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함라산 숭림사

2019. 11. 19. 21:29문화재

익산 함라산 숭림사

익산 함라산 숭림사(咸羅山 崇林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신라 경덕왕(재위:742765) 때 금산사의 창건주로 알려진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구체적인 근거는 없다.

익산의 함열현(咸悅縣) 읍지(邑誌), 명문와(銘文瓦)의 기록,

불상의 복장문(腹藏文) 등의 사료를 종합하여 보면

1345(충목왕 1)에 창건되었고, 1613(광해군 5)1614년에 중수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1628(인조 6)에는 기와를 새로 얹었으며, 1682(숙종 8)에 다시 중수하였다.

(咸悅縣邑誌, “崇林寺在縣北七里咸羅山下 寶光殿高麗忠穆王元年乙酉建築”)

 

 

숭림사는 선종 사찰이며 숭림사(崇林寺)라는 사찰 이름은

달마대사의 9년 면벽 수행으로 유명한 중국의 숭산소림사(崇山小林寺)에서 따온 것이다.

1592(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 보광전을 제외한 건물 대부분이 불에 탔고,

그로부터 10년 뒤에 우화루(雨花樓)만을 중건한 채 뚜렷한 사적(事蹟) 없이 내려오다가,

1697(숙종 23)1819(순조 19), 1892(고종 29) 각각 전각을 중수하여

절의 면모를 새롭게 했으며, 일제강점기인 1923년에

주지 황성렬(黃成烈)의 노력으로 보광전을 중수하고,

 1957년 고광만(高光滿)의 시주로 나한전(羅漢殿)

영원전(靈源殿) 등을 새로 지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물 제825호인 보광전을 비롯하여

우화루·정혜원(定慧院영원전·나한전·요사채 등이 있다.

보광전 앞에는 석탑 1기가 있다.

유물로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7호로 지정된 청동은입인동문향로와 목사자 2, 법고 등이 있다.

 

 

 

 

 

 

 

 

 

 

 

 

 

 

 

 

 

 

 

 

@우화루

1592(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10년 뒤에 중건하였다.

 

 

@정혜원

보광전 좌측에 위치한 숭림사 정혜원(崇林寺 定慧院)

20171229일 익산시의 향토유적 제18호로 지정되었다.

 정혜원은 17세기 사찰 내 요사채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오층석탑

최근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2단 기단석에 상대면석에는 보살을,

하대 갑석에는 앙련을 부조해 놓았다. 옥개석은 단조로운 편이며,

옥개석 받침은 3단으로 경사가 완만하다.

상륜부는 노반, 앙화, 보개, 찰주를 갖추었고, 보개는 팔각형으로 되어 있다.

 

 

@영원전

숭림사 영원전(崇林寺 靈源殿)20171229일 익산시의 향토유적 제17호로 지정되었다.

 영원전은 1914년 소실로 1925년 인근의 성불암에서 이건 돼 정확한 건축연대는 알 수 없지만,

전면 공포가 이익공형식임에도 불구하고 내부에 출목이 있는 특수한 사례로서 건축사적 가치가 크다.

 

 

 

 

 

 

지장보살상은 1634(인조 12) 수연(守衍) 작으로 알려져 있다.

 

 

 

 

 

 

 

@나한전

문화재 지정: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19

나한전은 1929년에 신축한 전면 3,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나한전 안에는 석가모니상과 가섭존자상, 아난존자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16나한상, 범천상, 제석천상, 동자상, 인왕상 등 총 29구의 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나한전에 봉안된 석가모니상은 근래에 조성한 것이다.

 

 

 

석가모니상의 우측에는 입상인 가섭존자상이 있으며 좌측에는 아난존자상이 있다.

두 상은 모두 정면을 향해 합장하고 있으나 합장한 손 모양에서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가섭존자상은 석가여래상의 좌측에,

 아난존자상은 석가여래상의 우측에 배치되나 현재는 좌우가 바뀌어 봉안되어 있다.

 

 

 

나한전에 있는 16나한상은 다양한 크기와 자세를 갖추고 있다.

16나한상은 대부분이 결가부좌한 자세로 앉아 있으나

손의 위치와 지물 등은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다.

지물로는 경전·염주·몽구스·새끼 호랑이·용 등이 있다.

머리는 민머리를 한 상이 대부분이며 두건을 착용한 나한상도 있다.

 

 

 

나한상은 신체보다 얼굴을 크고 넓적하게 만들었다.

인자한 모습과 강인한 모습의 나한상이 섞여 있다.

복식은 대부분 장삼 위에 가사를 걸치고 있다.

 

 

 

기본적인 복식의 채색은 녹색과 청색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가사는 붉은색이다.

대부분의 채색은 근래에 다시 칠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대좌는 연화대좌와 평상 모양의 대좌, 암반 모양의 대좌 등 다양하다.

바위대좌는 마치 산맥을 조각해 놓은 것처럼 중첩된 산 모양으로 표현하였다.

 나한전에 봉안된 소조 나한상과 그 권속은 모두 조선 후기인 17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금강역사

 

 

 

 

 

 

 

산신각

 

 

 

 

 

 

 

 

 

 

 

@보광전

시대; 고려

문화재 지정; 보물 제825

건립시기 ; 창건: 1345(고려 충목왕 1), 중수: 1682(숙종 8)

 

 

 

 

 

 

 

 

 

 

 

198518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825호로 지정되었다.

보광전 중수기에 의하면 조선 순조 19(1819) 중수되었다고 하며

 정면 3, 측면 3칸의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 건물이다.

법당에는 비로자나불을 모셨다고 하나 현재 봉안된 것은 석가모니삼존불이다.

 

 

 

@보광전 목조석가여래좌상

익신 숭림사 보광전 목조석가여래좌상(益山 崇林寺 普光殿 木造釋迦如來坐像)

  2001427일 전라북도의 유형문화재 제188호로 지정되었다.

불상의 복장기에 의해 1613(광해군 5)과 그 이듬해에 걸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보광전은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시는 전각이나 숭림사의 보광전은 석가모니삼존불을 모셨다.

 

 

(칠성탱의 석조불은 약사여래)

불상의 상호(相好)는 조선 후기 불상으로는 드문 갸름한 계란형으로 턱 쪽이 좁게 조각되었다.

 반듯하고 좁은 이마에 백호가 있고, 눈은 위로 치켜 올라가 반개하였다.

약간 짧은 코는 날씬하고 오뚝하게 조각되었다.

인중이 두드러지고 입은 꼬리가 올라가 있는 모습으로 미소를 짓고 있다.

머리는 나발로 육계와의 경계가 모호하며 원기둥 모양의 정상 계주와 반원형의 중간계주가 조각되었다.

목은 거의 표현되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아주 짧고 위축되었으며,

턱이 좁아서 목의 너비도 바짝 줄어들었다. 아래로 처진 삼도(三道)도 얕고 형식적으로 조각되었다.

 

 

(신중탱)

얼굴보다 신체는 당당하고 배를 불룩하게 조각하여 풍만감 있게 표현되었다.

넓게 벌어진 어깨를 돌아내리는 변형된 우견편단의 옷자락은

조선 전기 경주 천주사(天柱寺) 목불좌상이나 같은

전라도 지역의 조선 후기 목불좌상에서도 많이 나타나 비교할 수 있다.

 다만 팔을 거쳐 배를 지나 왼쪽 어깨로 이어지는 옷자락의 너비가

 다른 예들에 비교해 굉장히 넓게 조각된 것이 특징적이다.

내의는 일직선으로 표현되었는데 중간 부분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내려오는 계단형의 조각이 눈에 띈다.

왼쪽 소맷자락의 일부는 결가부좌한 오른발 발가락 끝을 살짝 덮어 발아래로 흘러내리고 있다.


 

(독성)

수인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으로, 오른손은 무릎에 걸쳐 내려져 있는데

손과 무릎이 완전히 밀착되지 않고 붕 떠 있다.

별목(別木)으로 제작된 왼손은 무릎과 살짝 떨어져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굽히고 있다.

 하체는 전체적인 비례로 볼 때 상체보다 빈약하며

형태도 직사각형에 가깝고 평면적이다. 결가부좌한 다리 사이로 부채꼴형 주름이 조각되어 있다.

 

 

 

보광전의 건물 안쪽에는 보 끝에 용머리를 조각해 놓았고,

기둥 윗부분에 설치된 건축 부재들은 천장에 조각된 비천상을 비롯하여

각각 연꽃, 용의 몸, 용 앞발이 여의주를 쥐고 있는 모양, 가릉빈가, 봉황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퇴색이 되긴 했지만 이렇게 아름답고 정교하게 조각된 보물을

법당 안의 메달린 연등으로 인하여 온전히 볼 수 없어 내내 아쉬움을 느꼈다.

보광전은 조선 후기 불교 건축의 법식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재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용머리에 봉황을 조각해 놓았다.

 

 

비천상

 

 

 

 

 

 

 

 

 


 


 

 

 

@사찰 안내문에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7호로 지정된 청동은입인동문향로가 있는데

따로 소장하고 있는 모양이어서. 위키백과의 설명과 펌한 사진으로 대신한다.

 

 

@청동은입인동문향로(靑銅銀入忍冬文香爐)

청동은입인동문향로는 고려 충목왕 원년인 1345년에 창건된 숭림사에 전래되어 온 향로이다.

삼족이 달린 타원형 몸체에 사자 장식 뚜껑으로 구성되어 있다.

몸체에는 사자를 닮은 수면(獸面) 장식이 양쪽에 있고

그사이에 모란당초문이 은입사기법으로 장식되어 있다.

뚜껑에는 목에 방울을 단 사자가 왼발로 공을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