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2019. 6. 12. 00:15문화재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唐津安國寺址石造如來三尊立像)

 

보물 제100호로 지정된 당진 석조여래삼존입상과

 보물 제101호일 석탑이 있는 안국사지의 안국사(安國寺)는 창건연대와 창건자는 미상이나

신증동국여지승람해미현조에 보면 안국산에 안국사가 있다라는 기록이 나와 있다.

 창건연대는 문헌에 나타나 있지 않아 분명치 않으나 백제 말엽 창건되어

 고려 시대에 번창한 대사찰로 추측되지만, 언제 폐사되었는지 알 수 없으며,

석불, 석탑, 석축, 배바위돌 하수구 등이 현존하여 사찰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다만 이곳에서 출토된 금동불소상(金銅佛小像)

석불입상(石佛立像) 등의 유물들을 통해서 추측하는 것은

출토된 유물들이 고려 시대의 작품인 것으로 보아 고려 때의 창건 사찰로 보인다.

 

 

 

이 절의 폐사연대 또한 알려지지 않았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해미현조(海美縣條)

안국산에 사찰이 있는데, 안국사라 부른다고 한 것으로 보아

1531년까지 절이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 뒤 폐사되었고,

1929년에는 주지 임용준(任龍準)이 옛터에 다시 중창하였으나 얼마 뒤 다시 폐사되었다.

 현재 매향암각 뒤편 언덕에 편액이 붙지 않은 두 개의 전각이 있으며,

법당 안에는 산신과 지장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안국사지에 현존하는 문화재로는 보물 제100호인 안국사지 석불입상(安國寺址石佛立像)

 보물 제101호인 안국사지석탑이 있다.

석불 3구가 한 줄로 서 있는 석불입상은 본존불이 네모진 돌로 된 보관을 쓰고 있어

안국미륵 또는 갓 쓴 바위라고도 불리는 특이한 모습이다.

이 밖에도 미륵불 입상 뒤에 배바위 매향암각이라 불리는 큰 바위가 있고,

바위에는 餘美北天口(여미북천구)’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서

여미현(餘美縣: 지금의 당진시 일부) 근처에서 이 절이 명찰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현지 안내문

안국사지 석불입상의 조성 시기는 2003년 시·발굴 조사 시

 출조된 태평(중국 요나라의 성종 대 연호 太平으로 추정)으로 보아

고려 현종 12~21(1021~1030)으로 추정된다.

중앙의 본존불은 얼굴과 몸이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다.

사각형에 가까운 넓적한 얼굴 모습은 형식적으로 표현되었으며,

머리 위에 쓴 원통형의 관 위에는

사각형의 보개가 얹혀 있으나 너무 커서 불안정한 느낌을 준다.

몸에 붙여 조각한 두 광은 너무 길고 빈약하며 수법 또한 소박하다.

·우에 있는 두 협시보살도 본존불과 같은 양식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형태의 불상은 고려 시대 충청도 지방에서 많이 나타나던 양식으로

 매우 형식화되고 제작기술이 쇠퇴한 지방적인 특색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은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 안국사지에 있는

 고려 시대의 불상으로 보물 제100호로 지정되어 있다.

본존불의 높이는 580, 우협시 보살상은 높이는 323,

좌협시 보살상의 높이는 292로 안국사지 경내에 있다.

석조여래삼존입상은 무릎 아랫부분이 매몰되어 있었으나

2004년 충청남도 역사문화원의 발굴조사를 통해 불상의 발과 대좌가 모두 확인되었다.

 

 

중앙의 본존불상은 머리와 신체가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대형 석불입상이다.

머리 위에는 화불이 장식된 보관을 착용하고 있으며 보관 위에 방형의 보개(寶蓋)가 있다.

 

 

 

 본존불상의 이마에는 백호가 있는데 백호 위에 또 다른 원형의 구멍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상호는 턱 부분에 약간 살이 올라있으며 눈··입 등이 얼굴 중앙에 몰려 있다.

귀는 어깨까지 길게 흘러내렸고 목은 짧으며 삼도는 없다.

왼손은 엄지와 검지를 맞댄 채 복부에 있다.

오른손은 엄지와 검지를 붙이고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게 하여 가슴에 대고 있다.

 

 

 

 

 

본존불상의 발 부분은 별도의 석재에 발가락을 표현하여 조성하였다.

발의 길이는 40이며 개태사 석조삼존불 입상의 발과 유사한 상자 모양이다.

 본존불상의 대좌는 3m가 넘는 자연 암반의 상면에 방형의 대좌를 선각의 방식으로 조성하였다.

 

 

(우협시)

우협시 보살상은 머리에 인동당초문 형태의 초문(草紋)이 장식된 비교적 높은 보관을 쓰고 있다.

이마에는 백호가 있으며 이마와 보관 사이에는 반원형의 머리카락이 촘촘히 새겨져 있다.

 상호는 눈··입 등이 오밀조밀하게 표현되어 얼굴 중앙에 몰려 있다.

귀는 긴 편이며 귀 가운데를 한 가닥의 보발이 가로질러 귓불 부분으로 내려오고 있다.

목에는 삼도가 보이며 삼도의 아랫부분에는 목걸이 장식이 있다.

법의는 우견편단이며 양 팔뚝에 팔찌(腕釧)가 새겨져 있다.

수인은 양손 모두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한 채

오른손은 가슴 부분에 부착하고 있고 왼손은 배 부분에 대고 있다.

 

 

 

 

 

우협시 보살상의 대좌는 원형이며 대좌 상면에는 발이 조각되어 있다.

대좌의 지름은 130, 두께는 33이다.

 

 

(좌협시)

좌협시 보살상은 머리 부분이 파손되어있으며 현재 파손된 보관만이 몸통 위에 놓여 있다.

좌협시 보살상의 복부에는 리본 형태의 띠 매듭이 새겨져 있다.

좌협시 보살상의 모습은 수인의 손 위치가 다른 것 외에는

전체적으로 우협시 보살상과 같은 모습이다.

 

 

 

 

좌협시 보살상의 대좌는 평면 방형이며 대좌의 크기는 90, 두께는 43m이다.

 

신체가 석주형(石柱形)의 모습을 보이는 불상은 경기 남부와 충청도에서 고려 전기에 주로 유행하였다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이 대표적이며

그외에 이천 어석리 석불입상, 안성 매석리석불입상, 충주 미륵리 석불여래입상,

예산 삽교읍 석조보살입상 등이 있다.

이는 고려 전기 경기 남부, 충청 지방에서 유행하였던

지방 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석주형 석조보살입상이다.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은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명문 기와와 막새기와를 통해 조성 시기를 유추할 수 있다.

2004년 실시된 발굴조사에서는 태평십(太平十)’명 명문 기와가 출토되었다.

발굴단은 이 시기를 요()의 성종(1021~1030) 연간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태평십1030(현종 21)임을 밝혔다.

 안국사지에서는 막새 기와가 단일 종류의 것만이 출토되고 있어

 태평십명 기와를 안국사 창건기의 기와로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석조여래삼존입상 역시 이 시기에 조성된 불상으로 여겨진다.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에서 주목되는 형식적 특징은

 본존불상이 방형의 보개를 착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면류관 형태의 방형 보개는 고려 광종 대 조성된 불상에서 처음 등장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안성 매산리 석조보살입상, 논산 관촉사 석조보살입상,

부여 대조사 석조보살입상을 들 수 있다.

 

 

 

면류관 형태의 방형 보개를 착용하고 있는 불상의 조성 배경은

 황즉불(皇卽佛)’ 사상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의 경우 광종 대

조성된 면류관 형태의 방형 보개를 착용한 불상보다 형식화되어있는데,

 불상이 제작된 11세기 전반에도 고려는 여전히 황제국 체제를 표방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의 조성 배경에도 황즉불사상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안국사지의 석조여래삼존입상은 고려 시대 충청도 지방에서 유행하던

괴체화한 불상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보물 제96)과 함께 주목된다.

 

 

 

 

 

 

 

 

 

 

 

<당진석조여래삼존입상의 본존불과 같이 보개를 착용하고 있는 사례는 현재까지 80여 기가 발견되어 있다.

 보개의 형태는 사각, 육각, 팔각, 원형이 있으며, 그중 가장 많이 알려진 몇 기를 소개한다.>

1)안성 매산리 석불: 경기도유형문화재37호 고려전기 작, 사각보개

2)논산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국보323, 968년 고려전기. 사각보개

3)부여 대조사: 보물 제217호 고려전기로 추정. 사각보개

4)파주 용암사 쌍미륵불입상: 보물 제93호 고려전기 11세기 초, 사각과 원형보개

5)충주 미륵대원지 (미륵리석불입상): 보물제96. 고려전기. 팔각형보개

6)충남 예산 삽교읍석조보살입상: 보물 제508. 고려전기. 육각형보개.

 

 

 

 

 

당진 안국사지 매향암각 (唐津 安國寺地 埋香岩刻)

충청남도 기념물 제163호로 지정되어 있다.

암각문 크기는 높이 2.93m, 길이 13.35m, 2.5m이다.

매향(埋香)이란 미래에 하생할 미륵불의 용화회에 공양할 침향을 마련하는 신앙 활동이다.

연해의 지방민들이 매향을 행하고

이를 바위나 비석에 기록한 것이 매향 암각(岩刻)과 매향비(埋香碑).

당진의 안국사지 석조삼존불입상(보물 제100) 뒤편에 배바위라고 불리는 큰 바위다.

 

 이 바위 전면의 양 측면에는 시대를 달리하는 매향 사실이 음각되어 있다.

배바위 오른쪽에는 경술십월일 염솔서촌출포 목향매치(庚戌十月日 鹽率西村出浦 木香埋置)’라는 명문이 있다.

배바위 왼쪽에는 경오이월일 여미북천구 포동제매향 일구 화주각선 결원향도

(庚午二月日 余美北天口 浦東際埋香 一丘 化主覺先 結願香徒)’라는 내용이 음각되어 있다.

매향 암각문 중 경오년의 연대에 대해서는 고려 전기로 보는 견해와 고려 후기로 보는 견해가 있다.

고려 전기로 보는 견해는 경오년을 970(광종 21) 혹은 1030(현종 21)으로 추정한다.

이에 반해 고려 후기로 보는 견해는 경오년을 1270(원종 11), 1330(충혜왕 1), 1390(공양왕 2) 중 하나로 상정하고 있다.

 

 

배바위란 이름은 바위의 모양이 배를 닮은 데서 유래했다.

그리고 이 바위에 연계되어 미륵불상 등 불상 세 기가 서 있다고 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소망하는 바를 기원하였다.

특히 자손이 없는 사람이 이 바위에 와서 자식을 빌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하여 자식 없는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득자(得子) 성취를 위해 기자(祈子) 기도를 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돌을 미륵불상의 머리에 던지기도 하였다.

 만일 이 돌이 미륵불상의 머리 위에서 멈추면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전각 편액은 없지만 법당 안에 산신을 모셨으니 산신각이다.

 

 

산신

 

 

 

 

 

 

 

지장보살과 시왕탱

 

 

석조여래삼존입상의 맞은 편에 조성된 바위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