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 물걸리사지 석조여래좌상과 광배 및 대좌
2020. 6. 26. 20:22ㆍ문화재
1)보물 제543호 홍천 물걸리 석조대좌 (洪川 物傑里 石造臺座)
시대:고대/남북국/통일신라
문화재 지정: 보물 제543호
건립 시기: 9세기경
홍천 물걸리 석조비로자나불이 있는 보호각 안에 있는 이 불대좌(佛臺座)는
불상은 없어지고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만이 남아 있는 것으로,
대좌는 거의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근래에 지은 전각 안에 석조대좌와 함께
홍천 물걸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541호),
홍천 물걸리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542호),
홍천 물걸리 석조대좌 및 광배(보물 제544호) 등이 안치되어 있다.
대좌는 상대, 중대, 하대의 3단으로 구성된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팔각연화대좌 형식이다.
하대는 안상(眼象)이 새겨진 팔각의 받침대 위에
복련석(覆蓮石)이 놓여 있다.
안상 안에는 향로 1개와 가릉빈가(迦陵頻伽) 7구가 조각되어 있다.
받침대 위에는 복판중엽(複瓣重葉)의 복련을 8엽으로 돌렸으며
연판의 끝부분만 살짝 외반되어 있다.
그 위로 2단의 굄이 중대석을 받치고 있다.
중대 역시 8각으로 각 면에 우주(隅柱) 2개를 새기고
그 안에 뚜렷하지는 않지만, 원형의 광배를 갖추고 있는
8구의 신장상(神將像)을 각각 조각하였다.
상대는 반구형의 단판앙련(單瓣仰蓮)을 3단으로 돌렸으며
각 연판 안에는 꽃무늬를 새겨넣어 화려하고 장식적인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대좌 형식은 9세기의 통일신라 후기에 크게 유행하였던 것으로
예천 청룡사 석불좌상이나 선산 해평동 석불좌상,
경북대학교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등에서 볼 수 있다.
다만, 하대석의 안상 안에 새겨진 문양이나
중대석 각 면에 조각된 상 등이 약간 다를 뿐,
거의 공통된 특징을 보여준다.
광배는 현재 남아 있는 형태에서 볼 때
배 모양의 주형광배(舟形光背)로 보이며
2줄의 선으로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구분하고
내외에는 보상당초문과 불꽃무늬 등으로 장식하였다.
두광 안쪽으로는 연화문과 보상당초문이 일부 남아 있으나,
신광에는 아무런 문양도 장식되어 있지 않다.
홍천 물걸리 석조대좌는 함께 안치된 석조불상 2구와
석조대좌 및 광배 등의 대좌 형식과 세부표현에서 약간 차이가 있으나,
거의 유사한 특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9세기경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홍천물걸리석조광배편(洪川 物傑里石造光背片)
홍천물걸리석조대좌(보물 제543호)의 광배 상부편(上部片)이다.
2)보물 제541호 홍천 물걸리석조여래좌상
시대: 고대/남북국/통일신라
문화재 지정: 보물 제541호
건립 시기: 9세기 중엽
불상 높이 :111cm
위치: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588-1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소재의 보호각 안에 있는
4기의 보물 중 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542호)과 나란히 있는
석조여래좌상은 현재 광배는 없어진 상태이며
전체적으로 마멸이 심하고, 떨어져 나가
불두(佛頭)의 파손은 더욱 심하다.
팔각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현저하게 낮아진 육계(肉髻)와 불안정한 자세,
직선으로 간략하게 처리된 법의 표현에서
나말여초의 불안한 사회상을 짐작할 수 있다.
#마멸된 상호의 윤곽은 분명하지 않아서 제대로 알아볼 수 없지만,
나발(螺髮)과 백호(白豪)의 흔적이 있다.
정수리 부분에 있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는 표현이 분명하지 않다.
얼굴은 통통한 편이지만, 눈과 코는 작아지고 입은 더 두툼해졌다.
어깨는 넓지만, 무릎의 폭이 좁아서 상대적으로 위축된 모습이며,
불신의 각 부분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못해 부자연스럽다.
오른손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왼손은 그대로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통견의 법의는 간략하게 처리되었으며
가슴 부분에는 내의의 띠 매듭이 가로질러 있다.
규칙적으로 평행을 이루며 흘러내린 옷 주름은
거의 선각으로 한층 도식화가 진전되어 둔중해 보인다.
어깨는 둥글지만 두껍고 투박하게 보인다.
상체는 8세기 불상보다 평판적이고 왜소한 편이어서
당당한 양감이 사라져버린 모습이다.
손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아래를 향하고
왼손은 배 부분에 놓고 있는 모습이다.
대좌는 상대, 중대, 하대의 3단으로 구성된 팔각의 연화대좌이다.
지대석 각 면에는 안상(眼象)이 음각되어 있고
그 안에는 향로와 가릉빈가가 교대로 조각되어 있다.
하대석은 모서리에 귀꽃이 있는 팔각의 받침대와
8엽의 복련석(覆蓮石)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받침대에는 각 면에 향로와 가릉빈가(迦陵頻伽)가
새겨진 안상(眼象)이 조각되었다.
2단의 굄 위에 놓여 있는 중대석은 8각의 면마다 모서리에
우주(隅柱)를 새기고 그사이에는 8구의 신장상(神將像)을 양각하였다.
신장상은 원형의 광배를 갖추고 있지만,
마멸이 심하여 형태가 뚜렷하지 않아 그 존명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상대석은 신라 하대의 다른 석불 대좌에 보이는 것처럼
연판 안에 꽃무늬를 새긴 단판앙련(單瓣仰蓮)을 3중으로 돌렸다.
불안정한 자세와 균형을 잃은 신체 비례,
평면적이고 둔중한 옷 주름에서 나말여초의 특성이 드러나고 있다.
이처럼 장식성이 강조된 연화대좌는 9세기 중엽의
통일신라 후기 석불좌상 대좌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특징 중 하나이다.
3)보물 제544호 홍천 물걸리 석조대좌 및 광배
(洪川 物傑里 石造臺座 및 光背)
시대:고대/남북국/통일신라
문화재 지정: 보물 제544호
건립시기: 9세기경
완전한 배(舟) 모양의 광배는 가운데에
연꽃무늬와 덩굴무늬가 새겨지고
가장자리에는 불꽃 모양이 섬세하고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윗부분과 좌우 등 9곳에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는데
각기 손 모양을 달리하고 있는 특징이 있다.
광배를 받치고 있는 대좌(臺座)는 3단으로 구성된 8각 모양이다.
맨 아래에는 아래로 향한 연꽃무늬가 각 면에 새겨져 있고,
모서리에는 작은 귀꽃이 있다.
중간의 각 면에는 불상과 악귀를 쫓아준다는 신장상이 새겨져 있다.
대좌의 맨 윗부분은 연꽃이 활짝 핀 반원형 모양이고
연꽃 안에 작은 꽃무늬가 새겨져 있어 화려함을 더해준다.
광배와 대좌의 양식이 9세기 이후에 나타나는 것들과
유사한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보물 제544호. 팔각의 연화대좌 위에 배모양의
주형 광배(舟形光背)가 놓여 있는 것으로
비교적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나,
대좌 위에 안치되어 있었던 불상은 없어진 상태이다.
1967년 이 절터를 신축 공사할 때
금동불상 1점과 함께 발견된 것으로,
당시 절터 주변은 논과 밭으로 경작 중이었으며
주위에서 많은 와편들이 수습되었다.
현재는 1982년에 새로 지은 전각 안에
홍천 물걸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541호),
홍천 물걸리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542호),
홍천 물걸리 석조대좌 및 광배(보물 제543호) 등이 함께 모셔져 있다.
대좌는 통일신라 시대의 전형적인 팔각연화대좌로
상대, 중대, 하대의 3단으로 구성되었다.
하대는 팔각의 받침대와 복련석(覆蓮石)으로 이루어졌는데,
받침대에는 각 면에 아무런 문양이 장식되지 않은
안상(眼象)만 새겨져 있다. 복련은 복판중엽(複瓣重葉)으로
8엽을 돌렸으며 모서리마다 귀꽃이 입체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그 위에는 2단의 굄이 8각의 중대석을 받치고 있다.
중대 역시 각 면에 감(龕)을 얕게 파고
그 안에 8구의 신장상(神將像) 등을 조각하여 장엄화하였다.
상대는 단판앙련(單瓣仰蓮)을 2단으로 쌓아 올렸으며
각 연판 안에는 꽃무늬가 새겨져 있어
화려하고 장식적인 느낌을 준다.
이러한 대좌 형식은 9세기의 통일신라 후기에
크게 유행했던 것으로 영주 부석면 북지리 석조여래좌상과
봉화 축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등에서 볼 수 있다.
광배는 불상 전체를 감싸고 있는
주형의 거신광(擧身光) 형태로 되어 있는데 그
안쪽에 2줄의 선으로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다시 구획하였다.
두광은 중앙에 활짝 핀 연꽃과 같은 연화문으로 표현한 데에 반하여
신광에는 아무런 문양도 시문 하지 않았다.
두광과 신광 안쪽에는 보상당초문(寶相唐草文)으로 장식하고
바깥쪽에는 화염문(火焰文)을 화려하게 조각하였다.
광배 정상에는 화불(化佛) 1구가 조각되었고
그 아래로 좌우에 화불 8구가 서로 마주 보게끔 배치되어 있다.
9구의 화불은 원형의 신광과 두광을 갖추고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는 모습에서 거의 유사한 특징을 보여주지만,
손의 형태가 합장인(合掌印), 선정인(禪定印),
여원인(與願印) 등을 하고 있어 약간씩 차이가 있다.
이러한 광배 형식 역시
대구 동화사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을 비롯하여
영주 부석면 북지리 석조불좌상,
괴산 각연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등
9세기경 통일신라 후기 불상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홍천 물걸리 대좌와 광배는 양식적으로 볼 때
한 짝으로 조성되었으며 전각에 함께 안치된 석조비로자나불상과
석조여래좌상, 석조대좌와도 대좌 형식이나 특징이 거의 유사하여
같은 시기인 9세기경의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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