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용화사 석조여래입상(天安 龍華寺 石造如來立像)
2020. 7. 4. 21:42ㆍ문화재
천안 용화사 석조여래입상(天安 龍華寺 石造如來立像)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동리 운봉산(雲峰山) 기슭에 있는 용화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사찰의 창건 내력은 알 수 없지만 발굴된 유물로 보아
신라 말 또는 고려 초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용화사가 있는 마을은 본래 목천군 읍내면 지역으로
목천 읍내의 동쪽이 되므로 동리라 했다.
현 목천초등학교 자리가 옛 목천현 객사가 있던 곳으로
객사의 동쪽에는 삼청전(三淸亭)이라 불렸던 목천현 동헌 터였다고 한다.
천안 용화사는 일주문이 없고 입구에 용화사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이 표지석을 지나 비탈진 언덕을 잠시 오르면 경내에 진입하게 되고,
입구에는 최근에 조성한 된 것으로 보이는 연지(蓮池)가 있고,
연지에는 약사불을 모셨다.
당우로는 대웅전과 극락전 그리고 요사채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8호인 석조여래입상 1기와
천안시 향토유적 문화재 1호인 석불 1기가 있다.
극락전 앞에 삼층석탑이 있다. 이 삼층 석탑은 비지정 문화재이다.
@천안 용화사 석조여래입상
시대: 고려 전기
문화재 지정: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8호
크기: 높이 385.4㎝, 어깨 폭 106.5㎝
제작 시기: 고려 전기
소장/전승: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동리 178-2번지, 용화사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8호. 높이 385.4㎝, 어깨 폭 106.5㎝.
원통형의 돌을 다듬어 만든 4m 가까이 되는 거대한 불상이다.
타원형의 얼굴형에 온화함이 느껴지는 얼굴 표현,
길쭉한 신체에 양감이 없는 평면적인 신체 등에서
고려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눈의 표현에서 수리한 흔적이 보이지만
보존 상태가 좋고 충청도 지역에서 많이 조성된
거불의 전통이 반영된 불상이다.
타원형의 갸름한 얼굴에 둥근 어깨,
긴 신체 비례를 보이는 불상으로
전체적으로 우수한 작품이다.
둥근 육계에 소발의 머리, 크고 긴 귀가 특징이며
타원형의 양감 있는 얼굴에 눈은 지나치게 크고
선명하여 보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날렵한 코에 비교해 입은 작은 편으로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불신은 어깨는 좁고 둥글며 두껍게 표현된 대의는 전신을 덮은 통견이다.
가슴은 U자형으로 드러냈으며
대의는 왼쪽 어깨에 걸치면서 옷자락을 반전시킨 표현이 독특하다.
가슴에서부터 배 밑으로 흘러내린 대의는
크기를 달리한 U자형의 아육왕식(또는 아소카식) 옷 주름으로
무릎 정도까지 부드러운 포물선을 그으며 이어져 있다.
발은 따로 제작하여 놓은 상태이다.
두 손은 작고 어색하게 처리되었는데, 오른손은 시무외인,
왼손은 여원인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얼굴에는 양감이 잘 표현됐지만,
굴곡이 없는 평면적인 신체에,
어색한 수인 등의 특징은 통일신라 말기부터
고려 전기까지 계승되는 특징이다.
# 불상 주변에 원형 주좌(柱座)가 새겨진
사각형의 주춧돌이 7점이나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불상을 모신 건물이 있던 자리로 추정된다.
용화사 석조여래입상은 통일신라 시대의 불상 특징을 계승한
고려 전기의 불상이다. 약간의 보수는 이루어졌지만
부드러운 조형성과 고려 전기의 특징이 잘 반영된 여래상으로
고려 전기 석조불상 연구에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현지 안내문
『통일신라 말기나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여래입상이다.
여래상이란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께서 깨달아 부처가 된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불상의 조각이 매우 유려하고, 크기가 4m에 이르는 대형이다.
머리는 소발이며 정수리는 둥글고 높다.
양쪽 귀가 크며 코도 오뚝하고 눈은 가늘게 표현하였던 것을
후대에 다시 손질한 것 같다.
입은 다물고 작은 편이나 웃음을 머금고 있다.
법의는 양쪽 어깨에서 가슴을 드러내면서
무릎 아래까지 U자형으로 늘어져 있다.
불상의 주위에는 옛날에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주춧돌이 여러 개 있다. 이로 미루어 예전에 보호각이나
전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천안시 향토유적 문화재 제1호 전법륜인을 한 석조여래입상
석조여래입상에 우측에 있는 이 석조여래입상은
절 뒤편 고갯마루 언덕에 와불(臥佛) 상태로 누워있던 것을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여 세웠으며,
불두(佛頭)는 용화사 앞의 산방천(山方川)에서
수습하여 합체하였다고 한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이 석조여래상을 나한 입상으로 명명하였지만,
이는 나한상이 아니고 불두와 불신이 다른 여래상의
합체(合體)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그 이유는 불두(佛頭)와 불신(佛身)의 비례가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조 기술 면에서도 다르기 때문이다.
또 불두(佛頭)만 보면 나발(螺髮)과 육계(肉髻)가 있고,
이마에는 백호(白毫)가 있으며, 목에는 삼도가 있다.
이러한 불두상은 나한상에서는 볼 수 없다.
또 불신(佛身)을 보면 법의(法衣)와 군의(裙衣) 양태가
좌측의 석조여래입상과도 다르고,
무엇보다도 그 수인(手印)이 나한상에서는 볼 수 없는
여래만이 취하는 전법륜인(轉法輪印)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법륜인(轉法輪印)은 부처님이 성도 후
다섯 비구에게 첫 설법을 하며 취한 수인으로,
시대에 따라 약간씩 다른데 우리나라에는 그 예가 많지 않다.
설법인(說法印)이라고도 한다.
대표적인 전법륜인상을 한 불상은
불국사 대웅전(보물제1475호) 의 석가모니불,
속리산 법주사 추래암의 마애불(보물 제216호)과
경주 안압지 출토 금동여래불(보물 제1475호) 등에서 볼 수 있다.
천안 용화사의 이 불상은 불두(佛頭)와 연화대좌 등이 온전치 못하지만
불신(佛身)의 전법륜인 하나만으로 그 희귀성 때문에
석조 여래입상으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석조여래입상은 비지정문화재로 있다가
다행히 1995년 5월 10일 천안시의 향토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석조여래입상은 법의는 통견이며, 가슴 부위가 두툼하고,
상의(裳衣)의 주름에 두 줄의 띠 매듭이 수직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크기는 3m 80cm로 약간 작으며, 연화대좌 위에 있다.
중대석과 하대석은 원래 대좌가 아니라 최근에 보완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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