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16. 19:04ㆍ문화재
원주 신선암 석조보살입상
원주시 봉산동 역사박물관을 들렀다가
박물관의 천왕사 석조미륵불과 같은 유형의 석불이 신선암(神仙庵)에 있다는
박물관 해설사의 말만 듣고 찾아 나섰다.
사찰은 박물관에서 10여 분 거리라서 쉽게 찾았지만, 석불은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신선암의 입구에는 있는 사찰안내판에도 석불이 나와 있지만,
경내를 둘러 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사람도 없어 물어볼 수도 없었다.
사찰은 조금 언덕 위에 있고, 요사채는 그 아래에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요사채까지 둘러 보았지만, 석불은 끝내 찾아볼 수가 없었다.
비명이 비구니영각선사비임을 보아 신선암은 비구니사찰인 모양이다.
석불을 찾지 못해 포기하고 돌아 나오는데 신선암 입구 후미진 텃밭 옆 작은 공터에
이상한 구조물이 보여 내려서 봤더니 이것이 신선암의 석불이었다.
석불에 대한 안내판도 없고 후미진 숲속에 완전히 방치되어 철망으로 막아 놓은 것이 전부였다.
아직은 비지정 문화재이긴 하지만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아
이끼까지 더덕더덕 낀 것이 못내 서글픈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신선암 입구에 세워져 있는 석조 보살입상은
비지정문화재로 높이 1.7m, 좌대의 높이는 0.5m의 시멘트로 이중으로 쌓아 기단으로 삼았다.
속된 말로 연화대좌 대신 값싼 시멘트로 땜질해 버린 것이다.
본래는 철도 변에 있던 천주교 공동묘지에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고 한다.
묘지를 지키는 문인석 정도로 생각한 것일까.
신선암의 석불은 머리는 달팽이 모양을 한 익선관(翼善冠) 같은 관을 쓰고 있으며
눈과 코와 입은 마멸이 심하여 전체적인 얼굴상을 판별하기는 어렵다.
삼도(三道)는 표현되어 있지만,
목 아래로 처져 있어 삼도로 보기로는 다소 어색한 느낌마저 든다.
법의는 양어깨를 덮은 통견으로 가슴 아래에서 U자 형태로 내려와
허리 부분에서 다시 양편으로 갈라져 있다.
이러한 양상은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를 넘어가는 과정의 석불에서
흔히 나타나고 있는 법의(法衣)의 형태인데 다만 무릎 아랫부분이 파묻혀 있고,
석불 전체가 이끼가 심하게 끼여 단정하기 어렵지만,
같은 지역 봉산동 석조여래입상(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7호)과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임을 고려할 때 아랫부분의 법의도 Y자로 갈라져
물결 주름이 잡혀 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왼손은 자연스럽게 내려 법의를 쥐고 있고 오른손은 가슴에 두었다.
무릎 아랫부분이 시멘트로 덮여 그 본래의 위치나 제작 시기는 정확히 추측하기는 어렵다.
다만 전체적인 모습에서 고려해 본다면 연화대좌일 것으로 추측해 본다.
전체적으로는 신선암 석조미륵보살입상은 양팔을 타고 내린 법의는
다소 무거운 느낌을 주지만 후덕한 얼굴과 풍부한 느낌에서 다소 파손되긴 하였지만,
그 조각 수법이 우수하여 고려 초기의 유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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