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보현암 석조아미타불좌상과 석조관음보살의좌상

2020. 7. 20. 20:17문화재

우리나라 문화재로 지정된 석불은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 선정인을 한 석불은 손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검색하다 우연히 음성 보현암의 아미타여래좌상이

선정인을 하고 있어 찾아가 보았다.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사찰이나

특히 그것도 민가나 텃밭 가운데에 놓인 석불이나 석탑은

찾아 가기가 쉽지 않다.

네비에만 의존하다 보면 주변에서 겉돌기가 일쑤다.

이번 음성 보현암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다행히 그렇게 힘들이지 않고 찾을 수 있었다.

음성 보현암은 사력이 일천하고 또 사세가 빈약한지

전각이라 부르기도 힘든 지장보전과

전각 명이 없는 전각과 요사채가 전부였다.

석조아미타여래좌상과 관음보살의 좌상은

그 이름 없는 전각 안에 봉안되어 있었다.

음성 보현암 석조아미타여래좌상(陰城普賢庵石造阿彌陀如來坐像)

문화재 지정: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84호

제작 시기: 고려 말~조선 전기

전체 높이: 1.13m 불상 높이: 0.79m

소재지: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 578-4, 보현암

 

사진출처: 문화재청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84호. 전체 높이 높이 113㎝.

불상 높이는 79cm인 이 불상은 원래 보현암에서 출토된 상은 아니고,

1970년경 금왕읍 오선리 오선초등학교 교정에서 출토되어

보현암으로 이관된 상이다. 현재의 보현암은

일명 탑골사지로 불리던 옛터에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조아미타여래좌상은 석조관음보살의 좌상과 함께

보현암 지장보살 뒤편 전각에 봉안되어 있다.

화강암의 앞면만을 다듬어 가운데가 잘록한

거신광(擧身光)을 조성하고 그 안에

원형의 두광과 신광을 갖추고 있는

독존의 여래좌상을 높은 부조로 새겼다.

 

 불상의 머리에는 육계의 형태가 낮게 남아 있고

보발은 양옆으로 땋아 귀 뒤로 돌려졌으며

오른쪽은 귀밑까지 내려 어깨에 닿았다.

머리는 소발로 보이고 육계는 낮다. 귀가 길게 늘어지고

얼굴은 광대뼈가 두드러지는 등 윤곽선이 뚜렷하며

입가에는 인자한 미소가 보인다. 눈은 반개한 듯하나 마멸되어 있다.

이마에 백호공이 크게 뚫려 있다. 목에는 삼도가 없는 대신에

1조의 태선으로 표현된 영락이 장식되어 있다.

 

대의는 오른쪽 어깨만을 살짝 덮은 편단우견으로

가슴에 내의가 보이며 왼쪽 어깨 쪽 대의는

마치 묶은 것처럼 매듭이 굵게 표현되어 있다

결가부좌한 다리 폭은 넓으나 옷 주름은 표현되어 있지 않다.

 

주형거신광으로 두광과 신광은 굵은 띠 형태로

낮게 부조되어 있고 마모되었지만 화염문의 형태가 남아 있다.

 

수인은 두 손을 배 앞에 모아 선정인(禪定印)을 취하고 있다.

선정인은 부처가 선정에 든 것을 상징하는 수인(手印)으로

삼마지인(三摩地印) 또는 삼매인(三昧印)이라고도 한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아미타정인으로 설하고 있는데

아미타정인은 선정인에서 약간 변형된 것으로

소백산 비로사의 아미타불좌상에서 보듯이

선정인과 같은 자세를 취하지만 검지를 구부려

엄지와 맞닿은 형세를 취하고 있는 점에서

아미타정인이 아니라 선정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사료된다.

 

석불의 규모가 크거나 조각 양식이 정교한 상은 아니나,

얼굴의 표정이 잘 표현되어 있고 웅크린 자세와 반 단의 대의 등이

고려 말이나 조선 전기의 라마 계통 불상의 특징을 따르고 있는 상이므로

조성 시기도 그와 같을 것으로 추정된다.

 

음성 보현암 석조관음보살의좌상(陰城普賢庵石造觀音菩薩椅坐像)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85호

불상 전체 높이: 1.10m, 불상 높이 0.96m

조성 시기: 고려 후기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85호. 불상 높이 103㎝.

근래에 세워진 절인 보현암은 원래 탑골사지라 불리던 절터로서,

 관음보살의좌상은 이곳에 전해져 온 상이다.

현재도 절의 마당에 인근에서 수습된 규모가 큰 석탑의 부재와

연판이 새겨진 기단석들이 다수 전한다.

관음보살의좌상은 현재 지장보전 뒤편 전각 명이 없는 전각에

석조여래좌상과 함께 봉안되어 있다.

 

사진출처: 문화재청

보현암 석조관음보살의상은 l 매의 화강석을 다듬어

주형 형태로 만들고 불상과 광배를 정교하게 조각된 불상으로,

불상의 조성 시기는 대략 고려말에서 조선 초기로 추정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조각이 명료하지 않고 마모도 심하여서

불상의 세부가 분명하지 않다.

의자에 반가좌의 형태로 앉은 보살상으로,

왼손은 배에 대고 오른손은 들어서 연꽃 가지를 든 것으로 추정된다.

국보 83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을 보면 머리에 낮은 관을 쓰고 있는데,

이는 삼산관(三山冠) 또는 연화관(蓮花冠)이라고 한다.

보현의 석조관음보살도 머리에 비슷한 삼면보관 형태의 관을 쓰고 있다.

보관 밑으로 소발의 형태인 머리가 나와 있다.

눈은 음각선으로 표현하여 감은 듯하다.

목에는 삼도의 흔적이 있고 법의는 우견편단이며

옷 주름을 5겹의 양각 선으로 나타내고 있다.

수인은 오른손은 복부 위로 들고 손바닥은 밖으로 향하고 있다.

왼손은 복부에 대고 있는 윤곽만 알 수 있고,

약함을 들고 있다고 백과사전은 설명하고 있지만,

지물(持物)의 유무는 마모가 심해 알 수 없다.

광배는 두광과 신광으로 5㎝ 두께의 양각 선대로 돌렸다.

얼굴은 뺨의 윤곽은 있으나 상호는 마모되어 보이지 않는다.

왼쪽 다리는 결가부좌하고 오른쪽 다리는 내려서

발끝으로 땅을 딛고 있는데 다리 부분에만

굵은 옷 주름선이 다소 투박하게 표현되어 있다.

추측건대 오른쪽 다리의 형상을 보아 결가부좌가 아닌

왼쪽 다리가 오른쪽 다리 위에 올려놓은 항마좌(降魔座)를 한

반가상(半跏像)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료된다.

문화재청의 설명으로 부연하면

「이 불상은 1매의 화강석으로 불상과 광배를 양각으로 조각하였으며

의자에 앉은 듯한 모습이며,

불상의 특이한 양식의 보이고 있다.」라고 했다.

 

현재 보현암의 터에서 전하는 다른 석조물들은 규모가 크고

조각 수법도 고려 시대로 올라가는 뛰어난 유물들이어서

이곳에 고려 시대에 비교적 규모가 큰 사찰이

조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석조 보살상은 세부 표현이 불분명하고

조각 수법도 투박하므로 이러한 유물들과 같은 시기의 상으로 볼 수 없고,

조성 시기가 조선 시대로 내려가는 지방 양식의 상으로 추정된다.

특히 불상과 광배가 1매로 조성된 관음보살상으로서

머리에 삼산형의 관모를 쓰고 있는 특이한 양식은

불상 및 불교조각사 연구에 소중한 불교 문화유산으로 여기고 있다

<현지안내문>

보현암 석조관음보살의좌상은 1매의 화강석을 다듬어

주형(舟形) 형태로 만들고 불상과 광배를 도드라지게 새긴 석불 상이다.

이 불상의 규모가 크거나 조각 양식이 정교한 것은 아니지만

광배에서 새겨진 불신은 비교적 상태가 잘 보존되어 있다.

불상에 비해 광배가 작은 편이며, 머리에 삼산형(三山形)의 관모를 쓰고,

귀는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게 표현하였으며,

목에는 삼도의 흔적이 보인다. 수인은 오른손을 가슴에 들어

외장(外掌)하였으며, 왼손은 무릎 위에서

복부에 얹어 놓은 모습을 하고 있어서 특이한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불상은 전체 높이 110cm, 불상 높이는 96cm이며

조성 시기는 도식화된 조각 수법으로 보아 대략 고려 후기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