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론(肇論) 열반무명론(涅槃無名論) 2

2020. 3. 17. 00:39조론

조론(肇論) 열반무명론(涅槃無名論) 2

 

석가는 마갈타국(摩竭陀國)에서 방문을 걸어 잠구었고

(부처님이 처음 성도하여 이십 삽일 사유에 잠기시어 설법하지 않았다),

정명(淨名)은 비야리에서 입을 다물었으며

(문수보살이 유마거사에게 불이법문(不二法門)을 묻자 유마거사는 말이 없었다.),

수보리는 설법 없음을 창도(唱導)하여 도를 나타내자,

석범(釋梵)은 도를 듣는 것이 단절된 것으로써 꽃비를 내렸다

( 수보리가 바위 속에서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제석천(帝釋天)은 꽃을 흩고 뿌리면서 반야를 훌륭하게 설법하시는군요 라고 했다.

이는 수보리존자는 설법이 없는 것으로써 설법하였고, 제석천은 들은 것 없이 설법을 들었다.).


(해동용궁사)  


이들 모두는 이치를 정신으로 거느렸던 것이다

(말하지 않은 도는 증득해야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입이 이 때문에 말이 없었던 것이다. 어찌 논변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논변으로는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변(四辯)으로는 그 꼴을 담론하지 못한다.)


(불암산 자락에서)  

 

경에서 말하기를

 진실한 해탈은 언어와 상수(象數)를 떠나서 적멸하게 영원히 편안하다

(생멸이 이미 사라졌기 때문이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며

(생멸이 아니기 때문에 시작도 끝도 없다),

어둡지도 밝지도 않다

( 적광(寂光)이 항상 관조하여 상대적인 어둠과 밝음에 소속되지 않는다),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것이

(생멸로 천류하는 법이 아니므로 시분(時分)에 소속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춥지도 덥지도 않은 것이다),

마치 허공과도 같아

(法身은 청정하여 담연하기가 항상 고요하여 마치 허공과도 같다),

명칭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다

(모습을 떠났기 때문에 명칭이 없으며, 언어를 떠났기 때문에 설명할 수도 없다.

이는 <열반경><유마경> 등등에서 인용 의미만을 인용하였다)라고 하였다.


(영주 부석사)

  

<중론>에서는 말하기를

 열반은 실유(實有)하지 않으나, 역시 실무(實無)도 아니다.

언어의 길이 끊기고 심의식(心意識)의 망상이 진행하는 곳이 사라졌다

(입으로는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언어의 길이 끊겼고,

심의식으로는 사량(思量)하지 못하기 때문에 심의식이 진행하는 곳이 사라졌다)라고 했다.

(의령 일붕사)  

 

하여 <信心銘>

信心不二 不二信心 言語道斷 非去來今이라 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