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용화사 증촌리석조여래입상과 석조여래좌상

2020. 7. 15. 20:28문화재

용화사는 경북 상주시 함창읍 증촌리에 있는

일반 민가 속에 있는 비구니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本寺)인 직지사의 말사(末寺)이다.

용화사의 창건 내력에 대해서는 현재 정확히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전설에 의하면 이곳이 본래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년) 때

의상 조사가 처음 창건한 상안사의 유지라고 전해지고 있다.

또 마을 사람들이 전하기를 이 마을을 탑동(塔洞)이라 하며,

조선 후기에 편찬된 함창읍지(咸昌邑誌)에

「사창(司倉) 뒤 현탑동에 신라 고찰인 큰 절이 자리하는데,

석조 미륵상 2위가 있다(新羅古刹 在縣西 司倉後現 塔洞 有石彌勒二基)"」

라는 기록이 있고, 속칭으로 대사(大寺: 큰 절)라고도 불렸다고 하는데

이는 용화사를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석조 미륵상 2위가 바로 약사전에 봉안된 불상들로,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20호)과 또 다른 석불입상(보물 제118호)이다.

그 밖에 전하는 내력은 없지만, 경내에 석탑과 석등, 주초석 등

여러 가지 오래된 석재 편들이 있어 이곳이 오래된 절터임을 알 수 있다.

용화사의 당우로는 약사전이 유일하며, 2동의 요사채가 있다.

 

 

약사전

용화사의 약사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주포식 맞배지붕으로 용화사의 유일한 전각이다.

법당은 정면에 신중탱이 봉안되어 있고,

보물 2기인 석조여래입상(보물 제1180호)과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20호)은 법당 우측에 봉안되어 있다.

석조여래좌상이 약사불이므로 동쪽에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신중탱

상주증촌리석조여래좌상 보물 제120호

보물 제120호인 지정된 석조여래좌상은

용화사 약사전의 주존으로 봉안하고 있는데 광배는 없고 대좌는 갖추고 있다.

 

대좌는 상, 중, 하대의 석 장의 돌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덟 모로 조각한 하대석에는 복판 연화문이 조각되어 있고

 

중대석에는 별다른 조식이 없으며,

상대석은 8각 원형으로 조성되었고 측면에 앙련(仰蓮)을

홑잎으로 각 여덟 각에 꽃잎을 한 개씩 조각하고

각 면에도 꽃잎을 한 개씩 배치하여

합해서 열여섯 개의 꽃잎인데 각각 꽃잎 안에는 다시 이중의 화판 장식이 있다.

 

얼굴 형태는 거의 직사각형을 하고 있으며,

어깨와 팔, 다리 등 신체 각 부분이 직선적이고 각이 진 모습이어서

전체적인 인상이 강인하며 경직된 느낌을 준다.

 

 

수평으로 길게 뜬 눈, 미소 없는 작은 입, 군살 붙은 턱 등의 세부표현은

고려 시대 불상으로 옮겨가는 과도기적인 작품임을 알려준다.

목에는 3줄의 삼도(三道)가 있고 양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신체에 밀착하여 얇게 표현되었다.

오른손은 무릎에 대고 있으며 왼손에는 약함을 들고 있어

약사여래불을 형상화한 것이 분명하다.

 

용화사의 이 석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 중기의

풍만하고 균형 있는 표현양식을 계승하면서도

그것이 형식화되고 경직화되어가는 특색을 잘 보여주는

통일신라 후기 작품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불상의 높이는 1.68m이다.

 

불상의 재질은 운모가 많이 섞인 화강석으로

전면적으로 마모가 심하여 풍부한 인상을 느낄 수 없다.

상호는 원만하고 양쪽 어깨가 당당하여

통일신라의 작품으로 추측되며 양쪽 손과 발의 조각이 둔중하고

의문이 선명하지 못한 점으로 보아

신라 하대인 9세기경의 작품으로 추측할 수 있다.

 

 상주증촌리석조여래입상(보물 제118호/1963.01.21 지정)

보물 제118호로 지정된 이 불상은

광배와 불상이 하나의 돌로 조각된 석불입상으로

보물 제120호인 석불좌상과 함께 안치되어 있다.

불상의 높이는 1.48m이며, 전체높이는 1.98m이다.

사진출처: 문화재청

화강암을 다듬어 부조한 불상으로 마멸이 심해서

세부 수법을 자세히 살펴볼 수는 없다.

불상의 머리는 확실히 구별할 수 없지만, 민머리처럼 보이며,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솟아 있다.

얼굴은 길고 풍만한 모습으로 이목구비가 뚜렷하지 않지만 단정한 인상이다.

 

체구는 단정하며, 양어깨에 걸쳐 있는 가슴의 법의는

U자형으로 간결하게 표현되고, 허리 부위에는 3단의 옷 주름이 있으며,

무릎 아래로 흘러내는 법의는 간결하게 물결 모양을 형상하고 있다.

왼손은 가슴에 부착하고 오른손은 복부 아래로 향하고 있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 역시 많이 마모되어

가장자리에 새겨진 불꽃무늬만 희미하게 확인할 수 있다.

 

증촌리석불입상은 불상의 신체 굴곡도 약하지만

처진 어깨나 딱딱한 양손에서 정지된 위축감이 있다.

체구는 단정하면서 다소 경직되었고

현실적인 면이 강해진 사실 양식을 나타낸다.

얼굴과 신체가 아담하고 풍만감이 적어지는 경향을 보여

통일신라 말기에 조성된 석불입상으로 추정된다.

 

용화사의 경내에는 석탑과 석탑재, 광배편, 장대석 등

많은 석조의 부재가 동리 인근에 산재하고 있었던 것을 절 안에 모아두고 있다.

 

삼층석탑

이 석탑은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무너지고 흩어져

탑재 일부가 이완 결실되어 마당 한구석에 쌓여 있었던 것을

통도사 성보박물관 학예연구실팀에 의한 조사결과로 복원된 것이다.

석탑의 복구는 2000년 12월에 착수하여 2001년 4월 9일에 완공하였다.

 

하층기단면석과 지대석은 모두 결실되어 새로운 부재로 추가된 것이며,

상층기단 면석은 신장 입상이 새겨진 면석 2개와

결실된 나머지 6매를 별조하여 조합시킨 것이다.

복원 당시 상층기단 면석의 부조상은 1상이 불자를 들고 있고,

다른 1상은 합장을 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 합장한 1상은 대충 윤곽이 드러나 있지만,

불자를 든 1상은 마모가 심하고 이끼가 서려 판독하기 어려웠다.

 

초층탑신은 완전히 결실되어 복원한 것이고,

옥개석은 1층과 2층만 원래 것이고 3층은 결실되어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상륜부는 완전히 결실되어 새로 복원한 것이다.

석탑 앞에는 여래상이 부조된 탑신(몸돌) 1매와 옥개석 1매가 놓여있다.

이로 보아 옛적 이곳에는 다른 석탑이 1기가 더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요사채

상주 용화사

텃밭 골 절집이라 인적은 끊어지고

돌부처 두 분이 빈 법당을 지키고 있다.

 

돌탑 위에 날개를 접는

어디선가 날아든 참새 한 마리

 

무심한 세월 온 것은 가고

지어진 것은 무너지는 것이라고

 

푸른 하늘에 흰 구름 흘러가듯

무정설법이라도 하려는가.

 

갈길 바쁜 나그네

발목을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