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지혜, 기로국(棄老國)의 인연

2020. 4. 30. 19:59경전속의 우화들

노인의 지혜, 기로국(棄老國)의 인연


역사를 돌이켜 보면 문명이 발달할수록,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나이 먹은 노인들은 언제나 뒷방 늙은이로 밀려 나갔다.

시대가 아무리 개화되고, 문명화되어도

옛날 심산유곡에 버려지는 고려장 형식이 조금 세련되어졌을 뿐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심신이 노쇠하여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를 따라가지도 못하고,

옛것에 매달려 고루(固陋)하게 보이지만, 노인이 존경받는 것이 하나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삶의 지혜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이 살아가는 근본 의미를 이해하고 삶의 가치를 되새겨 주는 것은

 노인의 지혜만큼 큰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경은 부처님 시대에도 그러한 풍습이 만연하여 이를 일깨워주기 위해 설해진 것이다.

이경은 <잡보장경(雜寶藏經)>에 나온 기로국(棄老國)의 인연으로 설해진 것으로 전문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기로국(棄老國)의 인연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계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노인을 공경하면 큰 이익이 있느니라. 일찍 듣지 못한 것을 알게 되고,

좋은 이름이 멀리 퍼지며, 지혜로운 사람의 공경을 받는다.”

비구들은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항상 부모와 어른과 노인을 공경하는 것을 찬탄하십니다.”

오늘만이 아니다. 나는 과거 한량없는 겁 동안 항상 부모와 어른과 노인을 공경하였다.”

과거에 공경한 그 일은 어떠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먼 옛날에 기로국(棄老國)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그 나라에서는 집에 노인이 있으면 멀리 쫓아 버리는 법이 있었다.

그때 어떤 대신이 있었는데 그 아버지가 늙었으므로 국법에 따라 멀리 쫓아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효도하는 마음으로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여,

땅을 깊이 파고 비밀스러운 방을 만들어 아버지를 그 안에 모시고 때를 따라 효도로 섬겼다.


그때 어떤 천신(天神)은 뱀 두 마리를 가지고 와서 왕의 궁전 위에 두고 이렇게 말하였다.

'만일 이들의 암·수를 분별하면 너의 나라가 편안하겠지만,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면 네 몸과 너의 나라는 이레 뒤에 모두 멸망할 것이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매우 걱정되어 여러 신하와 함께 이 일을 의논하였지만,

모두 '분별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곧 온 나라에

'만일 누구나 이것을 분별하면 벼슬과 상을 후하게 주리라'고 영을 내렸다.

대신이 집에 돌아가 그 아버지에게 물으니, 아버지가 대답하였다.

'그것은 분별하기 쉽다. 부드러운 물건 위에 그것들을 놓아두면,

거기서 부스대는 놈은 수컷이요, 꼼짝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것은 암컷이니라.'

그 말대로 하였더니, 과연 그 암·수를 알 수 있었다.

 

천신은 다시 물었다.

'자는 이 중에서 깬 이는 누구며, 깬 이 중에서 자는 이는 누구인가?'

왕은 또 신하들과 의논하였으나 분별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다시 온 나라에 두루 알렸으나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대신은 그 아버지에게 물었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아버지는 대답하였다.

'그것은 학인(學人)을 말한 것이다. 학인은 범부에 대해서는 깬 이요,

 저 아라한에 대해서는 잠자는 사람이니라.'

그는 곧 그 말대로 대답하였다.



천신은 다시 물었다.

'이 큰 코끼리는 몇 근이나 되는가?'

왕은 신하들과 의논하였으나 아는 이가 없었고, 또 온 나라에 두루 알렸으나 아무도 몰랐다.

대신은 그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말하였다.

'코끼리를 배에 싣고 큰 못에 띄워, 배가 물에 잠기는 쯤에 표시를 하고는,

 다시 그 배에 돌을 헤아려 싣고 물에 띄워,

물에 잠기는 것이 앞의 표시와 같을 때 그것이 코끼리의 무게니라.'

그는 그 지혜로서 대답하였다.



천신은 다시 물었다.

'한 움큼 물이 큰 바닷물보다 많은데, 누가 그것을 알겠는가?'

신하들은 의논하였으나 알 수 없었고,

또 두루 알리고 물었으나 아무도 몰랐다. 대신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아버지는 말하였다.

'그것은 알기 쉽다. 만일 어떤 사람이 청정한 신심으로

한 움큼의 물을 부처님이나 스님이나 부모나 고생하는 병자에게 보시하면,

그 공덕으로 말미암아 수천만 겁 동안 끝이 없는 복을 받을 것이니,

바닷물은 아무리 많아도 한 겁을 지나지 못한다.

이로 미루어 말하면 한 움큼의 물이 큰 바다보다 백천 곱이나 많을 것이다.'

 

그는 곧 그 말로 천신에게 대답하였다.

천신은 다시 굶주린 사람으로 변하여 해골만 이끌고 와서 물었다.

'세상에 과연 굶주리고 궁한 고통이 나보다 심한 이가 있는가?'

신하들은 생각하여 보았으나 대답할 수 없었다.

대신이 다시 아버지에게 가서 물으니, 아버지가 대답하였다.

'세상에 어떤 사람은 간탐하고 질투하여 삼보를 믿지 않고, 부모와 스승을 공양하지 않다가,

 장래 세상에는 아귀에 떨어져 백천만 년 동안 물이나 곡식은 이름도 듣지 못하며

몸은 태산과 같고 배는 큰 골짝 같지만, 목구멍은 가는 바늘 같으며

송곳이나 칼과 같은 털은 몸을 감아 다리에까지 이르고,

움직일 때는 사지와 뼈마디에 불이 붙는다.

그런 사람은 저 굶주리는 고통보다 백천만 갑절이나 심하니라.'

그는 곧 이 말로써 천신에게 가서 대답하였다.



천신은 다시 어떤 사람으로 변하여 손과 다리에는 쇠고랑을 차고

목에는 사슬을 걸고, 몸에서 불이 나와 온몸이 타면서 물었다.

'세상에는 나보다 심한 고통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신하들은 갑자기 답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대신이 다시 그 아버지에게 가서 물으니, 아버지가 대답하였다.

'세상의 어떤 사람은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고

사람을 해치며 남편을 배반하고 삼보를 비방하다가,

장래 세상에는 지옥에 떨어져 칼산·칼나무·불수레·화로숯·잿강·끓는 똥·칼길·불길 등의 고통을 받는다.

 이런 고통은 한량없고 끝없고 헤아릴 수 없다.

이것으로 비유하면 너의 고통보다 백천만 배나 심하니라.'

그는 곧 그 말대로 천신에게 대답하였다.



천신은 다시 한 여자로 화하여 세상 사람보다 뛰어난 단정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물었다.

'세상에 나처럼 단정한 사람이 있는가?'

왕과 신하들 모두 잠자코 답하는 이가 없었다.

대신이 다시 그 아버지에게 물으니, 아버지가 대답하였다.

'세상에 어떤 사람은 삼보를 믿고 공경하며, 부모에게 효순하고,

보시와 인욕과 정진을 좋아하며 계율을 가지다가 천상에 나게 되면,

단정하고 뛰어나기가 너보다 백천만 곱이나 더할 것이다.

거기에 비유하면 너는 눈먼 원숭이와 같으니라.'

그는 또 이 말로써 천신에게 대답하였다.



천신은 또 네모반듯한 진단목(眞檀木)을 가지고 물었다.

'어느 쪽이 머리인가?'

신하들의 지혜로는 아무도 답하는 이가 없었다.

대신은 또 아버지에게 가서 물었다. 아버지는 대답하였다.

'그것은 알기 쉽다. 물에 던져 보면 뿌리 쪽은 잠길 것이요, 머리 쪽은 뜰 것이다.'

그는 곧 그 말로 천신에게 대답하였다.

천신은 또 형색이 꼭 같은 두 마리 흰 초마()를 가지고 물었다.

'어느 것이 어미요, 어느 것이 새끼인가?'

왕과 신하로서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대신은 또 아버지에게 가서 물었다.

아버지는 대답하였다.

'풀을 주어 먹여 보아라. 만일 그것이 어미라면 반드시 풀을 밀어 새끼에게 줄 것이다.'

이처럼 묻는 것을 모두 다 대답하였다. 천신은 매우 기뻐하여

그 왕에게 진기한 재보들을 많이 주면서 왕에게 말하였다.

'나는 너의 나라를 옹호하여 외적이 침해하지 못하게 하리라.'

왕은 이 말을 듣고 못내 기뻐하면서 그 대신에게 물었다.

'그것을 그대 스스로 알았는가, 아니면 누가 가르쳐 주었는가?

그대의 지혜를 힘입어 우리나라가 편안하게 되었고 많은 보물을 얻었으며,

또 천신이 보호한다 하였다. 이것은 모두 그대 힘이다.'

대신은 대답하였다.

'()의 지혜가 아닙니다. 원컨대 두려움이 없게 하여 주시면 감히 그 내력을 아뢰겠습니다.'

왕은 말하였다.

'설령 지금 네게 만 번 죽을죄가 있다 해도 묻지 않겠거늘, 하물며 조그만 허물이겠는가.'

대신은 아뢰었다.

'나라에서 제정한 법률에는 노인을 모시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하온데 신에게는 늙은 아비가 있는데, 차마 버릴 수가 없어

왕법을 무릅쓰고 땅속에 은신해 두었던 것입니다.

신이 와서 대답한 것은 모두 아버지 지혜요, 신의 힘이 아닙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온 나라에 명령하여 노인을 버리지 말게 하옵소서.'



왕은 탄복하여 크게 칭찬하고 마음으로 기뻐하여,

그 대신의 아버지를 봉양하고 받들어 스승으로 삼았다.

'내 나라와 모든 백성을 구제하였지마는, 그런 이익은 내가 아는 바 아니다.'

하고, 곧 영을 내려 천하에 두루 알려,

노인 버리는 일을 허락하지 않을 뿐 아니라 부모를 우러러 효도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거나 스승에게 공경하지 않으면 큰 벌을 내리리라'고 하였다.

비구들이여, 그때의 그 아버지는 바로 이 나요,

그 대신은 저 사리불이며, 그 왕은 저 아사세왕(阿闍世王)이요,

그때의 천신은 바로 저 아남이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