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 용화사 박가범전과 석불입상( (鎭川龍華寺石佛立像)

2020. 6. 30. 20:17문화재

진천 용화사 박가범전과 석불입상( (鎭川龍華寺石佛立像)

용화사(龍華寺)라는 사명(寺名)은 가진 사찰은 전국에 무수히 많다.

용화(龍華)는 미륵보살을 의미하며, 이는 석가모니불로부터 수기(受記) 받아,

도솔천에서 4,000세(인간세상에서는 56억 7,000만 년)의 수명이 다한 후에

인간세상에 내려와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하여,

3번에 걸친 설법으로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미래의 부처이다.

용화사의 용화(龍華)도 이 용화수(龍華樹)에서 비롯된 것이다.

진천 용화사 석조여래입상(鎭川 龍華寺 石造如來立像)은

충청북도 진천군 용화사에 있는, 화강암으로 조성된

고려 시대 조성된 석불 입상으로

석불의 높이는 7.5m, 아랫부분의 폭이 1.7m가 된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38로 지정되어 있다.

 

진천 용화사가 언제 창건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순조 25년(1825년)에 만들어진

『상산지(常山誌) 고적조(古蹟條)』에 의하면

「진천읍 맞은 편 걸미산에 미륵석불이 있다

(彌勒古佛邑之對案 榤尾山外有彌勒)」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여기에 언급된 불상이 있는 사찰은

신라 성덕왕 19년(702)에 창건되었고, 고려 말에 폐사되었다.

상산(常山)은 옛 진천의 지명이다.

지금의 용화사는 석불만 남아 있던 폐사지에

1946년 한자심(韓慈心) 비구니가

법당과 요사채를 건립함으로써 시작된 것이다.

진천의 거대한 이 석불에 대한 다른 미륵불상과 달리

특별한 점이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진천읍의 수호신으로 불리는데

상산지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불상 맞은편인 삼덕리에 진용을 갖추고

진천읍으로 침입하다가 키가 10여 척이나 되는 대장이 우뚝 서 있어,

그 위풍에 놀라 싸울 뜻을 잃고 물러나 진천읍은 그 화를 면했다고 한다.

둘은 진천의 수호신으로,

 삼국통일의 명장 김유신장군을 숭모(崇慕)하는 불상으로 여기고 있다.

진천은 김유신장군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며,

김유신장군의 태실이 있는 곳으로

김유신 장군의 호가 용화(龍華)라는 의미도 이에 가세한다.

진천의 용화사는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 소속으로 되어있다.

@진천용화사석불입상( (鎭川龍華寺石佛立像)

시대: 고려

문화재 지정: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38호

크기 : 높이 7.5m 하반신의 폭: 1.7m

재질: 화강암

진천 용화사 석조여래입상(鎭川 龍華寺 石造如來立像)은

충청북도 진천군 용화사에 있는, 화강암으로 된 불상 입상이다.

고려 시대에 만들어졌으며, 높이 7.5m, 아랫부분의 폭이 1.7m가 된다.

바로 옆에는 동일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석조 보살입상과 함께 세워져 있다.

이 불상은 진천의 호족세력이었던

진천 임 씨의 후원으로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1980년 용화사 앞 개울에서 불상이 발견되었다.

용화사 석불 입상은 근래에 올린 팔각 보개를 머리 위에 착용하고 있는데,

원래는 평면 방형에 가까운 이맛돌이 있었으며

그 위에 원정모 형태의 보개(寶蓋)가 있었다.

본래부터 있었던 보개를 새로운 형태의 팔각 보개로 바꾼 이유는

불상이 착용했던 원정모 형태의 보개가 6·25전쟁 중

파손된 머리 부분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올린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는 빈약하다.

문화재청에 남아 있는 일제 강점기에 촬영된 용화사 석불 입상의 사진을 보면

석불의 머리에는 최근에 바뀐 보개와 다른

원정모 형태의 보개를 쓰고 있다.

이 석불의 옆에 이를 모방한 같은 형태의 원정모가 놓여 있다.

문화재청 사진

@원정모(圓頂帽)는 챙이 두꺼운 모자 모양으로

원형 보개는 원정모(圓頂帽)라 일컬어지기도 하는데

대체로 여말 선초, 특히 조선 전기에 경기 일대에서 유행한 양식이다.

원정모(圓頂帽)는 원나라 황제나 귀족이 쓰던 모자를 말하며.

원의 지배를 받았던 잔재가 남아 고려 후기 귀족이나 승려들이 착용하였고,

고려말 조선 초기까지 유행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불상으로는 파주 (용암사) 마애이불입상(보물 제93호)이 있다.

진천 용화사 석불 입상의 머리는 발제선 위에 머리 부분을 일부만 표현하고

전체적으로 편평하게 만들었다.

불상을 만들 당시부터 보개를 올리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남아 있는 부분을 통해 보면 불상의 머리는

머리카락이 표현되지 않은 소발 형태이다.

머리카락이 자라는 이마 위의 발제선 바로 위에는

수평의 테두리가 머리를 두르고 있다.

살이 오른 형태의 상호는 단정하며 옅은 미소를 띠고 있다.

목에는 선명한 삼도가 있고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다.

목걸이는 세 개의 줄이 세 개의 장신구와 서로 연결된 형태이다.

이런 형상은 고려불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상이다.

 

진천 용화사 석불 입상은 양어깨를 덮는 통견 형태의 천의를 입고 있고,

대의는 양어깨 사이가 넓으며 대의 안에는 군의를 입고 있다.

옷 주름은 가슴 아래부터 ‘U’자 형태로 흘러내려 양 다리를 덮고 있다.

아랫부위의 옷주름은 일자형이다.

불상의 손은 다소 작은 편이다.

양손은 연꽃 가지를 살며시 잡고 있는데

오른쪽 어깨 위에도 연꽃 봉오리가 얕은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이 석불은 증평 미암리석조관음보살입상(충북유형문화재198호)을

많이 닮았다. 이러한 형태는

고려 시대 불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고려 전기에는 여래형 대의를 착용한 대형의 보살입상이 조성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안성 대덕면 매산리 석조 보살입상과 기솔리 석불 입상,

이천 어석리 석불 입상, 증평 남하리석조미륵보살입상,

논산 관촉사 석조 보살입상, 부여 대조사 석조 보살입상,

당진 안국사지 석조삼존불 입상 등이다.

특히 안성, 이천 일대는 이러한 대형 석불이 많이 발견되어 있다.

이러한 대형 불상들은 고려 시대에 등장하는

새로운 양식의 불상으로 분류된다.

이에 반해 진천 용화사 석불 입상은 고려 시대에 조성된

거대 석불의 한 형태이지만 통일신라 이래 계승되어온

전통적인 불상 양식의 계보를 잇는 불상으로 분류할 수 있다.

@작은 보살입상

석불 입상 옆에 있는 작은 보살상에 대한

일체 기록이나 안내가 없어 세워진 내력을 알 수 없다.

또 얼굴이 심하게 마모되어 있어 그 형태를 가늠하기 어렵다.

머리에는 높은 보관을 쓰고 있고, 이목구비(耳目口鼻)는 심한 마모로 인하여

판별하기 어렵지만, 목에는 삼도가 보인다.

이 불상은 머리에 높은 보관을 쓰고 수인의 형태는 분명하지 않지만,

오른손이 왼손 위에 올려놓은 형태이며,

얼굴에 비해 높은 보관을 쓰고 있으며,

상체는 둥근 어깨에 몸의 양감은 두툼하며,

하체는 안정된 감을 보인다. 마모가 심하여

얼굴의 표정을 분별 되지 않으나 대체로 둥글고

근엄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입고 있는 옷은

가슴 부분이 넓게 벌어지게 표현되었고 양어깨로 가사가 흘러내리고,

아랫부분에서는 두 다리가 궁형 모양의

둥근 옷 주름이 늘어져 감싸고 있다.

한 돌로 조성된 이 보살입상 조성 시기 또한 고려 시대로 추정된다.

@박가범전

진천 용화사의 대웅전은 박가범전이란 사명을 사용하고 있다.

박가범은 범어 바가바(Bhagavat)의 음역한 것이다.

제불(諸佛) 통호(通號)의 하나로,

박가범(薄伽梵), 세존(世尊), 중우(衆祐), 파정지(破淨地)라 번역되는 말이다.

<대지도론권2>에 따르면 바가바의 의미를 4가지 뜻으로 설명하고 있다.

『바가바(婆伽婆)의 바가(婆伽)는 분별((德: 分別)을,

바(婆)는 교묘함(巧)을 의미한다.

모든 법의 전체적인 모습과 부분적인 모습을

교묘하게 잘 분별하기 때문에 바가바라고 한다.

또 바가는 명성(名聲)이요,

바는 있음(有)이니 명성이 있는 분이라는 뜻이다.

아무도 부처님과 같이 명성을 얻은 이가 없기 때문이다.

또 바가는 깨트린다(破)는 뜻이요,

바는 능(能)하다는 뜻이니 이분은

음욕, 성냄, 어리석음을 능히 깨트리기 때문에 바가바라고 한다.』

「불지론(佛智論)第一卷」에는

바가바의 6가지 의미(六義)를 말하고 있는데

자재(自在) .치성(熾盛). 단엄(端嚴), 명칭(名稱) 길상(吉祥),

존귀(尊貴)가 그것이다.

또 일설에는 아미타불의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기도 한다.

@ 『현응음의』 제3권에 박가를 덕(德)이라 번역하고,

범은 성취의 뜻이라 하여 온갖 덕을 성취하였다는 뜻으로

박가범이라 한다고 하였다

바가범 곧 박가범은 석가모니불의 10호와 같이

석가모니불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진천 용화사의 <박가범전>은 대웅전이란 말과 같다.

지금의 박가범전 자리는 옛 대웅전의 자리로 보인다.

@법당 안에는 본존 석가모니불 협시로

사자상 앞에 문수보살을, 코끼리상 옆에 보현보살상을

조성해 놓고 좌우에 오백나한상을 봉안해 놓았다.

삼성각

향적당
지장전 가는 길
지장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