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함월산 기림사 제2부

2019. 6. 29. 16:07국내 명산과 사찰

경주 함월산 기림사(祇林寺) 제2부


관음전


정면 3칸 측면 2칸 주포식 맞배지붕이다. 법당에는 천수천안대비관음보살을 모셨다.

기림사의 전각들은 모두 기둥 하나에 하나의 공포를 올린 주포식으로 맞배지붕을 한 것이 특징이다.



 법당에는 천수천안대비관음보살을 모셨다.

천 개의 눈과 손을 가진 관음을 천수천안대비관음보살(千手千眼大悲觀音菩薩)이라 하며

이를 줄여 부를 때 천수관음이라고 한다.



탱화로 모실 때는 1000개의 손과 눈을 그리지만, 조각상으로 모실 경우는

이를 묘사하기가 무리가 되어 대개 42를 묘사하게 되는 데 이를 42수 관음이라고 부른다.

 42중 합장한 본래의 두 손을 뺀 40 의 각각

 25 의 중생을 제도함으로 40x25=1000이 된다.



 25는 욕계의 지옥에서

무색계(無色界)의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까지의 육도 중생을 25유로 분류한 것을 의미한다.

천수관음의 손에 든 각각의 지물(持物)은 중생들의 갖가지 원()을 성취해 주기 위한 용구들이다.

(천수관음에 대해서는 본방 도봉산 망월사 참조)










삼천불전

정면 7, 측면 3칸 다포식 맞배지붕으로 1990년대에 지은 전각이다.

수미단에는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문수와 보현보살을 협시로 모셨다.

천 불은 과거, 현재, 미래 어느 곳 어느 시대에도 부처님이 계신다는 의미를 상징한 것으로

기림사는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를 각각 천 불로 하여 삼천불전이라 하였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천불전으로는 보물 제1807호인 해남 대흥사의 천불전이 유명하다.

 





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좌우에 문수와 보현보살을 협시로 모시고

삼존불 좌우에 3,000불을 봉안했다. 








삼성각

정면 3, 측면 2칸 주포식 맞배지붕이다.

삼성각에는 치성광여래와 산신, 독성을 모셨다.







명부전

정면 3칸 측면 2칸 주포식 맞배지붕이다.

법당에는 지장보살을 주존으로 무독귀왕과 도명존자를 협시로 두고 좌우에 시왕을 모셨다.












용연폭포(龍淵瀑布)

삼국유사에는 신라 신문왕이 감포 앞바다에서 동해의 용왕으로부터

만파식적과 옥대를 선물로 받았다는 전설이 실려 있다.

신문왕의 아들 이공(훗날 효소왕이 됨, 재위 692~702)이 옥대를 보고

이는 옥대가 아니고 용이라고 하자

신문왕이 옥대를 물에 담그자 옥대는 그 자리에서 용으로 변하여 승천하였다고 한다.

용이 승천한 그곳이 바로 이곳 용연폭포라 한다.

신문왕이 귀환하는 도중에 기림사 서쪽에서 쉬었다 갔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나온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신문왕이 용왕으로부터 받았다는 만파식적(萬波息笛)에 대한 설화

신라 제31대 신문왕(재위:681~692)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해 동해안에 감은사를 지었는데,

다음 해 작은 산 하나가 감은사 쪽으로 떠내려오고 있다는 전갈이 있었다.

점을 친 일관은 해룡(海龍)이 된 문무왕과 천신(天神)이 된 김유신이

 왕에게 성을 지키는 보배를 주려는 것이니 해변에 가서 받으라고 했다.

 

왕이 기뻐하며 이견대(利見臺)에서 바다에 떠 있는 산을 바라보다가 사람을 보내 살펴보니,

산의 모양이 거북의 머리와 같은데 그 위에 대나무 한 줄기가 있어

낮에는 둘이 되고 밤에는 하나가 되었다. 다음날 대나무가 하나가 되자

 7일 동안이나 천지가 진동하고 비바람이 몰아쳤다.

바람이 자고 물결이 평온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왕이 그 산에 들어갔더니,

 용이 검은 옥대(玉帶)를 가져와 바쳤다.

 

왕이 산과 대나무가 갈라지기도 하고 합해지기도 하는 이유를 물었다.

용은 그것이 소리로써 천하를 다스릴 상서로운 징조라고 하며

대나무가 합해졌을 때 베어다 피리를 만들어 불면 천하가 평화로울 것이라고 했다.

 

왕이 사람을 시켜 대나무를 베어가지고 나오자 산과 용이 갑자기 사라졌다.

 왕이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월성 천존사에 두었는데,

이것을 불면 적이 물러가고, 병이 낫고, 비가 올 때는 개이며, 바람과 물결도 잠잠해졌다.

그래서 이 피리를 만파식적이라 하고 국보로 삼았는데,

효소왕 때 기이한 일이 일어나자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이라고 했다.

 

이 설화는 신문왕이 만파식적을 얻게 되는 신비체험을 기록한 것이다.

만파식적은 환웅의 천부인(天符印), 진평왕의 천사옥대(天賜玉帶),

이성계의 금척 등과 같은 성격의 신성징표이다.

신문왕은 정치적 힘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 왕권의 정통성과 신성성을 확립하고

지배계층의 동질성을 재확인해야 했다.

따라서 삼국통일의 업적을 이룩한 아버지 문무왕과 김유신을 등장시켜

 왕권을 강화시킬 수 있는 신물(神物) 설화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 설화는 삼국유사의 만파식적조, 백률사조(栢栗寺條), 원성대왕조(元聖大王條)에 기록되어 있고

 삼국사기·신증동국여지승람·동사강목등에도 단편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화정당(華井堂)

화정당의 설립목적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오정수의 하나인 화정수(화정수)와 관련된 전각인 모양이다.

기림사에는 원래 오정수(五井水)가 유명하였다고 한다.

그 중 장군수(將軍水)는 마시면 힘이 용솟음친다 하여 인근에 널리 알려졌는데,

조선 시대 어떤 사람이 이곳에서 역적모의하다가 발각된 뒤 나라에서 샘을 메워버렸다고 한다.

나한전 앞쪽 탑 자리에도 샘이 있었다고 하나 이미 자취를 감추었고,

또 하나는 절 입구에 있었으나 최근 도로확장 때 매몰되었으며,

현재는 큰 방 옆과 아랫마을에만 보존되어 있다.

화정수는 이 물을 마시면 폐를 다스려 마음이 평안해진다고 한다.





기림사건칠보살좌상(祇林寺乾漆菩薩坐像) 보물 제415

 

보물 제415호로 높이는 91. 1501(연산군 7)에 조성된 관세음보살반가상인데,

새김이 정교하며 드물게 전하는

건칠불(乾漆佛: 진흙으로 속을 만들어 삼베를 감고

그 위에 진흙 가루를 발라 묻힌 다음 속을 빼어버린, 속이 빈 소상)이다.

근래에 따로 보관된 목조대좌에서

"弘治十四年□□正月始至四月初八日 新羅含月山西水庵堂主造洛山觀音菩薩造佛"이라는

묵서명이 발견되어 1501년에 조성된 관세음보살상임이 밝혀졌다.

이 보살좌상은 건칠기법으로 만든 상으로는 드문 것으로

또 반가좌(半跏坐) 자세를 취한 점이 주목되는 귀한 작품이다.

 

보살상의 머리에는 상투를 올리고 그 위에 따로 만들어진 2단 구조의 보관(寶冠)을 썼는데,

관의 표면에는 아름다운 덩굴무늬가 돋을새김 되어 있다. 얼굴이 둥글고 꽃 모양의 귀걸이를 달았으며,

양어깨에는 천의(天衣)를 걸치고, 세 가닥의 장식이 달린 목걸이를 하고 있다.  

군의(裙衣)는 가슴 부근까지 올려 입고 띠를 묶었는데, 독특한 형태로 띠를 처리하였다.

발목 위에 늘어진 옷자락은 자연스러운 의문(衣文)을 이루며 흐르고,

체구에 비교해 작게 조각된 손과 발은 비례감을 떨어뜨리나 아담하다.

 이 불상을 조선 전기 불상과 비교해보면, 얼굴 모습이나 비만 한 체구에서

이국적인 조형감이 느껴져 중국 명나라 조각의 영향이 다소 미친 것 같다.


서울 보타사의 금동보살좌상(관음불. 보물제1818호)도 반가좌의 자세를 하고 있는데

기림사의 이 불상은 반가좌의 자세가 특이하다.  

반가좌의 자세를 한 기림사의 이 보살상은 밑으로 내린 오른쪽 다리 무릎 위에 오른손을 얹고,

왼손은 몸 뒤로 돌려 대좌를 짚고 있다. 머리에는 상투를 올리고,

따로 만든 보관을 썼는데 보관은 2단으로 나누어진 표면에 보상무늬를 돋을새김했다.

둥근 얼굴에 꽃 모양의 귀걸이를 달고 어깨에는 삼각건 모양의 두꺼운 천의를 걸치고 있다.

가슴에는 3가닥의 장식이 달린 목걸이를 하고, 군의를 가슴까지 올려 입었는데

군의를 묶는 띠의 매듭이 독특하게 처리되어 있다.

옷 주름은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표현되었으나 다리나 배에 옷을 밀착시켜

옷 주름을 생략하고 밑부분에 주름이 몰리도록 하여 신체의 양감을 강조했다.

다리 밑으로 무겁게 늘어진 옷자락은 3~4개의 주름을 형성하고 있는데, 약간 형식화된 면도 보인다.

 

이 보살상은 세부까지 그 새김이 매우 정교하나 전체비례로 보아

비만 한 얼굴과 몸보다 손과 발이 지나치게 작아 불균형을 이룬다.

그리고 턱이 짧고 살찐 얼굴에 쌍꺼풀진 눈과 작은 입 등이 어울려 세속적인 느낌을 강하게 준다.

이러한 얼굴 모습이나 비만 한 신체는 명나라 조각상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요소로서

조선 초기의 다른 상들과 비교해 이색적인 모습이다.

    기림사의 건칠보살좌상은 연대가 확실한 조선 초기 상으로서

양식은 고려 말기와 연결되면서도 조선 시대의 새로운 요소를 보여주는 중요한 상이다.   



범종각이다. 종각 앞에는 배롱나무가 서 있다. 꽃피는 철이였다면 멋진 풍광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매월당(김시습)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