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평 남하리석조미륵보살입상(南下里石造彌勒菩薩立像)

2020. 7. 25. 21:54문화재

우리나라 석불 중 석주형(石柱形) 거불(巨佛)은

주로 안성 쌍미륵사 가솔리석불입상, 안성 매산리 석불입상 등과 같이

경기 남부지역과 논산 관촉사 은진미륵이나 부여 대조사와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입상과 같이 충남지역 일대에 많이 발견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고려 초기 작품으로

증평 남하리 석조미륵보살입상도 여기에 속한다.

 

증평 남하리석조미륵보살입상은 증평 남하리 미륵마을에 있는

미륵보살입상으로 아랫부분은 땅 밑에 묻혀 있다.

이 불상은 원래 미륵마을 옆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찰에 있었는데,

사찰이 이 미륵불 때문에 번창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불상을 넘어뜨려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고 한다.

이런 일로 해서 본래는 보개석을 머리에 얹었다고 생각되나 지금은 없다.

이후 1949년 속리산 법주사의 승려 월인(月印)이

마을 뒤편에 성주사(聖住寺)라는 절을 짓고

쓰러진 이 불상을 다시 세우고 2기의 다른 보살상과 더불어

마을의 수호부처로서 보호하였다고 전해진다.

 

민속체험관 안에 조성된 조형물

증평 남하리 석조미륵보살입상을 쉽게 찾아가는 길은

증평민속체험박물관(주소: 충북 증평군 증평은 둔덕길 89)을

찾아가면 된다. 석조미륵보살입상은 박물관 안에 있다.

박물관에 주차하고 전시관이 있는 왼쪽으로 오르면

바로 석조미륵보살입상을 볼 수 있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08호로 지정된 증평 남하리석조미륵보살입상은

전체 높이는 350㎝로, 대형의 불상에 속한다.

머리에는 높은 보관(寶冠)을 쓰고 있고

머리 부분이 상당히 큰 편이며 두 귀는 길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다.

 

어깨가 좁고 몸은 양감 없이 편평하여 전체적으로

길쭉한 사각형의 형체를 보인다.

듬뿍 미소를 띠고 있는 얼굴은 온화한 인상을 풍기고

이마에는 백호(白毫)가 돋을새김하였다.

귀 위쪽에는 보개를 얹어 놓기 위한 것인지

영락을 단 것인지 알 수 없는 구명이 나 있다.

처음 발견 당시에는 백호 위에도 보개를 얹기 위한

2개의 구멍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마모되었는지

보수되었는지 가려져 있다.

 

 

오른손은 배 위에 붙였고 연꽃을 쥔 왼손은 가슴에 올려놓고 있다.

오른손은 마모가 심하여 그 형태를 판독하기 어렵지만,

왼손은 연꽃을 쥐고 있는 것이 선명하다.

손목에는 팔찌를 끼고 있다.

 

부여 대조사 석조 미륵보살 등에서 보듯이 한 손에는

연꽃 가지를 잡고

한 손으로는 연꽃 봉우리를 쥐고 있는 것과는

다소 형태가 다르지만

고려 시대에는 연꽃을 들고 있는 미륵 도상이 유행하였기 때문에

증평의 이 석조불상 또한 고려의 미륵 보살상으로 보고 있다.

 

 

법의(法衣)는 가슴 부분이 넓게 벌어지게 표현된 통견으로

두 팔에 걸쳐 흘러내리고 있다.

군의(裙衣)는 배 아래에서 활모양의 주름이 조각되었다.

대부분 보관을 쓴 보살상은 천의(天衣) 형식을 착용하지만,

이 보살상은 불의(佛衣) 형식을 착용하고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보살이면서 불의 성격을 동시에 가진 미륵보살의 신앙을

잘 드러낸다고 생각된다.

 

보살이 불의 형식의 옷을 착용하는 대표적인 작품이

부여 대조사 석조 보살입상으로 같은 계통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인접하고 있는 증평 미암리사지 석조관음보살입상에서도

나타나고 있어 지역적인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옷의 모양이나 수인, 그리고 얼굴 등에서 보이는 모습과

조각 양식으로 보아 고려 시대 중기 이후 지방에서 유행하는

보살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미륵불의 양쪽에 물이 고인 두 개의 석조물이 보이는데

1기는 마모가 심하여 알 수 없지만

다른 1기는 연화 문양의 흔적이 있어 석등의 하대석이 아닌가 사료된다.

 

미륵 보살상 왼쪽에 세워져 있는 1.3m~1.5m 높이의 작은 불상들은

미륵 보살상과 함께 옮겨 세워진 것이다.

좌측 불상은 나발(螺髮)의 머리 위에 작은 육계가 있고,

이마에는 백호를 양각으로 표현하여 돌출하고 있으나

상호를 시멘트로 보수하여 그 원형을 알 수 없다.

법의는 우견편단을 하고 있으며, 수인(手印)은 파손이 심하여

확실하지 않지만, 합장한 듯 보인다.

다른 것은 거의 보수하여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다.

군의(裙衣)는 두 허리 아래에서 흘러내린 옷 주름은 w자형으로

그 아래는 땅에 묻혀 있어 알 수 없다.

우측의 불상은 두상과 오른손 부위만 선명하다.

머리에는 원정모(圓頂帽)를 쓰고 있고,

얼굴은 단순한 윤곽만 부조되어 미소를 짓는 상이다.

법의는 우견편단인 것 같은데 목까지 덮여 있고,

주름은 산(山) 자 모양으로 흘러내리는 것이 아니라 위로 접혀 있다.

2구 모두 고려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나

미륵불보다는 후대의 것으로 생각된다.

이 보살상은 불의(佛衣) 형식을 착용하고 있는 점이 특징인데,

보살이면서 불의 성격을 동시에 가진

미륵보살의 신앙을 잘 드러내고 있으며,

이는 지역적인 특색이기도 하다.

증평의 석조미륵보살입상은 옷의 모양이나 수인,

그리고 얼굴 등에서 보이는 모습과 조각 양식으로 보아

고려 시대 중기 이후 지방에서 유행하는 보살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때문에 고려 시대 미륵보살의 도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으며,

증평 지역의 불교 신앙을 이해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증평 민속체험 박물관 입구에는 규모는 작지만, 연지(蓮池)가 조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