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제124호 경주 남산동 동·서 삼층석탑

2019. 5. 21. 21:50문화재

보물 제124호 경주 남산동 동·서 삼층석탑(慶州南山洞東西三層石塔)

 

서라벌 남쪽에 자리 잡은 경주 남산(南山)은 길이가 약 8km 되고

동서의 너비는 4km가량 되는데, 높이가 468m의 금오봉(金鰲峯)

494m의 고위봉(高位峯)의 두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이 두 봉우리에서 뻗어내린 산발과 흘러내리는 계곡을 합쳐서 남산(南山)이라 부른다.

남산은 신라시대 불교 유적의 보고(寶庫)7세기 초를 시작으로

신라가 국운을 다하는 10세기 초엽까지 끊임없이 사원이 건립되었던 곳으로

절들은 별처럼 총총히 세워졌고, 층층의 탑들은 기러기떼 날 듯이 줄지었다.

 (寺寺星張塔塔雁行)삼국유사의 기록에 나오듯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으로도 대부분 무너진 절터와 석탑 그리고 석불만을 남기고 있지만,

무려 300곳이나 된다. 이번 경주 남산 투어는 짧은 일정이라 몇 곳만 선정하여 둘러 보았다.

 그 첫 번째 코스가 국보로 지정된 사방불이 있는 칠불암인데,

그 칠불암 가는 길목 두 곳에 동서3층석탑이 있다.

한 곳은 남산사지이고, 다른 하나는 전()염불사지이다.

먼저 남산사지의 동서3층석탑을 포스팅한다.

 

 

 

 

(동탑) 

이 탑은 통일신라 시대인 9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처럼 형식을 달리하는 두 탑이 동서로 마주 보고 서 있다.

 높이는 동탑이 7.04m, 서탑이 5.85m로 차이가 있다.

동탑은 3층인데,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模塼石塔) 양식으로,

 바닥 돌 위에 돌덩이 여덟 개로 어긋물리게 기단을 쌓고

층마다 몸체 돌 하나에 지붕돌 하나씩을 얹었다.

지붕돌은 벽돌을 쌓아 만든 것처럼 처마 밑과 지붕 위의 받침이 각각 5단이다.

 

 

 

 

 

@보물 제124호로 지정된 남산사지의 <남산동 동서3층석탑>

동탑(東塔)은 넓은 2중의 지대석 위에 잘 다듬어진 8개의 기단석을

커다란 괴체형(塊體形: 덩어리 모양)으로 처리하여 입방체의 단층 기단을 형성하였다.

기단의 윗면에는 3단의 각형(角形) 굄을 마련하여 탑신부를 받치게 하였다.

 

 

 

 

3층의 탑신부는 옥신(屋身)과 옥개석(屋蓋石)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으며,

특히 옥신 부분에는 우주(隅柱)의 모각이 없다.

옥개석의 받침은 초층에서부터 5·5·4단이고 낙수면은 일반 석탑양식과는 달리

 초층에서부터 7·6·5단의 층을 형성하였다. 상륜부는 노반만 남았을 뿐 나머지는 없어졌다.

석탑의 구조는 중층(重層)에 체감을 보이는 일반형 석탑과 동일하나,

기단과 옥신·옥개 등의 수법에 변화를 나타낸 특수형식이다.

 

 

 

 

 

 

서탑(西塔)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를 세운 전형적인 신라 양식의 석탑으로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를 형성하였으나, 상륜부는 노반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없어졌다.

하층 기단은 하대저석(下臺底石)과 중석(中石)을 같은 돌 4매로 구성하였으며,

하대 갑석 역시 4매 석으로 윗면에 상층기단 중석의 받침굄을 표현하였다.

상층기단의 중석은 4매 석으로 구성되어 중간의 탱주 1주로 구획되어,

각 면 2구씩 모두 8구의 팔부중(八部衆)을 부조로써 나타내었다.

석탑 외호의 의미를 지닌 팔부중은 주로 신라 중대 이후에 등장하는 드문 조각으로서,

 이 석탑의 연대와 함께 팔부중 조각의 양식계보 설정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서탑) 

팔부중은 모두 좌상으로서

삼두팔비(三頭八臂: 머리가 셋이고 팔이 여덟인 모습)의 아수라상(阿修羅像)이라든지,

 뱀관을 쓰고 있는 마후라상(摩喉羅像) 등이며,

이들은 입에 염주를 물었거나 손에 여의주·금강저를 든 모습 또는 합장한 모습 등이다.

 

 

상층기단 갑석의 부연은 1단이며, 그 윗면 탑신부에는 각형의 옥신 받침을 2단으로 나타내었다.

 갑석은 2매의 판석으로 형성되었다.

탑신부는 옥신과 옥개석이 모두 1매씩으로 되었고 각 층의 체감 역시 좋은 편이다.

옥신에는 각 층에 우주를 모각하였을 뿐 다른 장식은 없다.

 

 

 

 

옥개석은 층급이 각 5단이며 반전은 완만하게 표현되었다.

이들 두 탑은 그 형태가 다른 것이 특징인데, 신라 통일기의 동서쌍탑은 대체로 동일양식을 가지는 것이지만

이와 같은 특이한 형식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동탑의 건립 역시 서탑의 상층기단에 나타난 조각상의 형식에 준하는 9세기경으로 추정된다.

 

 

 

 

 

남산사지에 관한 정확한 절 이름은 알 길이 없으나,

 동국여지승람의 남산사(南山寺),

 삼국유사의 남산 동쪽에 양피사(讓避寺) 등의 사찰 이름이 나와 있지만

 확실한 고증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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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서탑의 팔부신장이 마모가 심하여 판독이 어려웠는데 인터넷에 올라온 그림과 해설이 있어 이해를 돕고자 옮겨본다.

 

@남면(南面)에는 아수라(阿修羅)와 건달파(乾闥婆)가 있는데 아수라(阿修羅)3면팔비(面八臂)의 특징이 있고

 건달파(乾闥婆)는 사자탈을 머리에 쓰고 있다

 

 

@동면(東面)은 야차(夜叉)와 용()인데 야차(夜叉)는 성난 얼굴을 하고 있고

 용 ()은 머리에 용()을 두르고 왼손에 보주(寶珠)를 들고 있다

 

 

 

@북면(北面)에는 긴나라(緊那羅)와 마후라가(摩候羅伽)이다.

긴나라(緊那羅)는 머리 양쪽에 말과 소머리가 달려 있고

 마후라가(摩候羅伽)는 머리위로 뱀이 둘려져 있다

 

 

 

@서면(西面)에는 천()과 가루라(迦樓羅)가 있는데 천()은 금강저(金剛杵)를 들고 있고

가루라(迦樓羅)는 새의 부리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천룡팔부 조각이 처음 나타나는 것은 신라 중대이다.

8세기경 건립된 석탑 기단부 면석에 각 2구씩 8구의 팔부중을 조각하기 시작한 이후

 나말려초까지 숫적으로 많지는 않지만 경주를 중심으로 각지의 석탑에 천룡팔부가 새겨졌다.

경우에 따라 석탑 초층에는 사천왕이, 하층 기단에는 12지신이나 천인이 조각되어서

석탑 전체가 불교의 계위를 충실히 따랐음을 알려준다.

신라의 천룡팔부는 현재 전해지는 중국의 팔부중과 도상적으로나 양식적으로 일치하지 않으며,

같은 시기 일본의 팔부중과는 유사점이 보인다는데 특징이 있다.

~출처: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