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대농리석불입상

2018. 5. 26. 18:41국내 명산과 사찰

안성 대농리석불입상

 

안성 대농리 석불입상(安城 大農里 石佛立像)은 경기도 안성시 대덕면 대농리에 있는 미륵석불입상이다.

굴암사에서는 약 10분 정도가 거리이며, 대농리 마을회관을 끼고 오른쪽 농로로 진입하면

 150m 지점에 작은 소나무 숲이 보인다. 그 솔밭 좌측에 커다란 나무 옆에 이 석불이 있다.

대농리 석불입상은 굴암사 석불 여래좌상과 마찬가지로

고려 시대 조성된 것으로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46호 지정되어 있다. (1983.9.19.지정)





  

이 불상은 미륵부처라 불리며, 높이는 2.2m의 석불입상으로

하반부가 묻혀 있어 전체적인 모습을 알 수는 없다.

전체적인 신체비례로 보면 이 불상의 머리는 신체보다 크게 보이며

머리에는 고려 시대 미륵불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정모(圓頂帽) 모양의 갓이 씌워져 있다.

나발(螺髮)이나 육계(肉髻)가 없는 민머리 얼굴로 타원형이며

 이목구비가 단정하게 표현된 후덕한 얼굴 모습을 짓고 있다.


 



귀는 어깨까지 길게 늘어져 있고, 법의(法衣)는 양어깨를 감싸고 있는 통견(通肩)이다.



오른손은 가슴 앞에서 보병(寶甁)을 잡고 있으며

왼손은 아래에서 보병을 받치고 있는 특이한 도상으로,

마치 바지춤에 손을 넣고 있는 듯한 해학스러운 형상을 띄고 있다.


 

이와같이 조각기술이 신라 시대와 비교하면 현저하게 떨어진 것은

 고려 건국의 주축이 지방 호족세력이었기 때문에 이 시대에 조성된 미륵불상들은

왕실과 사찰에서부터 옮겨와 민초들의 애환과 염원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된다.









그뿐만 아니라 고려 시대의 지방 세력들이 조성한 대표적인 마애 미륵불로는

안동 제비원, 파주 용암사 용현리 마래불, 고창 선운산 도솔암 마애미륵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지방 세력들이 조성한 대형의 미륵불들은 풍수도참 및 비보 신앙과 미륵신앙이 교섭되면서

 비보사찰과 비보석불이 조성되었지만

작은 마을에서는, 안성 대농리 마을의 이 미륵처럼

석불 조각에 대한 큰 기술이 없었던 민초들의 손에 의한

그들의 애환과 미륵하생의 원을 담아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미륵보살은 석가모니불이 열반한 뒤 567천만 년이 지난 후

인간세계에 나타나 용화수 아래에서 3번 설법하고

성불하여 석가모니가 구제할 수 없었던 중생들을 구제한다는 것이 보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