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겁외사와 성철스님 생가

2020. 9. 19. 21:12문화재

 

코로나에 태풍 탓으로 몇 달 동안을 미루고 벼른

석남암사지비로자나불(국보 제233-1호)를 친견하기 위해 산청 내원사로 향했다.

석남암사지석조비로자나불은 우리에서 최고(最古)로 오래된 석불로

국보(제233-1호)로 지정된 석불이다.

요즘 날씨는 하도 변덕스러워 출발 당일까지 검색해 보니

다행히 산청지역은 흐리지만 비 소식은 없었다.

서울에서 산청까지는 당일 코스로는 상당히 먼 거리라서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시간대라서 그런지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그런데 함양을 지나니 느닷없이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지리산이 가까워지니 굽이굽이마다 날씨가 달라진다.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진다. 그래도 예까지 내려와서 방향을 바꿀 수도 없어

계획대로 산청으로 계속 나아갔다. 다행히 비는 내리다가 그치기를 반복하더니

산청읍에 들어서니 멈추었다. 흐린 날씨에다 사찰을 방문하기는

조금 이른 시간이라 가볍게 둘러볼 곳이 없나 도로변 이정표를 살펴보았다.

겁외사 이정표가 눈에 띄었다.

원래 내려올 때는 계획이 없던 코스다.

돌아갈 시간대를 고려하여 산청의 사찰은 내원사와 대원사,

수선사 세 곳만 둘러보고, 귀경길에 시간이 된다면

남원 지역의 몇 사찰을 둘러 보기로 계획 했는데

다행히 고속도로에서의 정체도 없었고

코로나 탓에 휴게소에 머무는 시간도 줄인 탓에

생각보다 시간이 단축되어 조금 여유로워졌다.

 

산청 겁외사는 성철(性徹 1912~1993. 11. 4) 대종사의 생가터에 있는 사찰로,

전국에 있는 15곳의 성철스님 문도사찰(門徒寺刹) 중 한 곳이다.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이자 20여 년간 성철스님을 시봉했던

원택 스님이 창건하였으며,

2001년 3월 30일에 창건 회향법회를 가졌다고 하는 사찰이다.

 

겁외사(劫外寺)라는 사명(寺名)의 유래는 성철스님이

만년의 몇 해 동안 겨울철이면 백련암을 떠나 부산의 거처에 주석하면서

그곳을 겁외사라고 부르게 하였는데 그로부터 사명(寺名)을 딴 것이라고 한다.

겁외사 입구는 2층 누각이 일주문 역할을 한다.

이 누각은 18개의 석주(石柱)가 받치고 있는 커다란 누각으로

18개의 석주를 세운 의미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18계(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누각 정면에는 지리산겁외사(智異山劫外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뒷면에는 벽해루(碧海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벽해루라는 이름은 스님이 평소 즐겨 얘기하던

‘홍하천벽해(紅霞穿碧海 )’라는

문구로부터 지은 것이라 한다.

이 구의 의미는 아침의 붉은 해가 푸른 바다를 뚫고 솟아오른다는 뜻이다. 

 

 

누각을 지나면 넓은 마당이 펼쳐지고,

마당 중앙에 성철스님의 석조입상을 비롯하여

커다란 염주·목탁 조형물이 세워져 있고 좌측에 대웅전이 조성되어 있다.

동상 뒤편에 보이는 고택들은 새로 지은 성철스님의 생가이다.

 

 

 

 

 

@대웅전

정면 3칸·측면 3칸 규모의 대웅전은 성철스님동상 왼편에 자리 잡고 있는데

내부 불단에 길상좌의 결가부좌에 항마촉지인을 한 석가모니불을 모셨으며

뒤편에 목각 영산회상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목각탱은 중앙에 본존불을 봉안하고, 8대 보살이 둘러싸고 있고

상하 양쪽 끝에 사천왕이 부조되어 있다.

최상단에는 나한상이 부조되어 있다.

다른 한쪽 편에 한국 수묵화의 대가인 김호석 화백이 배채법으로 그려낸

성철스님의 진영이 걸려 있고 다른 한쪽에는 보현행원품 위에 그려진

성철스님의 일원상(一圓相)이 조성되어 있다.

외벽 벽화에는 스님의 출가·수행·설법·다비식 장면 등을 묘사하였다.

 

 

 

 

 

 

 

@생가

성철스님 동상 뒤편에 보이는 이 고가(古家)는 2000년 10월 복원한 스님의 생가다.

이곳은 스님이 대원사로 출가하기 전, 이영주라는 속명으로

스물다섯 해를 살았던 곳으로, 모든 건물은 새로 건립된 것이다.

혜근문(惠根門)이라는 현판이 달린 문을 통과하면

정면에 선친의 호를 따서 율은고거(栗隱古居)라고 이름 붙인 안채,

오른쪽에 사랑채인 율은재(栗隱齊), 왼쪽에 기념관인 포영당(泡影堂)이 있고,

안채에는 해인사 백련암에서 생활할 때의 방 모습이 재현되어 있으며,

사랑채와 기념관에는 누더기 가사·장삼·고무신·지팡이·친필자료·

안경·필기구 등 스님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른 시간대라 문이 닫혀 있어 둘러볼 수가 없었다.

 

 

 

@겁외사 성철스님 동상 앞 바위 위에 놓인 둥근 이 돌은

굽은 푸른 솔과 더불어 멋진 풍광을 보여주지만,

아마도 겁외사 여기에 둔 이 돌의 의미는

산청 내원사의 <좋은 기(氣)를 품어내는 철광 연꽃돌>과 같은 의미를 지닌

돌이 아닌가 생각된다.

산청 내원사 경내를 들어서면 우측에 놓여 있는데 이런 설명이 붙어 있다.

「손으로 접촉하면 자신의 몸에 나쁜 기(氣)가 소멸하고,

마음으로 접촉하면 이루고자 하는 일이나 뜻이 분명하게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여기에 집중하면

그대가 하늘과 땅과 더불어 한 뿌리요,

만물과 더불어 한 몸임을 느끼게 해 준다고 한다」

시공간을 초월했다는 <겁외사(劫外寺)> 라는 사명(寺名)과 좋은 매치가 된다.

 

 

 

 

정오당
심검당은 종무소로 이용된다.

@성철스님기념관

성철(1912~1993) 스님의 행적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으로 겁외사 왼쪽에 있다.

성철스님의 기념관은 성철 스님의 제자 불필 스님과

원택 스님, 문도 스님들이 성철 스님 탄신 100주년(2012년) 사업으로 추진해

3년여 만에 완공된 것이라고 한다. 한국의 전통가옥과

불교 석굴유적지를 모티브로 조성했다고 한다.

 

1층에는 성철 스님 설법상을 모셔 참배공간으로 조성했고,

2층에는 교육장격인 ‘퇴옹전(退翁殿)’을 지어

불자들의 수행정진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기념관 뒤편에는 <벽해선원(碧海禪院)>이란 부속 전각이 조성되어 있다.

 

기념관 입구에는 여덟 개의 돌기둥이 건물을 받치고 있는 데

이는 불교의 팔정도(八正道)를 상징하며,

인도 구법승의 출발지였던 중국 둔황(敦煌) 명사산의 월아천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석굴 바깥의 왼쪽은 아미타불 1000불과 관세음보살상을,

오른쪽은 약사여래불 1000불과 보현보살상을 각각 안치했다.

2층 퇴옹전은 강당과 같은 너른 공간으로

참선과 절, 기도, 강의 등이 항시 이어질 수 있게 했다.

 

 

석굴 현관인 성불문(成佛門)을 지나면

중앙에 흰 대리석의 성철 스님 설법 상(說法像)이 모셔져 있고,

그 뒤에는 과거불인 연등불, 현재불인 석가모니불, 미래세의 미륵불이

감실 안에 조성되어 있다. 후면 벽에는 연꽃 만다라 조각상이 양각돼 있다.

 

 

 

 

 

 

기념관 건립에는 20억 원 이상 들었다고 한다.

전통사찰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보조금 지원을 받지 못해

전액 신도들의 시주로 건립된 것이라고 한다.

 

@성철대종사

출생:1912년

입적: 1993년 11월 4일

경력: 해인총림 초대 방장, 조계종 제7대 종정

 

본관은 합천(陜川). 속명은 이영주(李英柱). 호는 퇴옹(退翁). 법명은 성철(性徹).

경상남도 산청 출신. 아버지는 상언(尙彦)이며,

어머니는 진주(晉州) 강씨(姜氏)이다.

8년 동안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행하는 등 평생 철저한 수행으로 일관하였으며

돈오사상(頓悟思想)과 중도사상(中道思想)을 설파하신 스님이시다.

 

겁외사 산문을 벗어나면서

『산시산 수시수 불재심마처 (山是山 水是水 佛在甚麽處)』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부처님은 어느 곳에 있는가?”

라는 스님의 옛법어를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