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원적산 영원사(靈源寺)
2020. 9. 17. 19:08ㆍ국내 명산과 사찰
이천은 명산으로 불릴만한 높은 산이 없어서 그런지 고찰(古刹)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천지역에 는 여러 사찰이 있지만, 대부분이 사력(寺歷)이 짧은
현대식 가람인데 비하여, 영원사(靈源寺)는 전각은 오래되지 않았지만,
배산이 수려하고 또 신라 석불의 맥을 이은
석조약사여래좌상 등이 있어 고찰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영원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의 말사로
이천에서 제일 높다는 이천시 백사면 송말리 원적산의 동쪽 산 중턱에 있다.
절의 창건과 내력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사적기에 의하면
신라 선덕왕 7(638)년에 창건되었다고 하며,
고려 문종 22(1068)년에 혜소국사(慧炬國師)가 화재로 소실된 절을 중건하였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도 여러 차례의 중수 기록이 있으나
가장 확실한 것은 순조 25(1825)년에 영안부원군 김조순(金祖淳)의 후원으로
인암(仁巖) 치감선사(致鑑禪師)가 중건한 것이다.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정심당, 유리보전, 산신각,
지장전과 요사채가 있으며 문화재로는 석조약사여래좌상(향토유적 제12호)과
갈산동에서 옮겨온 갈산리 석조여래입상(향토유적 제7호)이 있다.
경내에 들어서면 입구 좌측에
「諸惡莫作 衆善奉行(제악막작 중선봉행」이란
<七佛通偈(칠불통게)>를 인용한 글귀가 바위에 음각되어 있고,
우측에는 산스크리트로 된 「옴마니밧메훔」 이란
<6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이 또한 바위에 음각되어 있다.
<칠불통게(七佛通偈)>는 도림 선사와 백거이의 일화로도 잘 알려진 게송으로,
그 내용은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
자정기의(自淨其意), 시제불교(是諸佛敎)」 라는 것으로
풀이하자면,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여,
스스로 마음을 청정케 하는 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라는 의미다.
갈산리석불입상
1986년 04월 14일에 향토유적 제7호로 지정된 갈산리석불입상은
전체 높이는 4.1m, 어깨 폭은 0.73m, 4개의 석주로 둘러싸여 있고
불상 앞에는 탑신 일부분이 배례석처럼 놓여 향로가 올려져 있다.
조성 시기는 고려 중기로 추정된다.
화강암으로 조성되었고, 머리는 소발로 높고
위가 편편한 두건을 쓴 모습과 흡사하고 상호는 원만하고
양쪽 볼이 비대하여 고려 불상의 특색을 지니고 있다.
이마의 큼직한 백호는 보주를 박은 흔적이 뚜렷하며
양미간으로 굽어보는 듯한 수려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양쪽 볼과 턱, 파손이 심하고 코는 마손되어 새로 보정되어 있다.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고, 법의는 통견으로,
허리에서 발목으로 흐르는 의문이 특이하다.
요대를 두른 허리 복판을 묶은 결대의 조각이 특이하다.
수인은 오른손을 들어 가슴에 대고 손바닥이 밖으로 향하고
엄지와 검지를 마주 대하고
왼손은 지물(연꽃가지)을 들고 바로 내려 허리 춤 정도 옷자락 위에 대었다.
불상은 정방형의 대좌 위에 세웠는데
전체 높이는 4.1m 어깨 폭은 0.73m 정도이다.
사방에 1.65m 정도의 돌기둥과 불상 앞에
배례석으로 보이는 향로를 받치고 있는 방형의 석재는
탑신 일부분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머리보다 불신(佛身)이 가늘고
길어 조화롭지 못하다. 조성 시기는 고려 중기로 추정된다.
대웅전
전면 5칸, 측면 3칸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된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모셨다.
@애자모지장보살
사찰을 탐방하다 보면 이런 불상은 건성으로 보기 쉬운데
이 보살이 애자모 지장보살상이다. 낙태와 생전(未生) 전후에
죽은 영아(嬰兒)들을 위한 천도와 명복을 빌기 위해
요즘의 사찰에서는 이런 애자모 석불상들을 조성하고 있는 곳이 많이 눈에 띈다.
일례로 팔공산 갓바위를 오르다 보면 작은 동굴 안에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지장보살을 볼 수 있는데,
이 보살을 애자모 지장보살이라고 한다.
애자모(愛子母)는 귀자모(鬼子母)에서 유래된 이명(異名)으로
귀자모는 원래 인도 중북부 및 네팔지역에서
어린아이들에게 천연두를 일으키는 무서운 야차이었다.
귀자모는 범어 하리티(Hrit)의 의역으로서,
하리티의 뜻은 ‘생명을 가져가다’ 혹은 ‘생명을 빼앗다’는 뜻이다.
어린아이의 생명을 빼앗는 천연두 하리티가 불교에 차용된 후
어린아이를 보호하는 신으로 바뀌었고,
이후 한국과 중국, 일본에 전래되어 귀자모로 더 널리 알려졌다.
귀자모는 아리제모(訶梨帝母), 아리가(訶梨迦),
아리저(訶里底) 등으로도 표기되며,
이후 야차녀, 애자모(愛子母), 환희모(歡喜母),
구자모(九子母)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명부전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좌우에 무독귀왕과
도명존자가 시립해 해 있고, 좌우에 시왕을 모셨다.
유리보전
전면 3칸, 측면 2칸,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법당 안에는 석조 약사여래를 모셨다.
예전의 약사전을 유리보전으로 전각명을 개명하여 재건축된 것으로 보인다.
약사여래는 약사유리광여래(藥師瑠璃光如來), 대의왕불(大醫王佛)이라고도 한다.
동방 정유리세계(淨瑠璃世界)에 있으면서
모든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소멸시키며,
부처의 원만행(圓滿行)을 닦는 이로 하여금
무상보리(無上菩提)의 묘과(妙果)를 깨달아 얻게 하는 부처이다.
그는 과거세에 약왕(藥王)이라는 이름의 보살로 수행하면서
중생의 아픔과 슬픔을 소멸시키기 위한 12가지 대원(大願)을 세웠다.
사찰에서 따라 유리광전, 약사전 등으로 명명되고,
협시불로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봉안되기도 한다.
지물로는 약함을 들고 있으며, 12 신상을 거느린 여래로
우리나라의 약사여래 조상은 모두 통일신라 이후부터 조성된 것이다.
영원사 석조약사여래좌상
유리보전 안에 모셔진 이천 영원사 석조약사여래좌상(利川 靈源寺 石造藥師如來坐像)은
본래는 현 영원사 대웅전 우측 약사전(樂師殿) 안에 안치했던 것을
1985년 새로 연화대좌(蓮花臺座)를 만들고 현 위치에 안치해 놓았다.
1986년 4월 14일 이천시의 향토유적 제12호로 지정되어 있다.
약사 여래상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해호선사가 창건 당시에 수마노석으로 만든 약사여래를 조성하여 봉안한 바 있었다.
(수마노석이란 물에서 나는 노마석으로 화강암 중에
석영 종류의 보석 일종으로 취급된다.
대표적인 탑으로는 정선 정암사 국보 제332호인 수마노탑이 있다)
그런데 후에 절이 모두 타고 약사여래만 남아있었다.
고려 문종 22(1068)년 혜거국사가 불타버린 영원암을 중창할 때였다.
혜거 스님의 꿈에 약사여래께서 나타나
"왜 나를 버려두고 갔느냐?"고 몹시 호통을 치셨는데
같은 날 신도들도 똑같은 꿈을 꾸었다.
다음 날 윗 산인 안산으로 올라갔더니 사람의 힘을 빌지 않고
석불 스스로 내려와 계시므로 서둘러 약사전을 짓고 봉안하였다고 하며
지금도 자주 약사여래의 위신력을 보인다고 한다.
영원사 석조약사여래좌상(利川 靈源寺 石造藥師如來坐像)의
목 위의 두상(頭像) 부분 역시 근래에 새로 조성한 것이다.
현재 불상의 높이는 1.18m, 어깨 폭은 71cm, 무릎 폭은 1.05m이며,
대좌의 높이는 94cm이다.
새로 조성한 머리는 소발(素髮)에 육계가 조화를 이루었으며,
상호(相好)는 원만하고 두 귀는 목 위까지 길게 늘어져 있으며,
목에는 3도(道)가 있고, 부드러운 어깨는 넓고 당당한 모습이다.
법의(法衣)는 우견편단(友肩偏袒)으로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에 이르는
옷섶에 걸쳐 늘어진 레이스형의 주름이 독특하며,
오른발이 두툼한 왼쪽 무릎에 얹어 결가부좌를 하고 있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하향(下向)하게 하여 무릎 위에 얹고,
왼손은 오른쪽 발바닥 위에 약함을 받쳐 들고 있어
이 불상이 약사여래의 상임을 알 수 있다.
영원사의 사적기(寺蹟記)에 의하면,
신라 선덕여왕 7년(638)에 해호선사가 절을 창건하고,
수마호석(水瑪湖石)으로 약사여래좌상을 조성하여 봉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표현수법으로 미루어 삼국시대의 불상으로 보기는 어렵고,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 이상으로는 거슬러 올라가지 않은 작품으로 추정된다.
산신각
전면 3칸, 측면 2칸으로 다포식 팔작지붕인 산신각은
유리보전 옆에 조성되어 있다. 법당에는 산신탱과 독성탱이 봉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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