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론의 저자 승조대사의 임종게

2018. 3. 1. 01:49조론


(영은사의 나한상)


조론의 저자 승조대사의 임종게


四大元無主(사대무원주) 사대는 주인이 없고

五蘊本來空(오온본래공) 오온은 본래 공하다.

將頭臨白刃(장두임백도) 서릿발 같은 칼날에 목을 내미니

猶似斬春風(유사참춘풍) 마치 봄바람에 베이는 것 같구나.



(영은사 석굴의 석불)

조론(肇論)의 저자인 승조(僧肇, 384~414)는 중국 동진의 승려이다.

세속의 성은 장()이며, 경조(지금의 시안) 사람이다.

중국의 4대 역경자 중 한 분인 구마라집(鳩摩羅什)이 서역에서 중국에 건너오기 전

 당시 중국의 불교는 불법의 경전이 희소하여 불교의 대의를 바로 알지 못하고

 노장학(老莊學)에서 말하는 허무주의의 담론에 젖어 이를 불교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를 위진(魏晉)의 격의불교(格義佛敎) 시대라 일컫는다.

당시의 격의불교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논서로는

()나라의 도항(道恒)<무심론(無心論)>, 동진(東晉)의 도림(道林)<즉색유현론(卽色遊玄論)>,

()나라의 축법태(竺法汰)<본무론(本無論)> 등이다.

승조 역시 노자(老子), 장자(莊子)를 좋아했는데, 구역 유마힐경(維摩詰經)을 읽은 뒤 감동을 받고,

사상의 귀의처라고 생각하여 출가했다. 얼마 있지 않아

구마라집(鳩摩羅什:344~413)이 고장(지금의 간쑤성 우웨이시)에 오자 그에게 가서 가르침을 받았다.

(구마라집 동상)  

 

구마라집을 따르는 문도가 당시 3000여 명에 달했고 그 가운데 80명의 뛰어난 제자가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특출한 4명의 제자 道生(355~434),

승예(僧叡) 도융(道融), 승조를 구마라집의 4 ()이라 불린다.

승조는 구마라집을 따라 장안(지금의 시안)으로 가서 승예 등과 함께

구마라집의 역경 사업에 참여하여 경론을 깊이 연구하였다.

승조는 특히 반야학에 뛰어나 구마라집의 문하에서

 '공의 이해에는 제일'이라는 칭송을 받기도 했다.


(영은사의 문수보살상)  

승조는 당시 불교학자들의 저서가 문장이 난삽하고 해설이 잘못되어

불교의 본뜻에 맞지 않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여,

유창한 문체로 반야공의 기본원리를 분명하고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

바로 그의 반야무지론 般若無知論인데 이는 구마라집과 혜원의 극찬을 받았다.

 

저서로는 부진공론 不眞空論·물불천론 物不遷論·유마힐경주 維摩詰經注등이 있으며

중국 불교 철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부진공론은 삼론종의 이론적 근원이 되어 길장은 '현종(玄宗)의 시조'라고 받들었으니

그는 삼론종의 실질적인 창시자였다.

 

@승조는 31살의 젊은 나이에 옥사(獄死)했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1004)에 따르면,

그를 등용하고자 하는 황제의 권유를 거부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한다.

그가 옥중에서 처형날짜를 기다리면 일주인 만에 <보장론(寶藏論)>을 지었다고 하며,

<조론(肇論)>20대 초반에서 후반에 걸쳐 저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