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기행) 참 특이한 마애불 소고리마애여래좌상과 마애삼존석불

2019. 3. 18. 21:16문화재

 

 

 

 

(이천기행) 참 특이한 마애불  소고리마애여래좌상과 마애삼존석불

 

신라의 석불이 장엄하고 정밀하고, 또 신령스러움을 풍기고 있다고 한다면,

고려의 불상들, 특히 석불(石佛)들은 세속적이고,

투박하고, 희화적(戱畵的) 특징을 드러내는 것들이 많다.

이는 고려의 건국이 지방호족의 세력으로 이룩한 것이기 때문에

민초들의 애환이나 바램 등 지방화된 특색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마애불 역시 그러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소고리에 있는 마애여래불상과 마애여래삼존불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을 보고 호기심이 발동하여 처음 이 마애불을 찾아 나섰다가

길을 잘못 들어 포기하고 돌아왔는데 미련이 남아 다시 찾았다.

 

 

 

#소고리 마애여래좌상(所古里磨崖如來坐像)은 고려 전기작품으로,

현재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9호로 지정되어 있다.

불상의 높이는 4.7m. 소재지는, 지번으로는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소고리 117-5이며,

도로명은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공원로218번길 158-48이다.

 

 

이정표를 따라 소고리 마애불 입구에 다달으면 문관(文官)형상으로 만들어진 돌.

곧 문인석(文人石) 2기가 홀()을 쥐고 서 있다.

문인석은 일반적으로 왕이나 왕비의 무덤() 앞에 조성하는 데

소고리 마애여래상이 있는 입구를 지키고 있다.

 

 

 

 

 

 

사천왕상이나 금강역사라면 몰라도 사당(祠堂)도 아닌 이곳에 문인석을 모신 것은

아마도 무속인들과의 연관이 있었음을 의미하고 있다.

다시 말해 무속인들이 이 소고리 마애삼존불을

자신들이 섬기는 신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가 된다.

마애삼존불이 있는 곳에는 용신당이 조성되어 있고,

용신당 옆에는 샘까지 만들어 놓았으며 제단까지 조성해 놓은 것은

단적으로 이를 증명하는 그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위 사진에서 위쪽에 있는 바위에 마애여래상이 조성되어 있고,

그 아래 바위에 마애삼존불이 있다.

대개 같은 위치에 불상을 조성할 경우 동일한 방향을 주시하는 데 반하여

소고리 마애여래상과 마애삼존불은 등을 지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9호로 지정된 소고리 마애여래좌상은

마옥산(磨玉山) 기슭에 있는 커다란 바위의 한쪽 면을 조각하여 만든 불상이다.

 이 마애여래좌상은 얕게 돋을새김한 후 6개의 동심원으로 두광(頭光)을 조성하였다.

 

 

 

불상의 머리는 머리카락이 없는 소발(素髮)이며 육계가 큼직하게 솟아나 있다.

상호는 크게 만들어졌으며 음각 선으로 이목구비를 표현하였다.

불상의 턱은 이중으로 묘사되어 있어 살이 오른 모습이다.

목에는 삼도가 층단을 이루며 선명하게 조각되었다.

불상의 법의는 양쪽 어깨를 모두 덮는 통견 형태이다.

어깨에는 스카프처럼 어깨 뒤쪽으로 넘어가는 옷자락이 표현되었다.

옷 주름은 조밀한 음각선으로 옷 전체에 걸쳐 촘촘하게 표현하였다.

결가부좌한 다리 밑에는 대좌가 있으며 앙련(仰蓮)의 연화문이 조식 되어있다.

 

 

 

@민머리 위에는 큼직한 머리 묶음이 솟아 있고,

넓적하고 둥근 얼굴에는 눈꼬리가 긴 눈과 코, 굳게 다문 입 등이 묘사되었다.

양 귀는 길게 늘어졌고, 목에는 3줄의 삼도(三道)가 선명하다   

 

 

 

목 주위에는 뒤집힌 옷깃이 새겨져 있고, 가슴에는 흘러내리는 U자형의 옷 주름이 조각되어 있다.

가슴 앞으로 들어 올린 두 손은 손끝을 맞대어 부처가 설법할 때의 손 모양을 하고 있다.

이런 손 모양은 법주사 마애여래상(보물 제216)과 비교되는 것으로, 고려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본방 속리산 법주사 참조)


(법주사 마애여래상 보물제216호)

 

 

 

소고리마애여래불상의 머리 뒤에는 여섯 겹의 둥그런 머리 광배를 표현하였고,

몸 주위에는 두 겹의 거신광(擧身光)을 표현하였다.

근엄한 얼굴, 간략화된 옷 주름, 세부 표현의 형식화,

탄력이 줄어든 선각 등은 고려 초기의 작품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소고리 마애여래좌상은 불상의 전체 높이가 4.7m에 이르는 대형 마애불이다.

마애여래좌상을 정면에서 보았을 때 머리 대비 신체의 비율은 1:1.7에 이른다.

이러한 비율만을 놓고 보면 이 마애여래좌상은 머리가 과할 정도로 크게 조성되었으며

하체가 빈약한 기형적인 형태의 불상이 된다. 그러나 마애여래좌상을 참배하는 곳에서 보면

 신체 비율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마애여래좌상을 조각하기 위해

밑그림을 그릴 때부터 참배자의 착시현상을 고려하여 조성하였기 때문이다.

 

 

 

이 마애여래좌상이 조각된 바위는 산비탈의 경사면에서 솟아난 바위로

수직으로 서 있지 않고 마애불의 머리 부분이 뒤쪽으로 경사진 형태이다.

이러한 이유로 마애여래좌상에 예배하는 참배자들의 공간은

불상이 새겨진 바위의 바로 밑이 아니라 바위에서 밑으로 더 내려간 지점이 된다.

여기서 참배자들이 마애여래좌상을 바라보면 머리는 하체와 비교하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이유로 마애여래좌상을 설계하고 조각한 장인은 참배자의 착시현상을 고려하여

 머리를 매우 크게 조성하였다. 바로 그렇게 해야만 마애여래좌상이

참배객들에게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소고리 마애여래좌상의 근엄한 얼굴, 간략화된 옷 주름, 세부 표현의 형식화 등을 통해 볼 때

고려 전기에 제작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참배자의 착시현상까지 고려해 불상을 조성 하였다는 점에서

 해당 장인의 숙련되고 능숙한 솜씨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뒤에서 본 마애불이 조성된 바위 

 

 

마애삼존불이 조성된 바위 뒷모습. 

 

 

처음 이 바위를 보고 이 형상이 마애불인가 하고 의심했다.

왜냐하면 마애여래와 같은 방향에 있어야 할 마애불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인데

실제 마애불은 이 바위 앞에 조성되어 있었다. 입구에서 바위로만 보면 뒷 모습인 것이다.

다시말해 삼존불과 마애불좌상은 등을 지고 있는 형상이 된다.

 

 

@소고리 마애삼존불

마옥산(磨玉山) 부처바위라 불리는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에서

 약 7m 아래 지점에 있는 화강암 자연석(自然石) 위에 조각되어 있다.

협시불을 두고 있으며, 현재 이천시 향토유적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본존불(本尊佛)의 크기는 2.03m이다. 좌협시보살은 60cm, 우협시보살은 93cm이다.

 

이 삼존불(三尊佛)은 남서쪽을 향한 주형광배(舟形光背)에 가까운

편편한 자연석 면에 돌을 새김으로 조각되었으며,

모두 결가부좌한 좌상(坐像)의 형태이다. 안내서에서 밝히고 있듯

이 석불은 신라 시대의 토우(土偶)나 미개종족(未開種族)의 신상(神像)에서 볼 수 있는

 희화적(戱畵的)이고 과장된 표현이 특징을 이루고 있다.

 

 

바위면 상단에는 원호(圓弧)의 배수구(批水口)가 마련되어 있고,

하부에는 본존(本尊)에게만 연화좌(蓮華座)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매몰되어 있어 그 형태를 가늠할 수 없다.

중앙의 본존(本尊)은 머리 위에 굵은 선으로 두광(頭光)을 나타냈고,

머리에는 관모형(冠帽形)의 소발(素髮)이 있으나 보관(寶冠)을 표시한 것 같기도 하다.

 

 

 

얼굴은 긴 편으로 이목구비(耳目口鼻)가 도식화되어 있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으며

가슴에 대칭형(對稱形) 사선(斜線)을 그어 법의(法衣)의 의문(衣文)을 나타냈다.

양손 손가락을 벌려 손바닥을 내향(內向)해서 가슴에 대었고,

하단에는 결가부좌한 오른쪽 발바닥 면이 외향(外向)하고 있다.

 본존불에만 연화좌(蓮華座)가 있었으나 지금은 매몰되어 있다.

 

 

 

 

좌협시(左脇侍) 보살은 역시 굵은 선의 두광(頭光)이 있고,

머리는 맨머리인 듯하며 양손은 가슴에 마주 모으고 있다.

 

 

 

우협시(右脇侍) 보살은 높직한 관모와 삼도(三道)가 있으며,

양손을 가슴 앞에서 합장하고, 무릎 가운데 오른쪽 발바닥이 표시되어 있다.

 

 

 

 본존불의 높이는 203cm인데 좌협시 보살은 60, 우협시 보살이 93

전체적으로 균형이 맞지 않고 일반적인 불상 조성의 규범(規範)에서 이탈되고 도식화되어 있다.

그러나 소박(素朴)하고 장난기 어린 표현이 친근감을 더해 주는데,

조성연대는 대략 고려 중기 이후로 추정된다.

 

 

 

#<불교신문>에 나온 평을 보면,

 특이하다는 말로도 손색이 없을 삼존불은

마치 대여섯 살의 유치원생 정도가 그려놓은 부처님과도 같은 모습이다.

부처님이 누구인지 아직 잘 모르는 아이들이 동화책이나

어머니에게서 들은 부처님을 상상하며 그려놓은 것 같은 모습 말이다.

자유분방하기보다는 어눌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으며

어른들로서는 해학적이라는 표현도 어울릴 파격적인 모습이다.

이는 곧 삼존불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그 형상에 있어

불상 조성의 모든 정형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했다.

 

 

특히 본존불의 희화적(戱畵的)인 모습이나 우협시의 천진난만함,

비록 심하게 마모되어 있고, 또 검푸른 이끼에 덮여 있기는 하지만

 좌협시에서 드러나는 독특한 형상은 여느 마애불에서 느껴왔던 전혀 다른 감흥을 느끼게 한다.

 

 

 

#이 마애삼존불의 공통점은 모두 머리에 관모와 같은 모자를 쓰고 있다는 것이며

두 손을 가슴 근처에 모았다는 것이다.

조성 시기는 앞의 마애여래좌상보다 훨씬 뒤로 봐야 할 것이다.

 

 

 

 

 

 

 

마애삼존불 옆에 돌탑, 용신당과 샘을 만들어 놓았으며,

지장보살을 닮은 보주를 든 석상1기와 여자무속신을 조성해 놓았다.

이로 보아 이곳 마애삼존불은 현재 무속인들이 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