로 인한 흔적이 남아 있다.

하대석은 복련이 부조되어 있고, 간주석은 상단 부분이 화재로 색상이 변색되어 있다.

화사석은 보강된 것으로 보이며, 옥개석은 마모가 심하여 판독하기 어렵고,

보주는 멸실된 것으로 보인다.

 

어비리 삼층석탑을 보수하기 이전의 원형 석재는

기본적으로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시대 초기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각 면석부의 기둥 모양은 3매로 구성되어 있고,

상대 갑석 위에 탑신 받침을 별매석으로 마련하고,

옥개받침을 4단으로 구성한 것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보이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자료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대웅전

정면 3칸, 측면 3칸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법당 안에 석가모니불 석불 좌상(용인항토문화재 제65호)이 봉안되어 있고

그 옆으로 지장탱과 신중탱이 봉안되어 있다.

 

 

 

@동도사석불좌상

동도사 석불좌상은 불상과 대좌의 양식을 보아

신라말에서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석불이다.

2011년 6월 27일 용인시의 향토 문화재 제65호로 지정되었다

 

원래 금당골 어비울절로 불렸던 곳에 있었다 한다.

임진왜란으로 절이 폐사되자 마을 사람들이 어비리 막곡마을로 옮겼는데,

1963년 이동저수지가 생기면서 삼층석탑과 함께 동도사로 다시 옮겨놓은 것이다.

화재로 불상과 대좌 일부가 파손되고,

대좌의 중대석은 도난당해 새로 보완된 것이라고 한다.

대좌의 부조는 신라 시대의 승탑에서 볼 수 있는 형상이 부조되어 있다.

특히 대좌의 하대 지대석의 사자상은

신라 시대의 승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상으로

이로 미루어보아 통일신라 양식을 계승한 고려 초기 불상으로 추정된다.

 

동도사 석불좌상은 광배는 없고 불신은 삼단으로 된 대좌 위에 결가부좌를 하고 있다.

머리는 소라 모양의 나발에 얕은 육계(肉髻)를 하고

눈은 초승달 같은 눈썹에 눈동자와 입은 붉게 칠해져 있다.

미간에는 백호가 보이지 않으며, 인중과 귀가 길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다.

불신은 오랜 세월 동안 도금이나 회분 등으로 인하여

원형이 많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가사는 전형적인 우견편단을 하고 있으며

수인은 오른손은 아래로 향한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으며,

왼손은 손바닥이 밖으로 향하여 오른발 위 복부 아래에 두고 있다.

전하는 말로는 왼손에 약합(藥盒)이 있어 약사여래불로 경배 되었던 모양이다.

이는 1993년 불상을 복원할 때 회분을 제거하여 보니

약사여래가 아닌 항마촉지인을 한 석가모니불임이 확인된 것이다.

 

대좌는 지대석 위에 하대, 중대, 상대로 구성되어 있고 하대는 2중으로 되어 있다.

 

상대는 앙련(仰蓮)으로 두 겹으로 묘각 되어 있다.

위의 앙련은 봉우리를 중간에 묘각되어 있고,

아래에는 개화된 연꽃잎으로 부조되어 있다.

 

 

하대의 하단은 팔각형 평면에 안상(眼象)을 부조하고

그 안에 사자상이 양각으로 부조되어 있다.

면마다 사자상의 형상을 달리하고 있다고 하는데

마모도 심하고 또 제단에 가려져 있어 분별하기가 어렵다.

하대의 상단은 복련이 부조되어 있다.

 

중대석은 수몰 당시 동도사로 이전 복원할 때 도난되어 새로 보강한 것이라고 한다.

팔각형 평면에 기둥을 두르고 합장한 여래와 공양보살과 향로가 부조되어 있다.

 

 

원래의 중대석에는 정면 3면과 후면 1면에 부조하였는데

중앙에는 유희좌(遊戲坐: 결과부좌에서 한쪽 다리를 풀어 대좌 밑으로 내린 자세)

형태를 보이는 보살을 중앙을 두고 좌우에

전신광배(거신광)을 한 합장한 보살이

연화좌에 앉은 형태로 부조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보강된 중대석은 향로를 중앙에 두고

공양보살과 합장한 보살을 양각으로 부조되어 있다.

이러한 보살상과 여래상, 향로, 사자상 등은

통일신라 때 조성된 국보 제53호와 54호인 연곡사 동승탑과

북승탑의 탑신에 부조된 것과 많이 닮았다.

 

 

 

지장탱

 

신중탱

 

 

@대웅전 앞에는 해태상으로 보이는 석물이 조성되어 있는데

마모가 심하여 분별하기 어렵다.

 

수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