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불곡리 미륵석불

2018. 5. 17. 23:21국내 명산과 사찰



양평 불곡리 미륵석불


양평 불곡리 미륵석불은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불곡리

칠읍산(七邑山) 줄기의 하나인 부처울 마을 산기슭에 있는

미륵사 안에 봉안(奉安)되어 있는 석불입상(石佛立像)이다  






@대웅전(大雄殿)의 격을 높여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 할 때는

석가모니불의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모시고,

다시 각각의 좌우에 보좌하는 보살을 모신 경우인데

미륵불을 모신 전각은 대개 용화전, 미륵전, 자씨전 등으로

전각명을 삼는데 미륵사는 협시불을 두지 않았는 데도 미륵보전이라고 한 것이 특이하다.



  

불곡리 미륵불은 본래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을 약 250년 전에 발굴하여

처음에는 노천에 세워 두었었는데, 후에 보호각을 지어 안에 모셨다가,

50m 앞쪽에 미륵보전을 신축하면서 다시 옮긴 것이다.

현재의 이 석불은 좌대(座臺) 위에 직립(直立) 봉안되어 있는데 발굴 당시 지대석 유무는 알 수 없다  


  

석불(石佛)은 화강암 1석으로 조성(造成)해 놓았는데,

머리는 소발형(素髮形)에 육계가 있으나

 귀 부위까지 40두께의 원형보개(圓形寶蓋)가 씌워져 있다.

상호(相好)는 원만하며 양쪽 눈은 밑을 굽어보며 조는 듯한 모습인데,

양미안(兩眉眼) 사이에 금이 약간 나 있다.


 


 

양 귀는 큰 편이며 목은 짧으나 3()의 흔적이 있다.

옷은 통견(通肩)으로 좌우 양어깨에서 발목까지 3의 주름이 각기 옷섶을 타고 내려왔으며,

배 중심 부위에서 발목까지 원호(圓弧)의 의문(衣文)이 나 있어

종횡면(縱橫面)에서 하나의 조화미(調和美)를 나타냈다.





수인(手印)은 오른손을 가슴에 대고 왼손은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게 하여

배 앞부분에 대었는데, 동체(銅體)와 견주어 볼 때도 그 크기도 알맞고 자연스럽다.

이 미륵불은 전체적인 느낌은 이 중부권 일대에서 발견된 미륵석불상에 비하여

균형미도 뛰어나고 온화 하면서도 서민적인 단아한 느낌을 주고 있다.  








  

석불입상의 총 높이는 309, 어깨 폭 94, 중심 폭 96, 두께 29의 규모이다.

전설(傳說)에 의하면 신라(新羅) 선덕여왕(善德女王)

한 무명의 대사가 입산수도(入山修道)를 위해 금강산(金剛山)으로 가던 중

 목이 말라 옹달샘에 엎드려 물을 먹게 되었다.

이때 물속에 미륵불(彌勒佛)의 영상(映像)이 나타나

 손가락으로 가리켜 그곳 땅속을 파본 결과 매몰(埋沒)된 석불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미륵불이 묻혔던 곳에 절을 지어 미륵사(彌勒寺)라 칭했으나,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절은 폐사(廢寺)가 되고

미륵불만 남아 오늘날까지 이곳 주민들의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문(衣文)의 처리방식이나 전체적인 표현수법으로 보아,

불상의 조성연대(造成年代)는 고려(高麗) 중기(中期)의 작품으로 추정(推定)되며,

 적어도 초기 이전까지는 거슬러 올라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륵사에 봉안된 이 석불은 1986530일 양평군의 향토유적 제29호로 지정되어 있다  












  

미륵사의 전각은 석불을 봉안한 미륵보전이 유일한 전각인데

 주지 경진 스님이 2005년 완공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칸이며,

사방이 개방된 창살로 지어져 있어 석양 햇살이 비추면

신비스러운 느낌마저 들게 하며 닫집 또한 비천상과 극락조 등으로 화려하게 장엄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