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왕궁리 유적전시관

2019. 11. 14. 21:01명승지

익산 왕궁리 유적전시관

@익산 왕궁리 유적(益山 王宮里 遺蹟)은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에 있는 백제의 유적이다.

1974927일 전라북도의 기념물 제1호 모질메산성으로 지정되었다가,

1998917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408호로 승격, 지정되었으며,

201574일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 역사유적지구로 지정되었다.

왕궁리성이라고도 부르며 마한의 도읍지설, 백제 무왕의 천도설이나 별도설,

안승의 보덕국설, 후백제 견훤의 도읍설이 전해지는 유적이다.

 

 

 

발굴 조사한 결과, 이 유적은 적어도

세 시기(백제 후기통일신라 후기)를 지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석탑 동쪽으로 30m 지점에서 통일신라 시대 것으로 보이는 기왓가마 2기를 발견했다.

특히 탑을 에워싼 주변의 구릉지를 중심으로

직사각형 모양의 평지성으로 생각되는 성곽 유물을 찾았다  

성곽의 모습은 현재 발굴을 통해 점점 드러나고 있다.

또한, 성곽 안팎으로 폭이 약 1m 정도로 평평한 돌을 깔아 만든 시설이 발견되어

 성곽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이 지역 안에 있는 왕궁리 오층석탑(국보 제289)과 절터의 배치를 알 수 있게 하는 유물,

바깥쪽을 둘러싸고 있는 직사각형의 성이 발견되어,

백제 후기의 익산 천도설이나 별도설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유적으로 떠오르고 있다.

201574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백제역사유적지구(공주지역에 2(공산성, 송산리 고분군),

부여 4(관북리 유적 및 부소산성,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지, 부여 나성),

익산 2(익산 왕궁리 유적, 익산 미륵사지))

3개 지역 8곳이 세계유산 등재 심사를 최종 통과하여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왕궁리유적전시관 *

왕궁리 유적전시관은 왕궁리5층석탑이 위치한 왕궁리유적 남측에 건립되어

 2008년 개관한 전시관으로 유적 발굴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내용을 소개하고

출토유물을 전시하여 문화교육장으로 활용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왕궁리 유적은 1989년부터 20년 동안 발굴조사 결과

백제 무왕 대에 왕궁으로 건립되어 경영되다 후대에 왕궁의 중요 건물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사찰이 건립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전시관에서는 왕궁리 유적의 발굴조사 내용을 영상으로 제작하고 중요 출토유물을 전시하여

 왕궁리 유적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고

 백제기와를 관람객이 직접 만져보면서 기와 제작과정을 살펴볼 수 있으며,

목판 찍기 체험도 준비되어 있다. 백제 왕궁터는 우리나라 고대 왕궁으로는 처음으로

왕궁의 외곽 담장과 함께 왕이 정사를 돌보거나 의식을 행하던 정전 건물지를 비롯한

14개의 백제 건물지와 백제 최고의 정원유적, , 유리, 동 등을 생산하던 공방지,

우리나라 최고의 위생시설인 대형화장실 유적 등이 조사되어

왕궁의 축조 과정과 왕궁에서의 생활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유물은 발굴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 중 300여 점을 선정·전시하였는데,

왕궁을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금제품, 유리제품, 수부(首府)면 인장와,

전달인 토기 등과 함께 연화문 수막새, 각종 인장와와 토기류,

금과 유리제품을 생산하던 도가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왕궁리유적지 방문객을 위한 포트존이 입구에 조성해 놓았다.  

 

 

인장와

 

 

 

 

 

 

 

 

 

 

 

 

 

 

 

 

 

 

 

 

 

 

 

 

 

 

 

 

 

 

 

 

 

 

 

 

 

 

전달린 토기

 

 

 

 

수막새는 목조건축 지붕의 처마 끝을 마감하는 치장용 기와로,

목조건축의 추녀나 담장 끝에 기와를 마무리하기 위해 사용되는 둥근 형태로 만든 와당이다.

목조건물에 기와를 덮는 이러한 풍습은 고대 동양건축의 특색 중의 하나로

중국 주대(周代)부터 시작되었다.

전국시대에 타원형의 수막새를 붙이기 시작하였으며,

(한대(漢代)에는 원형 수막새가 널리 사용되었다.

한국에 기와가 전래한 시기는 한사군설치 이후인 BC 2~1세기로 보이며,

삼국시대에 불교전래와 함께 연꽃무늬가 새겨진 수막새가 제작되었다.

 

 

수막새는 암키와와 수키와가 형성한 기왓골과 기왓등의 가장자리로

 빗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막음하는 역할을 한다.

수막새에는 대부분 장식적인 문양이 새겨지는데 연화무늬가 주로 사용되었다.

이외에 당초무늬·모란무늬가 많으며 때로는 문자나 명문(銘文)이 쓰이기도 한다.

또 귀면(鬼面)을 비롯한 각종 동물무늬가 등장하고 불·보살이나 인물이 조각되는 예도 있다.

 

 

 

 

관북리출토유물 수막새

 

 

 

 

제석사지출토유물 수막새

 

 

임동덩굴무늬 암막새와 연꽃무늬 수막새

 

 

 

 

 

 

 

 

 

 

천부상

 

 

 

 

 

 

 

 

 

 

 

 

 

 

 

 

 

 

 

 

 

 

토기뚜껑

 

 

 

 

 

 

 

 

 

 

 

 

 

암기와

 

 

 

 

 

연통장식

 

 

연통장식

 

 

 

 

왕궁리유적출토 수막새

 

 

 

 

 

수막새

 

 

 

 

 

연꽃무늬수막새

 

 

 

 

 

보석(유리제품)

 

 

 

 

 

 

 

 

 


 

 

 

 

* 왕궁리유적, 백제사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 *

왕궁리유적은 인접한 익산 미륵사지(彌勒寺址)와 함께 최대 규모의 백제 유적으로 꼽힌다.

크기를 떠나 왕궁리유적이 관심을 받는 이유는 왕궁리유적터가 백제의 왕도였다는 왕도설과

백제 후기 익산 천도설 등의 역사적 가설에 뒷받침이 되는 유적이기 때문이다.

익산이 백제의 왕도였다는 학설은

신증동국여지승람대동지지 익산읍지 등의 문헌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이곳이 '옛날 궁궐터’ '무왕이 별도(別都)를 세운 곳',

 '마한의 궁성터'라고 적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료와 왕궁리유적의 발굴로

익산 왕도설이 힘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익산이 백제의 왕도였다는 왕도설 등은 아직 백제사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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