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이의 푸념

2020. 5. 31. 22:31삶 속의 이야기들

늙은이의 푸념

나이가 들면 한해 한해를 보낼 적마다 늙어 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왜일까. 늙는다는 것은 태어난 모든 이들이 피할 수 없는 하나의 숙명인데도 말이다.

어떤 이는 노인을 예찬하기도 하지만 이는 호사가들의 이야기이고

늙어 간다는 것은 분명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젊음에 비해 서글픈 일이다.

이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하루하루 머리가 희어지고, 이가 빠지기 시작하고,

눈이 침침해지고, 허리고 굽어지고, 매사에 기억도 가물가물해지고,

잦은 병치레까지 하게 되니 이것이 어찌 기쁜 일이 되겠는가?

심신이 쇠약하니 경제력도 상실하게 되고

자식들이나 누구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니 이 또한 슬픈 일이 아닌가.

 

젊다는 것은 어떤 노력으로 얻어진 보상이 아니듯 늙어 가는 것 또한 나의 잘못도 아닌데,

단지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뒷방 늙은이가 되어

세상에 죄인이 아닌 죄인 취급을 받게 되니

내가 무슨 죄를 지어 이런 벌을 받아야 한다는 말인가.

백번 천번 양보하여,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고 하지만,

그 이승도 이제 멀지 않으니 어찌 서글픈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생각하면 할수록 답답하고, 산다는 것이 허망하고,

살아온 삶이 한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한 해 한해 나이를 먹어 가는 노인의 마음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지나온 세월 탓하기만 한다고 답이 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지나온 어제보다 짧지만 남은 내일을 생각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즐겁게 사는 것이 답이 아니겠는가.

 

어느 시인의 말을 보자.

「 나도 저렇게 햇볕 잘 드는 낮은 언덕에서

있는 듯 없는 듯 누렇게 늙어 가는 호박처럼

나도 저렇게 늙어 가고 싶다.

얼마나 편안하게 보이냐?

모난 데 하나 없이 둥글게 둥글게」

(서정홍·시인, 1958-)

영천 만불사

어제가 윤달로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로나 19 때문에 윤달이 있기에 윤달로 봉축을 삼았다고 한다.

부처님 이 땅에 오실 때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자아(自我)니 진아(眞我)니 하는 어려운 말은 제쳐 놓고

쉽게 풀이하면 이 세상에 나의 존재가 유일하다는 의미다. 내가 잘났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 마음이 불만에 차면 세상이 불만스럽게 보이고,

내 마음이 기쁘면 세상이 즐겁게 보이는 것이다.

세상이 불만스러운 것도 아니고 세상이 기쁜 것도 아니지만

내 마음에 따라 보이는 것이 따라간다는 의미다. 세상의 중심에 바로 내가 있다는 의미다.

불행도 행복도 모두가 나로 인한 것이다, 늙어 간다는 의미도

또 다른 태어남을 향해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면

그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몰라도 마음은 평정을 누리게 되게 된다.

오늘이 기쁜데 어찌 내일이 불행해지랴.

푸념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고 내일을 산다면

채우는 일 밖에 무엇이 있을까.

세상에는 많은 진리가 있다.

그러나 그 진리는 시대가 변해도 새로운 것이 없지만

사람은 매번 새로워질 수 있다.

늙은이의 푸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