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 26. 20:52ㆍ국내 명산과 사찰
보물 제981호 하남 선법사의 태평2년명마애약사불좌상(太平興國銘磨崖佛坐像)
태평2년명마애약사불좌상(太平興國銘磨崖佛坐像)은 선법사에 있다.
선법사(善法寺)는 경기도 하남시 교산동에 자리한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로
창건 시기에 대해서는 전하는 기록이 없어 알려진 것은 없다.
다만 선법사에서 5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10세기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동사(桐寺)라는 절터가 있고,
선법사의 마애불에 태평 2년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마애약사여래좌상이 있어
이를 미루어보아 최소한 그 이전부터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따름이다.
일설로 고려 때 광주(廣州) 출신의
호족 왕규(王規:?~945년)의 도움을 받아 지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지만,
근거자료가 없다. 근세에 들어 1934년 승려 혜각(慧覺)이 절을 짓고
신광사(新光寺)라 했던 것을
1970년 범산(梵山) 스님이 선법사(善法寺)로 개명하였다는 것이 전부다.
현재 당우로는 1991년 범산 스님이 증축했다는 극락보전과 최근에 지은 삼성각.
그리고 요사채가 전부인 단출한 가람이다.
극락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다포게 팔작지붕이다.
1991년 범산스님이 증축, 옆에 삼성각은 근래에 지었다.
극락보전 법당은 아미타삼존불과 아미타탱을,
좌측에는 신중탱을, 우측에 지장보살과 지장탱을 모셨다.
법당에는 아미타삼존불을 모셨다.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신중탱
지장보살
삼성각
정면에 보이는 바위에 마애약사여래좌상이 있고, 그 아래 온조왕이 마셨다는 샘이 있다.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河南 校山洞 磨崖藥師如來坐像)은
경기도 하남시 교산동 선법사(善法寺)에 있는 고려 시대의 마애 약사여래 좌상이다.
1989년 4월 15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981호
태평2년명마애약사불좌상(太平興國銘磨崖佛坐像)으로 지정되었다.
마애약사불좌상이 부조된 바위의 왼쪽 면에
‘太平二年 丁丑 七月 二十九日(태평2년 정축7월 29일)’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어
만든 시기가 고려 경종 2년(977년)임을 알 수 있다.
태평은 태평흥국(太平興國)이란 연호(年號)인데
이는 북송(北宋)의 태종(太宗)인 조광의(趙匡義)의 치세에 쓰였던 첫 번째 연호(年號)로,
976년 12월에서 984년 11월까지 쓰였다. 이를 환산하면 우리나라 고려 경종 2년(977년)이 된다.
(보불제982호 이천태평흥국명마애보살좌상)
같은 연호로 조성된 이천시 마장면 장암리에 보물 제982호로 지정 있는
<이천 태평흥국명마애보살좌상(보물제982호)>이 있는 데
이 마애보살좌상은 태평흥국6년(981년: 고려 경종6)에 조성된 것이다.
이와 비교하면 하남의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은
4년이나 앞서 조성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천의 마애불좌상보다 거의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본방 이천태평흥국명마애불좌상 참조)
보물 제981호로 지정된 이 마애약사여래불좌상은 전체 높이가 93㎝이며, 불상의 높이 43㎝이다.
마애불로서는 큰 편은 아니지만, 광배(光背)와 대좌를 겸비한 보기 드문 불상이다.
조각술이 정교하고 불신의 비례도 훌륭하다.
이 불상의 제작 연대는 950년 이전일 것으로 추정된다.
머리의 육계(肉髻)는 작은 편이며, 미소를 띤 얼굴은 약간 통통하고 단정한 모습이다.
체구는 장대하고, 우견편단(右肩偏袒: 오른쪽 어깨가 드러남)으로 걸친 가사는 왼쪽 가슴에서 접혀져 있다.
이러한 불의(佛衣)는 고운사 석조석가여래좌상이나 충주 백운암 철재 여래좌상의 특징을 보여준다.
오른손은 가슴 위로 올라가 있고 손등이 밖으로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약사여래를 상징하는 약합(藥盒)을 들고 있다.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은 각각 삼중원으로 조성되어 있고,
광배(光背)는 마모가 심해 분명하지 않지만,
형태만 보면 삼중원 주위에는 화염문(火焰文: 불꽃무늬)으로 둘려져 있다.
대좌(臺座)의 상대(上臺)는 복판(複瓣: 겹잎)의 앙련좌(仰蓮座)를 이중의 대석이 받치고 있고,
중대(中臺)에는 안상(眼象)이 없이 네 개의 모서리 기둥[隅柱]으로 부조되어 있다.
하대(下臺)는 다시 이중의 대석과 단판의 복련좌(覆蓮座)가 새겨져 있다.
이 불상은 조각의 각명한 선이나 유려한 융기선의 옷 주름 등 고려 초의 희귀한 편년 자료로서,
한국 조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불상이 모셔져 있던 절은 알 수 없으나
근처에 넓은 절터(桐寺址)가 있으므로 이와 관련된 사찰일 수 있다.
또한, 지형으로 미루어보아 『동국여지승람』에 보이는 약정사(藥井寺)일 가능성도 있다.
태평2년명마애약사불좌상(太平興國銘磨崖佛坐像)은 제작 연대가 분명하여
고려 초기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온조왕은 기원전 18년에서 서기 28년에 재위한 백제의 제1대 국왕이다.
현존 문헌들에는 백제의 시조로 전하는 인물들이 온조, 비류(沸流), 구태(仇台) 등
여러 명이며, 온조는 그중의 하나다. 백제 초기에는 북쪽에서
한반도 중서부 일대에 남하한 부여족의 여러 집단이 연맹체를 결성하고 있었다.
그들 중 연맹체를 주도한 대세력으로는
먼저 미추홀(彌鄒忽: 현재의 인천 부근으로 추정)에 웅거한 집단이며,
뒤이어 패권을 잡은 것이 위례성(현재의 서울 風納土城 또는 경기도 廣州 부근으로 추정)의 집단이었다.
미추홀에서 일어난 집단의 시조로 전하는 것이 비류이고,
그 뒤에 권력을 장악한 위례성 집단의 시조가 바로 온조이다.
온조왕이 마셨다는 이 샘은 지역적으로는 연관 관계가 있으리라 추측할 수 있지만,
시대를 보면 거의 2000년을 거슬러 올라가니 신빙성이 희박하다.
다만 비록 역사는 없지만, 유서 깊은 고찰(古刹)임을 암시하는
아름다운 전설의 한 단편 이야기로 여기면 족할 것이다.
온조왕 샘에 대해서 설명을 하시는 고령의 선법사 주지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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