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기행) 천년의 불향기를 간직한 이천 태평흥국명마애보살좌상

2019. 3. 11. 21:04문화재

 

 

 

(이천기행) 천년의 불향기를 간직한 이천 태평흥국명마애보살좌상(太平興國銘磨崖菩薩坐像)

 

 

  이천 신흥사 신읍리 마애여래상을 탐방하고 돌아오는 길에

천년의 세월을 지탱해온 이천 마장면 장암리의 마애불을 보러 들렸다.

늦은 시간이고, 또한 흐린 날씨에다 주택가와는 멀리 떨어진 외진 밭 가운데 있어

내비게이터로 찾는 데 다소 어려움이 있었지만

 천년의 세월을 보낸 보물을 친견한다는 호기심을 떨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이 여래상보다 같은 지역 거의 같은 시기에,

정확히는 4년 전에 조성한 보물 제981호인 하남시 교산동 선불사에 있는

 <太平興國二年名磨崖藥師如來坐像(태평흥국2년명마애약사여래좌상) 에 비해

마모가 너무 심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기야 마애불을 새긴 석질도 같은 화강암이고,

시대도 겨우 4년 정도의 후대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천년의 세월을 보냈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

그나마 천년의 옛 향취를 느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느끼게 된다.

 

 

 

  

@태평흥국명마애보살좌상은

 원래는 이천 마장면 장암리 마애보살반가상(利川 長岩里 磨崖菩薩半跏像)으로 불리었던 마애불로,

19864월 이천시 향토문화제 제1호로 지정되었다가,

1989415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982

 <태평흥국명마애보살좌상(太平興國銘磨崖菩薩坐像)>으로 공식 명명되었다.

 

 

 

 

속칭 미륵바우라고 하는 커다란 화강암벽 전면에 걸쳐 얕게 돋을새김한 고려시대 마애보살상으로

전체 크기는 3.2m, 무릎 폭은 1.47m, 어깨 폭은 1.2m에 이른다.

미륵상 앞에는 2개의 석판이 놓여 있는데 이는 배례석(拜禮石)으로 보인다.

 

 

 

 

보살상이 조각된 바위 뒷면에 <太平興國六年辛巳十三日...> 라는 글이 음각되어 있어

서기로 환산해 보면 981(고려 경종 6)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태평흥국(太平興國)이란 연호(年號)는 북송(北宋)의 태종(太宗)

조광의(趙匡義)의 치세에 쓰였던 첫 번째 연호(年號),

97612월에서 98411월까지 쓰였다.

 

 

 

높은 관()을 쓴 이 보살상은 손에 연꽃을 들고 있으며,

넓은 이마와 두툼한 입술은 약간 둔한 느낌을 준다.

얼굴은 어깨와 바로 연결되어 있어 목이 거의 표현되지 않았다.

양어깨에는 희미하게 천의가 선각 되어 있고,

가슴까지 들어 올린 오른손에는 연꽃 가지를 쥐고 있다.

 

 

 

 

 

()에는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어 관음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보살은 반가상(半跏像)의 자세로 오른발은 내려 연꽃이 활짝 핀 모양의 대좌(臺座) 위에 놓고

 왼발은 오른쪽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얼굴과 신체는 전체적으로 큼직하며 비례가 맞지 않아 둔중한 느낌이 든다.

세부표현은 마멸로 인하여 상세하게 알 수 없다.

천여 년이 지났으니 돌인들 온전하겠느냐 하는 생각이 든다.

 

 

 

전반적으로 지방색이 짙은 둔탁한 조각 기술이지만,

양어깨를 감싸고 입은 천의(天衣), 높은 보관을 쓰고,

연꽃 가지를 손에 든 독특한 형식의 관음보살상으로

김천 감문면 광덕리 석조 보살입상(보물 제679)과 함께

 비교 연구해야 할 10세기의 중요한 조각이라 학계에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