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 30. 18:03ㆍ국내 명산과 사찰
소백산 비로사 (제1부)
당일치기로 소백산을 산행을 하다보면 산악회가 선호하는 들머리나 날머리는
언제나 희방사가 아니면 비로사였다. 그러나 1439m의 소백산 비로봉을 타고 내려오면서
사찰을 둘러보기는 산악회에서 정해진 귀경 시간대도 그렇고,
지친 몸으로 사찰 탐방하기는 무리였기에 지금까지 건성으로 일주문 정도만 삘끔 보는 정도였다.
이번 여행은 산행은 하지 않고 대신 의상대사와 연관된 초암사와 성혈사, 비로사와
희방사를 둘러보기로 했는데 이것도 시간이 빠듯하여, 두 사찰은 다음번 기회로 미루고
비로사와 희방사만 둘러 보았다. 첫 번째 찾은 비로사는 1,2부로 나누어 먼저 포스팅한다.
@소백산 비로사(毘盧寺)는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소백산 비로봉 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신라 문무왕(재위:661~681년) 때 의상대사(義湘大師:625~702년))가 창건했다는 설도 있고,
신라 신문왕(?~692년) 때 승려 진정(眞定)이 지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 창건 설화에 따르면
『가난으로 인하여 장가도 들지 못한 채 홀어머니를 봉양하던 진정은
의상(義湘)이 태백산에서 많은 사람을 교화한다는 소문을 듣고 출가하여
의상의 문하에서 화엄학을 공부하였다. 3년 뒤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7일 동안 선정(禪定)에 들었다가 그 소식을 의상에게 전하였다.
진정의 지극한 효성에 감동한 의상은 그의 어머니를 위하여 문도를 거느리고
소백산 추동(錐洞)으로 가서 초가를 짓고 제자 3,000명을 모아 90일 동안 『화엄경』을 강의하였다.
강의가 끝나자 그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 “나는 벌써 하늘에 환생(還生)했다.”라고 하였다 한다.』
학계에서는 이때의 소백산 추동이 비로사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비로사사적기」에는 의상이 683년(신문왕 3)에 이 절을 새로 세우고 비로사라고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신라 말에 이 절은 중창되고 신라말 고려 초기 활동한 고승 진공대사(眞空大師:855~937년)가 머물렀는데,
고려 태조가 이곳에 와서 진공대사의 법문을 듣고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
태조 20년(937년)에 진공이 사망하자 태조가 직접 진공대사(眞空大師)라는 시호와
보법(普法)이라는 탑호(塔號)를 내려주었다.
이때 최언위가 글을 지어 세운 진공대사 탑비가 남아 있어 영주시 지방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찰변천내역으로 보면,
1126년(인종 4)에는 왕이 김부식(金富軾)에게 불아(佛牙)를 이 절에 봉안하도록 하였고,
1385년(우왕 11)에는 환암(幻庵)이 중창하였다.
세조 때에는 복전(福田) 5명을 두어 『화엄경』을 강의하게 하였고
1469년(예종 1)에는 김수온(金守溫)이 왕실의 복을 비는 도량으로 삼았다.
그 후 임진왜란의 병화로 인해 석불상(石佛像) 2구만이 남고 모두 불타버렸으며,
광해군 1년(1609년) 왕명으로 중창되고,
1684년(숙종 10)에 월하(月河)가 법당과 산신각 등 40여 칸을 중창하였다.
대한 융희 1년(1907년)에 법당을 제외한 모든 건물과 사지(寺誌)가 화재로 소실되었다.
1919년에 주지 범선(泛船)이 법당을 중수하였고,
1927년에는 요사를 중건하였으며, 1932년에 다시 법당을 중수하였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공비토벌로 인한 화재로 전소되고,
1994년 불사를 새로 일으켜 적광전을 비롯하여 금당과 요사채 등을 지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 절은 계단식으로 된 전형적인 산간사찰(山間寺刹)로서 현존하는 당우로는
적광전, 삼성각, 나한전, 염불당 등이 주요 금당이다,
그 외에 범종각, 월명루, 반야실, 망월당 등이 있으며,
문화재로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호인 진공대사보법탑비(眞空大師普法塔碑)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호인 영주삼가동석조당간지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36호 아미타불 후불탱화 그리고 보물 제996호인
영주비로사아미타불좌상 및 비로자나불좌상 등 신라 말 고려 초의 중요한 유물들이 남아 있다.
@영주 삼가동 석조당간지주(榮州 三街洞 石造幢竿支柱)로 알려진 이 비로사의 당간은
1972년 12월 29일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다.
이 당간지주는 비로사로 올라가는 언덕 왼편의 높은 지대에 서 있다.
서로 마주 보는 두 기둥의 안쪽면은 평평하며,
맨 위와 가운데에 각각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네모난 홈을 두었다.
바깥면은 아랫부분과 윗부분 일부에 넓게 면을 깎아두어 굴곡을 만들었고,
앞뒷면은 바깥둘레로 도드라지게 띠를 새겨 그 가운데에 세로 선을 하나씩 더 두었다.
꼭대기는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2단의 굴곡을 주면서 둥글게 깎아 놓았다.
기둥 사이에는 당간의 받침돌이 남아 있는데, 그 윗면에 당간을 꽂아두던 구멍이 뚫려 있다.
규모나 장식기법 등으로 보아 비로사의 창건시기와 비슷한 통일신라 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주변의 밭에서 많은 기왓조각들이 발견되고 있어 옛 비로사의 규모를 확인시켜주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비로사진공대사보법탑비(毘盧寺眞空大師普法塔碑)
경상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된 비로사 진공대사 탑비는
고려 태조 22년(939)에 건립되었다.
비신의 높이는 173㎝, 너비는 102㎝, 두께는 22㎝이며,
비신(碑身)은 절단되어 상·하부의 일부가 결실되었다.
진공대사(眞空大師:855~937년)는 경주 출신으로 성은 김씨이다.
일찍이 가야산 선융(善融)의 제자가 되었으며, 20세 때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소백산에 절을 짓고 주지로 있다가
태조 20년(937) 9월 문인에게 유계(遺誡)를 알리면서 입적하였다.
이에 태조는 ‘진공대사’라는 시호를 주고 ‘보법(普法)’이라는 탑 명을 내렸다.
비문은 최언위(崔彦撝)가 짓고, 글씨는 자경(字徑) 2㎝의 구양순체(歐陽詢體) 해서로 이환추(李桓樞)가 썼다.
비음(碑陰)에는 진공의 유계를 새겼는데 역시 구양순체의 해서이다.
이수(螭首) 가운데의 ‘故眞空大師碑(고진공대사비)’라는 전액도 이환추가 썼다.
그런데 비문 가운데 보이는 ‘청구(靑丘)’라는 구절은 조선의 별칭으로서,
이 비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고 있음이 주목된다.
귀부(龜趺)는 조각 수법이 둔중하고 새김이 얕으며 등에는 낮은 비좌(碑座)가 있고,
이수(螭首)는 산모양으로 도식화된 운룡문(雲龍文)이 얕게 새겨져 있다.
특히 비신(碑身)의 뒷면에 입적할 때의 유계(遺誡)를 새긴 것이 특징이다.
#비로사의 탑비는 2곳에 있는 데 그중 하나인 원주 홍법사지에서 발견된 태조 23년(940)에 건립된
진공대사탑 및 석관은 보물 제365호 지정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석등>
화사석과 상대석은 없어지고 지붕돌과 간주석(중대석), 하대석과 지대석만 남았다.
조성 시기는 자료가 없어 알 수 없다.(석등에 대한 아래사진참조)
범종각
월명루다. 전면 3칸, 측면 2칸으로 다포식 맞배지붕인 2층 누각이다.
일반 사찰의 만세루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소백산 기슭에 자리한 사찰이라 풍월음미 하는 가람임을 암시하고 있다.
보련당은 승방및 요사채로 이용되고 있는 모양이다.
보련당 뒤편에 염불당이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보련당과 그 뒤 염불당이 보인다.
적광전 앞에 세워진 묘한 석탑이 눈길을 끈다.
탑의 정형적인 구조로 본다면 기단부, 탑신부의 옥개석과 탑신, 상륜부가 완전 제각각이다.
마치 짜집기한 듯한 석탑이다.
돌아 부조된 문양으로만 보면 고려중기 작품으로 보이는데 자료가 없어 확인되지 않는다.
<적광전(寂光殿)>
이번 비로사 탐방의 주요 핵심은 바로 적광전의 아미타불 좌상을 보는 것이었다.
비로자나불의 수인인 대개가 지권인인데 반하여,
여러 사찰에서 아미타불의 좌상은 많이 보았지만
비로사의 아미타불의 수인이 보기드문 미타정인이었기 때문이다.
적광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다포식 맞배지붕이다.
법당 안에는 보물 제996호인 아미타불상과 비로자나불상을 보유하고 있다.
아미타 불상은 높이가 113cm이며, 비로자나불상은 117.5cm이다.
조성 시기는 통일신라 시대로, 2기의 이 불상은 9세기
신라 후기의 화엄불교 미술 특징을 보여주는 문화재로 평가되고 있다.
9세기 후기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 비로자나불상과 아미타 불상은 현재 법당 안에 있지만,
광배(光背)는 깨어진 채 요사채의 우물가에 있으며,
대좌(臺座)는 법당 앞뜰에 놓여 있다.
그러나 현재 대좌 1구, 광배 1구가 있어 비로자나불상만은 복원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불병좌상(二佛並坐像)은 중국에서는 북위시대, 특히 5, 6세기에 크게 유행하였으나,
우리나라에는 그 예가 많지 않다.
이 작품 외에는 괴산 원풍리 석조마애불좌상(보물97호),
전대전사 출토 금동이불병좌상(傳大典寺出土金銅二佛幷坐像)이 있고,
벽화로는 통도사 영산전의 견보탑품변상(見寶塔品變相) 등이 있을 뿐이다.
불상 뒤 탱화는 아미타불후불탱화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36호로 지정되어 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의 불상 높이는 115cm, 불두 높이는 41.5cm, 어깨 폭은 57cm, 무릎 폭은 84cm이다.
아미타불의 수인(手印)은 미타정인(彌陀定印)이고, 비로자나불은 지권인(智拳印)이다.
아미타불과 비로자나불은 두 여래가 같은 길상좌(吉祥坐)의 가부좌(跏趺坐)를 하고 있다.
미타정인은 아미타불이 나타내는 여러 수인 중 하나로, 묘관찰지정인(妙觀察智定印)이라고도 한다.
법계정인(法界定印), 즉 선정인(禪定印)이 약간 변형된 수인이다.
왼쪽 손바닥을 위로 보이게 펴서 단전 앞에 붙이고
오른손 역시 손바닥을 위로 보이게 펴서 왼쪽 손바닥 위에 포갠 상태에서
양쪽 엄지를 맞닿게 하는 선정인 자세에서 양쪽 검지를 구부려 맞닿게 하면 된다.
아미타불의 수인은 9품인(九品印)으로 나뉘며 이를 아미타여래 9품인 이라고 하는데,
서방 극락정토에 태어나고자 하는 중생을 행업의 정도에 따라
상품(上品)·중품(中品)·하품(下品)의 3품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상생(上生)·중생(中生)·하생(下生)의 3생으로 세분하여
① 상품상생 ② 상품중생 ③ 상품하생 ④ 중품상생 ⑤ 중품중생 ⑥ 중품하생
⑦ 하품상생 ⑧ 하품중생 ⑨ 하품하생의 9단계 수인으로 나타낸 것이다.
9품인으로 보면 미타정인은 상풍상생인에서 조금 변형된 것이 된다.
《무량수경(無量壽經)》에 따르면 3생 중 상생은 출가하여
보리심을 내고 전심으로 무량수불을 염하면서 공덕을 닦아 제 나라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자들이고,
중생은 출가하지 않았더라도 무상보리의 마음으로 무량수불을 염하고
다소의 선을 닦아 계를 지키며 삼보(三寶)와 중생에게 공양함으로써
자기가 닦은 공덕을 다른 대상에게 돌려 제 나라에 태어나고자 하는 자들이다.
또한, 하생은 설사 공덕을 쌓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무상보리의 마음을 내어
전심으로 무량수불을 염하면서 제 나라에 태어나고자 하는 자들이다.
@비로자나불
비로자나불상 높이는 112cm, 불두는 41cm, 어깨 폭은 53cm, 무릎 폭은 83.5cm,
대좌 폭은 106cm이며
수인(手印)은 지권인(智拳印)이다. 길상좌의 가부좌를 하고 있다.
@지권인(智拳印)은 이(理)와 지(智), 중생과 부처,
미혹함과 깨달음이 원래는 하나라는 뜻의 수인으로 보리인(菩提印), 각승인(覺勝印)이라고도 한다.
이 수인은 금강정경(金剛頂經)에 기초를 둔 것으로
주로 밀교계의 대일여래가 취하는 것이나
우리나라에서는 화엄종의 주존인 비로자나불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오른손으로 왼손의 둘째손가락 윗부분을 감싸는 형태를 취하는데
고려 말기부터는 이 지권인이 변형되어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싼 모습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비로사 비로자나불의 수인은 전자에 해당하다.
지권인이 상징하는 의미는 오른손은 부처님의 세계를 표현하고
왼손은 중생계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이와 같은 결인은 중생과 부처님이 하나임을 나타내고 있다.
#비로자나불은 대승불교에서는 〈화엄경〉에서 시방제불을 전체적으로 포괄하는 법신불로 등장한다.
밀교에서는 아득한 옛날에 부처가 되었다고 하는 5선정불의 중앙에 위치하는 부처로 보는 것이 보통이지만
비로자나불만을 따로 모시기도 한다.
회화에서 비로자나불은 흰색으로 채색되고 손은 설법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비로사의 아미타불과 비로자나불은 원래 호분으로 채색된 흰색이었는데 현재의 두 불상은 개금한 것이다.
#아미타후불탱화는
1832년에 제작되었으며,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36호로 지정되어 있다.
적광전의 신중탱화
~제2부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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