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4. 3. 23:22ㆍ국내 명산과 사찰
소백산 희방폭포와 희방사
희방사는 소백산국립공원 안에 있는 사찰이다.
소백산국립공원은 지리산, 설악산, 오대산에 이어 산악형 국립공원 가운데
네 번째로 넓은 명승지로, 해발 1,439.5m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국망봉(1,420.8m),
연화봉(1,383m), 도솔봉(1,314.2m) 등이 백두대간 마루금 상에 솟아있고,
봄이면 철쭉이 온산을 덮고, 겨울이면,
장중한 백두대간 위에 설화(雪花)가 장관을 이루는 곳이라
수많은 탐방객이 일 년 내내 끊어지지 않는 명승지다.
희방사는 국보급이나 보물급 문화재는 없지만,
소백산의 명성을 얻고 희방폭포와 함께 널리 잘 알려진 가람으로 소백산 연화봉 아래에 있다.
희방사 매표소를 지나 2~300m 정도 오르면 희방폭포가 있다.
높이 28m로 내륙지방에서 가장 큰 폭포로 알려져 있다.
여기도 가물어서 그런지, 철이 그래서 그런지,
수량(水量)이 적어 기대한 만큼 웅장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역시 폭포는 수량(水量)이 많아야 위용을 자랑한다.
폭포 위에는 멀리 구름다리가 보이고,
또 한 구비 오르면 고요한 정적 속에 희방사가 자리 잡고 있다.
@참고로 풍광이 뛰어나고 잘 알려진 폭포는 많이 있지만
본방에 포스팅한 일부만 소개하면, 설악산 비룡폭포(16m), 설악산 토왕폭포(상단 150m, 중단 80m, 하단 90m).
영동 옥계폭포(20m), 양산 홍룡폭포(상단24m, 중단 13.6m, 하단10m),
두타산 용추폭포, 구례 수락폭포(15m), 가평 등선폭포, 내연산 관음폭포와 12폭포,
가평 명지폭포, 철원 재인폭포와 삼부연폭포, 매월당폭포, 괴산 수옥폭포 등을 들 수 있다.
소백산 희방사(喜方寺)는 고대 삼국시대 신라 고승 두운(杜雲) 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두운 선사의 생몰(生歿)연대가 미상이라 희방사 창건 시기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
사찰안내서에 설명된 것을 보면 선덕여왕 12년(643년)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경북 예천군의 용문사 창건기록을 말해주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과
『김룡사본말사지(金龍寺本末寺誌)』에 의하면,
870년(경문왕 10)에 두운(杜雲)이 경북 예천 용문사(龍門寺)를 창건한 후
헌강왕 9년(883년)에는 소백산에 있는 희방사(喜方寺)를 창건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또 두운 선사가 헌강왕 원년(875년)에 경북 예천군 상리면 명봉리에 있는
명봉사(鳴鳳寺)를 창건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선덕여왕 12년(643년)에 창건했다는 설보다는 헌강왕 원년 창건설에 무게가 실린다.
창건 이후 기록은 알 수 없고, 1850년(철종 1) 화재로 소실되어
강월(江月) 대사와 혼허(渾虛)강백이 중창하였으나
1951년 6·25 동란 때 4동 20여 칸의 당우와 사찰에 보관되어오던
『월인석보』권1과 권2의 판본(版本)도 함께 소실되었다.
그러나 주존불(主尊佛)만은 무사하여 두운이 기거했다는 천연동굴 속에 봉안하였다가
1953년에 주지 안대근(安大根)이 중건한 뒤 대웅전에 봉안하였다.
소백산 희방사는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로 되어 있으며,
문화재로는 1742년(영조 18)에 제작된 동종(銅鐘)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26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전>
전면 3칸 측면 3칸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법당 안에는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문수와 보현보살을 모시고 있다. 석가모니불은 길상좌의 가부좌를 하고 있으며
촘촘한 나발(螺髮)에 육계가 선명하다.
협시불의 삼도는 선명한 데 반하여 본존불의 삼도는 보이지 않는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으며,
법의는 통견(通肩)으로 승각기 위에 <Ω>형으로 접혀있고,
소매 끝이 손목 위로 접혀져 있고 얼굴은 풍만함을 풍기면서
웃는 얼굴을 나타내고 있다.
두운 선사가 창건했다는 사찰은 모두 신비한 동물과 연관되어 있다.
예천 용문사는 바위 위에서 용이 두운 선사를 영접하였다 하여
그곳에 지은 절이 용문사(龍門寺)이며,
명봉사는 창건 당시 봉황이 울었다고 하여
사찰명을 명봉사(鳴鳳寺)로 하였는데 소백산 희방사는 호랑이가 창건설화 연관되어 있다.
전하는 호랑이에 얽힌 창건설화를 보면,
『두운은 태백산 심원암(深源庵)에서 이곳의 천연동굴로 옮겨 수도하던 중,
겨울밤에 호랑이가 찾아 들어 앞발을 들고 고개를 저으며 무엇인가를 호소하였다.
살펴보니 목에 여인의 비녀가 꽂혀 있었으므로 뽑아주었다.
그 뒤의 어느 날 소리가 나서 문을 열어보니 어여쁜 처녀가 호랑이 옆에 정신을 잃고 있었다.
처녀를 정성껏 간호하고 원기를 회복시킨 다음 사연을 물으니,
그녀는 계림(鷄林)의 호장(戶長) 유석(留石)의 무남독녀로서,
그날 혼인을 치르고 신방에 들려고 하는데 별안간 불이 번쩍하더니 몸이 공중에 떴고,
그 뒤 정신을 잃었다고 하였다. 두운은 굴속에 싸리나무 울타리를 만들어 따로 거처하며
겨울을 넘긴 뒤 처녀를 집으로 데리고 갔다.
유호장은 은혜에 보답하고자 동굴 앞에 절을 짓고 농토를 마련해주었으며,
무쇠로 수철교(水鐵橋)를 놓아 도를 닦는 데 어려움이 없게 하였다.』
이 전설에서 나온 동굴 앞 절이 바로 지금의 희방사라고 한다.
석가모니불
협시한 문수와 보현보살은 입상(立像)으로 허리가 길고
영락은 긴 물병처럼 단순하게 처리되고,
승각기 위로 덮인 천의(天衣)가 Ω형을 이루며 아래로 특이하게 교차되어 늘어져 있다.
또한, 문수와 보현 두 보살 모두 지물로 연꽃 봉오리만 들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보현보살
문수보살 신중탱은 예적금강을 상위에, 위태천을 중앙에 배치하고 신장들이 주위에 포진하는 형세다.
대웅전 앞에 있는 5층석탑은 기록이 없어 조성시기를 알 수 없다. 최근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삼성각>은 전면 3칸 측면 2칸 맞배지붕으로 법당에는 칠성, 산신, 독성이 모셔져 있다.
칠성탱
산신
칠성탱, 좌우에 일광월광보살이 협시하고 있는 탱이다. 칠성탱 앞에 두분의 석조 나한을 모셔 놓았다.
독성
지장전 가는 길은 극락교로 연결된다.
<지장전>은 전면 3칸, 측면 3칸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다.
동종(경북유형문화재 제226호)
1742년(영조 18) 제작. 총고 84cm, 종구경 57.5cm, 두께 1.5cm.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26호. 종정에 일체쌍두의 용뉴(龍鈕)를 갖추고 있고,
종신 외면에는 상대와 하대, 그리고 4개소에 방형의 유곽과 4구의 보살상을 배치하고 있으며,
또한 종복(鐘腹)에는 주조연대가 확실한 명문이 새겨져 있다.
동종의 하부 쪽에는 6개소에 명문이 주출(鑄出)되어 있는데,
주조연대·조성사찰·중량 그리고 주종에 관여한 사람들이 명기되어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乾隆七年壬戌五月日 忠淸道丹陽南面 小白山 大興寺大鍾三百斤入山中碩德
大禪師涵信 老德笠會 綠化秩 片手海哲 片手楚符
(건률7년임술오월일 충북 단양 남면 소백산 대흥사대종300근입산중석덕
대선사함신 노덕입회 녹화질 편수해철 편수초부)’라고 되어 있다.
이 기록에 의해 1742년에 충청북도 단양의 대흥사에서
편수(片手) 해철(海哲)·초부(楚符) 등에 의해 무게 300근의 동종이 주조되었는데,
대흥사가 폐사되면서 지금의 희방사로 옮겨온 것으로 본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조선 후기 동종에서 보이는 수법과 양식을 따르고 있다.
참고로 희방사에는 옛적에 동종이 하나 더 있었던 모양이다. 보물 제11-5로 지정된
사인비구 제작 동종-서울 화계사동종(思印比丘製作銅鍾-서울華溪寺銅鐘)인데,
전체 높이 97.4㎝, 입지름 67.6㎝로 청동으로 제작되고,
그 제작 시기는 1683년(숙종 9) 4월이다.
이 동종은 현재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리 삼각산에 있는 화계사 종각에 봉안되어 있지만,
원래는 경북 영주의 희방사에서 사용하던 동종임이 밝혀졌다.
1943년에 안진호가 편찬한 『화계사지(華溪寺誌)』에 따르면,
1897년(광무 원) 미황사의 운판과 함께 구입하였다고 한다.
또한, 종신에 기재된 주종기에 “강희 22년 계해 4월 일
경상도 풍기지 서면 소백산 희방사 대종 중삼백근 주성야 …
연화질 통정대부 화원 사인 담연 설옥 청윤 조신 후영
(康熙二十二年 癸亥四月日 慶尙道 豊基地 西面 小伯山 喜方寺 大鐘 重三百斤 鑄成也 …
緣化秩 通政大夫畵員思印 湛衍 雪玉 淸允 祖信 厚英)”이라 기록되어 있어,
1683년 4월 경상도 풍기(현재 경상북도 영주시) 소백산에 있는 희방사에 봉안하기 위해
수장(首匠) 사인(思印)의 지휘 아래에 보조 장인 담연(湛衍, 淡演), 설옥(雪玉), 청윤(淸允),
조신(祖信), 후영(厚英) 등 모두 6명의 주종장이 참여하여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 화계사에는 1898년 경상북도 풍기 희방사에서 옮겨온 대종 외에도 희방사에서 옮겨온 법고(法鼓)도 있다.
희방사 창건공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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