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 승탑 보물 제190호

2020. 2. 23. 18:13문화재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 승탑 보물 제190

 

19631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90호로 지정된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原州 居頓寺址 圓空國師塔)

고려 시대 초기의 고승 원공국사의 사리를 봉안한 승탑이다.

현재 원주 거돈사지에 있는 원공국사승탑비가 고려 현종 16(1025)에 건립되었던 것으로 볼 때

 역시 그 무렵에 함께 승탑도 함께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원공국사승탑은 본래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 거돈사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불법 반출되어 일본 사람의 집에 소장되어 있던 것을

1948년 경복궁으로 옮겨다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봉안된 것이다.

원공국사탑비(塔碑)와 이 승탑의 지대석은 원주 거돈사지의 원위치에 그대로 있다.

 

 

 

 

@원공국사(圓空國師)는 법명이 지종(智宗, 9301018)으로 고려 광종 때의 승려이다.

고려 초기의 천태학승(天台學僧)으로, 속성(俗姓)은 전주(全州) 이씨(李氏),

()는 신칙(神則)으로, 8세에 사나사(舍那寺)에 머물고 있던

인도승(印度僧) 홍범삼장(弘梵三藏)에게 출가하였다.

홍범삼장이 인도로 돌아가자 광화사(廣化寺) 경철(景哲)에게 수업하여

 946(고려 정종 1) 영통사(靈通寺) 관단(官檀)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953(고려 광종 4) 희양산(曦陽山)의 형초선사(逈超禪師) 밑에서 수행하였고,

954년 승과(僧科)에 합격하였다. 959년 고려 광종의 환대를 받으며

오월국(吳越國)으로 유학하여 영명사(永明寺) 연수(延壽)에게 법안종을 배웠고,

 961년 국청사(國淸寺) 정광(淨光)에게

'대정혜론(大定慧論)'을 배워 천태교(天台敎)를 전수받았다.

 968년 전교원(傳敎院)에서 '대정혜론''법화경(法華經)'을 강의하여 명성을 떨쳤다.

1012(고려 현종 3) 왕사(王師)가 되었다.

 

 

법안종은 법안문익 스님이 창시하여 천태덕소, 영명연수에게 법이 전해졌다.

왕건의 셋째아들이자 4대 왕인 고려 광종이 법안종 3대 조사인 영명연수 스님을 사모하여

학승 36명을 중국에 유학시켰는데 그 중 원공국사 지종이 영명연수로 부터 법을 받아 고려에 전했다.

중국에서는 법안종이 쇠퇴하여 임제종에 흡수되었으나,

고려에서는 크게 발달한다. 원공국사는 현종 9(1018) 거돈사에 들어가 그해에 입적하였다.

 

 

@원공국사승탑은 고려 초기 팔각원당(八角圓堂) 형식의 대표적 양식을 취하고 있다.

 신라 부도의 양식을 이어받아 모양이 단정하고 아담하며,

조형의 비례가 좋고 중후한 품격을 풍긴다.

게다가 전체적으로 조각이 장엄하여 한층 화려하게 보인다.

 

현재의 승탑은 지대석(地臺石) 없이 바로 기단이 시작되고 있다.

지대석은 옛 거돈사지의 원래 자리에 그대로 두고 옮겨진 모양이다.

기단은 하대석·중대석·상대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부분이 팔각이다.

 

 

 

 

 

하대석은 면마다 안상(眼象)을 새긴 후, 그 안에 화형(花形)을 새겨 장식하였다.

 윗면에는 갑석(甲石)을 새기고, 16()의 복판(複辦) 연꽃이 있으며,

 3단으로 된 괴임석이 있어 중대석을 받치고 있다.

 

 

중대석은 상하에 테를 둘렸고,

면의 좌우에 1단의 굴곡을 둔 간략한 형태의 안상을 새겼으며

그 안에 팔부중상(八部衆像)을 배치하였다.

 

 

 

 

 

 

 

 

 

 

 

상대석에는 활짝 핀 연꽃잎을 2중으로 돌려 새겼으며,

윗면에는 호형(弧形)을 중심으로 하여 그

 상하에 각형(角形)을 새긴 팔각형 괴임을 마련하여 탑신을 받치게 하였다.

 

 

 

 

 

 

탑신은 팔각형인데, 모서리마다 주위를 화형으로 장식한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이것은 이 부도가 승려의 사리탑이면서도 불탑의 형식을 따르려 했던 의도를 엿보게 한다.

각 면에는 앞뒤 양면에 문비(門扉)와 자물쇠 모양의 문약(門鑰),

좌우 양면에 창호(窓戶),

그리고 나머지 네 면에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새겨 넣었다.

 

 

 

 

 

 

 

 

 

 

자물쇠 모양의 문약 위에 원공국사승묘지탑이란 제액이 묘각되어 있다.

 

 

 

 

 

 

 

 

 

 

 

  

옥개석 역시 팔각으로 탑신석과 닿는 곳에 4단의 받침을 표현하고, 그 위에 서까래를 새겼다.

 추녀는 얇고, 각 귀퉁이에는 치켜세움이 뚜렷하며,

 낙수면에 새겨진 기와골 조각은 처마에 이르러 막새기와의 모양까지 표현해 놓아

 일반적 팔각원당형 부도의 형식처럼 목조 건축의 지붕 모습을 충실히 본떴다.

 

  

상륜부는 조금 특이한 구조이다. 복발은 옥개석과 같은 8각 원형으로

그위에 원형의 보륜을 얹고 그 위에 보개를 두고 보개는 앙련으로 묘각되어 있고 그 위에 보주를 두었다.

 

 

 

 

 

 

 

 

 

 

 

(사진자료 : 문화재청)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승묘탑비 보물 제78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비(原州 居頓寺址 圓空國師塔碑)는 강원도 원주시 거돈사지에 있는,

고려의 고승 원공국사(930~ 1018)의 행적을 기록한 비로 대한민국의 보물 제78호이다.

최충이 비문을 짓고 김거웅이 글씨를 써서 1025(현종 16)에 세웠다.

 

귀부의 거북머리가 용머리처럼 변화하였는데 양쪽 귀 뒤가 물고기 지느러미처럼 되어 있다.

귀갑문 안에는 사자와 연꽃무늬가 교대로 장식되어 있다.

비 머리인 이수에는 구름 위에 요동치는 용이

불꽃에 싸인 보주를 다투어 물고자 하는 모습을 섬세하고 화려하게 조각하였다.

높이가 499.7cm, 비신의 폭은 123.8cm이며 고려 초 조각 예술의 높은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거돈사터에 세워져 있는 탑비로, 고려 시대의 스님인 원공국사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거돈사지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에 있는 신라 시대의 절터로

현계산 기슭의 작은 골짜기를 끼고 펼쳐진 곳에 있는 절터로 사적 제168호로 지정되어 있다.

발굴조사 결과 신라 후기인 9세기경에 처음 지어져 고려 초기에 확장·보수되어

조선 전기까지 유지된 것으로 밝혀졌다.

절터에는 중문 터, , 금당터, 강당터, 승방터, 회랑 등이 확인되었는데,

금당의 규모는 앞면 5·옆면 3칸으로 2층 건물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중문지 북쪽의 3층석탑(보물 제750)은 처음 세워질 때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되는데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다.

탑의 동쪽에는 원공국사 지종(9301018)을 위한 원공국사승묘탑비(보물 제78)가 있는데, 1

025년 최충이 문장을 짓고 김거웅이 글씨를 썼다.

탑비와 함께 원공국사승묘탑(보물 제190)이라 불리는 승탑은 현재는 경복궁 뜰 안에 옮겨 놓았다.

거돈사는 고려 초기 불교계의 중심이었던 법안종의 주요 사찰이었지만,

고려 중기 천태종이 유행하면서 천태종 사찰로 흡수되었다.

거돈사는 신라말 고려초의 절터로서 보기 드문 일탑식 가람으로 주목할 만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