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어상(神魚像)의 비밀

2020. 4. 19. 22:42삶 속의 이야기들

신어상(神魚像)의 비밀

물고기 형상은 그림이나 벽화나 조형물이나 장엄구 등에서 많이 볼 수 있지만,

그 역사를 보면 자연숭배의 토템신앙으로 신어(神魚)로 숭배되어 온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사찰에서도 물고기 형상을 여러 가지 형태로 조성되어 있는 데,

이는 수행에 결부시키거나, 법당의 화마(火魔)를 물리치기 위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구인사에 전시된 대형 목탁) 

불교에서는 사찰의 불전사물(佛殿四物)의 하나인 목어(木魚),

목탁(木鐸)도 물고기 형상을 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는 선어로 유명한

당나라 선승 백장회해(百丈懷海: 749~814)가 지었다는 백장청규(百丈淸規)에 따르면

물고기는 언제나 눈을 뜨고 깨어 있으므로 그 형체를 취하여

 나무에 조각하고 침으로써 수행자의 잠을 쫓고 혼미를 경책했다라는 것이라고 한다.

(도갑사의 목어) 

또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옛날 한 승려가 스승의 가르침을 어기고 옳지 못한 행동을 하다가 죽었다.

그 승려는 곧바로 물고기의 과보를 받았는데,

등에는 나무가 한 그루 나서 풍랑이 칠 때마다 나무가 흔들려 피를 흘리는 고통을 당하곤 하였다.

마침 그 스승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다가 물고기로 화현한 제자가 고통을 받는 모습을 보고

수륙재(水陸齋)를 베풀어 물고기를 해탈하게 하였다.

물고기는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며 등에 있는 나무를 고기 모양으로 만들어

 모든 사람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도록 했다고 한다.



 

또한 목탁(木鐸)의 형상을 보면 목탁의 손잡이는 물고기의 꼬리가 몸쪽으로 붙은 형태이고,

 목탁의 양옆에 뚫어져 있는 구멍은 물고기의 아가미를 뜻하며

앞부분에 길게 파여있는 부분이 입의 모습이다. 몸통은 비어 있는 데

이는 수행의 공심(空心)을 상징한 것이다.

목탁을 치는 것은 탐진치(貪瞋痴)의 삼독을 비우라는 경책(警策)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특히 사찰에서의 목탁은 염불하거나 대중이 모여 경전을 외울 때

운율과 박자를 맞추기도 하지만, 수행 중인 수도승의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자

 번뇌와 잡념을 깨트리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

(정암사에서) 

그 외에 사찰의 풍경(風磬) 아래에 물고기를 달거나 전각의 천장이나

기둥에 조성한 물고기 형상은 벽사(闢邪)

화마(火魔)를 물리치기 위한 상징물로 조성된 것이라고 한다.

불교에서 물고기 형상을 조성한 것은 이처럼 종교적인 수행을 위한 경책(警責)이나

 벽사(闢邪), 화마(火魔)를 물리치기 위한 것이지만,

그 외에도 물고기를 숭배하는 신화나 전설이 많은 나라에 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보면 1792년 처음 세워진 가야국의 수로왕릉의 정문에

 물고기 두 마리가 마주 보는 형상이 그려져 있다.

 이 물고기는 신어(神魚)로 숭배되어 신어상(神魚像)이라 불리는 데,

이 물고기 비밀은 수로왕의 황후인 허황후의 출생지와 연관된 것으로 역사가들은 보고 있다.

그 근거로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보면

그녀는 48년 가야국 김수로왕(伽倻國 金首露王)을 처음 만나

자신을 아유타국(阿踰陁國)의 공주 허황옥(許黃玉)이다라는 기록에 따른 것이다.

아유타국은 현대 인도어로 Ayodhia 라고 쓰고 아윳다라고 발음하는데

이 나라는 고대 코살라국의 중심이었다고 한다.

인도의 역사를 보면 서기전 7세기 때쯤에 당시의 주요한 왕국들은

거의 갠지스의 동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특히, 유명한 나라들로는

코살라(Kosala), 비데하(Videha), 카시(Kashi), 마가다(Magadha),

앙가(Anga), 아반티(Avanti) 등이 있었다.

석가모니가 오늘날 네팔 땅에 있던 카피라 성에서 태어났을 때인 기원전 6세기에는

 고대 왕국 중 코살국이 맹주였고, 아요타국은 코살국의 중심이었다.

 

이 코살라국의 조상 신화를 보면 태고에 대홍수가 일어나 온 나라가 침수되었을 때

 마누라는 인물이 커다란 물고기(Matsya)의 도움으로 살아났다고 한다.

그 마누의 먼 후손인 익스바쿠가 코살라국을 세웠고,

그의 아들이 힌두교의 중흥 시조인 라마라고 한다.

따라서 물고기는 코살라국의 토템이자 힌두교의 한 신상(神像)이 되고,

국장은 신어(神魚)로 정해졌다고 한다.

후대에 코살라국이 망했어도 神魚를 숭앙하는 신앙은 그대로 전승되었고,

아요디아 출신의 힌두교도들은 왕조가 바뀌고 주민이 각지로 뿔뿔이 흩어져도

 그들은 가는 곳마다 힌두교 사원을 세우고 그들의 들을 경배하였다.

지금도 라마교에는 8가지 신상(神像)을 모시고 있는데 신어상(神魚像)도 그중 하나에 속한다.

두 마리 물고기가 한 쌍으로 등장하는 신어(神魚)상은 중앙아시아 초원의 유목민족인

스키타이인()을 거처 몽골인에게 전파된 것인데 이런 쌍어문(雙魚紋)

 남쪽으로는 티베트 네팔인도, 방글라데시남중국을 거처 가야로 전파되고,

북쪽으로는 알타이어몽골만주로 퍼져 민간신앙 속에 깊이 뿌리 박혔다.

그래서 가야의 시조 김수로 왕릉의 대문에 쌍어문이 여러 조로 조각된 것으로 사학자들은 보고 있다


 

또 인도는 11월에서 4월까지 건조기에 들어가는 데 가뭄으로 인해 물고기들은 얕은 물웅덩이로 모인다.

이 웅덩이를 인도 드라비다어(Dravidian languages)로 가락이라고 불리는 데 이는 물고기를 뜻한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전설이 페르시아 신화에서도 전해지고 있다.

신화를 보면 인류의 만병을 고치는 영약이 있는데,

그 약은 고케레나라고 부르는 바다속에서 자라는 나무의 열매였다.

인류가 번창하는 것을 시기한 악신(惡神)이 인류를 파멸시키고자

그 나무의 뿌리를 파 버리려고 두꺼비를 파견하였지만,

이 나무를 지키는 두 마리의 물고기 때문에 실패하였다고 한다.

그 물고기의 이름이 가라(Kara)이다. 가라가 지성으로 보호하여 고케레나 나무가 잘 자라났고

그 열매와 잎새를 먹고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번창하게 된 것이다.

 

(티브가 오병이어 교회(성당) '빵과 물고기 기적성당' 내 제대모자이크. 이스라엘 )


그 외에도 물고기를 신어(神魚)로 숭배하는 전설은 여러 나라의 신화에서 나온다

북아메리카 북서해안에 사는 인디언의 여러 부족은 연어의 큰 떼는

바다 저편에 사는 사람들이 연어로 모습을 바꾸어 해마다 정해진 계절에

 행운을 가져오기 위해 찾아오는 것이라고 믿고,

그들은 해마다 가장 먼저 강을 거슬러 올라온 연어를 극진히 대접하여 재회를 축하하며

물고기상을 세워 풍어를 기원하는 의례를 올린다고 한다.

 

또 고대 바빌론에는 지혜의 신이 천지창조 일 년 후에 물고기 모습으로 육지에 와서

인간에게 밭을 가는 지식을 가르치고 학문의 기초를 가르쳤다는 전설도 있다.

 

 서양에서는 인간을 바다에 사는 물고기로 비유하여,

성소에서 흘러나오는 기적의 물에 의해 다시 소생하는 물고기는

 생명을 상징하는 의미를 지닌다(에제 47,9)고 하는 이야기가 구약성경(에제47.9)에 있다.

(오빙이어의 바위) 

기독교에서의 물고기는 1세기 로마의 카타콤(Catacombs)의 프레스코 벽화에서 발견된 후

고대 그리스도인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스도인의 상징으로서의 이 물고기에 대한 언급은

 알렉산드리아 클레멘스(c. 150-)의 저술인 파이도고구스(Paedogogus;교사, III,xi)에 등장한다.

초대교회시대에(주후64년부터 250년간)로마는 교회를 향하여 큰 박해를 가하게 될 때

사람들은 피신하여 지하 공동묘지인 카타콤 등에 숨어서 지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신분을 나타낼 때 땅에 물고기를 그렸다.

 물고기 그림은 자신의 신분을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리는 일종의 암호였던 것이다.

물고기는 헬라어로(잌투스)'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구주십니다.'라는

헬라어 문장의 각각 첫머리 글자를 딴 글자와 일치하기 때문에

물고기 그림이 그리스도인의 상징이 된 것이라고 한다.

성서학자들에 의하면, 물고기란 뜻의 그리스어는 '익투스'(ΙΧθΥΣ) 인데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고백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왜냐면 공교롭게도 예수(Ιησoυs), 그리스도(Χριστοs), 하느님(θεοs),

아들(Υιοs), 구세주(Σωτηρ)의 첫머리 글자만을 따서 모아보면

물고기라는 그리스어 '익투스'(ΙΧθΥΣ)라는 단어가 되기 때문이다.

(에트루리아인의 석관) 

기원전 900년부터 기원전 100년까지 이탈리아반도 중북부 지역에 있었던

로마 이전의 국가였던 에트루리아인의 석관(石棺)에도

이런 물고기상들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물고기가 신어(神魚)로 숭배되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설이나 신화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물고기가 단순히 단순히 물고기가 아니라 신적인 영물로 숭배되어 온 긴 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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