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석불기행(3) 도곡리 석조여래 좌상

2018. 5. 15. 21:07국내 명산과 사찰

여주석불기행(3) 도곡리 석조여래 좌상(驪州道谷里石佛坐像)

 

앞서 포스팅한 계산리 마애여래입상과 포초골 석조미륵좌상과 더불어

여주 석불 연구에 대표적인 3대 석불 중 하나가 여주 도곡리 석조여래좌상인데

이 석불은 여주 금사면 도곡리 산7에 있다.

이 석불을 찾아가는 데는 위 주소로 내비게이션에만 의지해 길을 나섰다가 길을 잃을 확률이 높다.

 사실 필자도 석불 바로 앞에서 두 번이나 맴돌다가 다행히도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찾을 수 있었다.

 도곡리 석불은 정자 안에 모셔두었을 뿐 어느 사찰이나 유관단체가 관리하는 것도 아니고,

 석불 입구에 표시판이나 안내판이 없어 사실 외지인으로서

찾아가기는 힘든 것이 바로 이 도곡리 석불이다.

내비게이션으로는 지번(地番)보다 도로명 <금사면 아랫가마실길>을 찍으면

석불좌상이 있는 가마실 노인회관 앞까지 갈 수 있는데

여기에서 100m 정도 그대로 직진하면

좌측에 차량통행을 금지하는 작은 대리석 기둥 하나가 길 가운데 보인다.

이곳이 석불이 있는 입구가 된다. 그곳에서 50m 정도 언덕 위에 정자(보호각)가 보이고

그 정자 안에 이 석불이 있다. 직진하는 동안 그 중간에 우측으로 빠지는 길이

 2번 정도 나오는데 무시하고 그냥 직진하면 된다.






여주 도곡리 석조여래좌상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전체 크기는 307, 불상 크기는 193이다.

 원적산(圓寂山) 자락에 북동쪽으로 앉아 있는 이 석불좌상은

 팔각 대좌 위에 결가부좌의 자세로 앉아 있고 현재는 보호각 안에 봉안되어 있다.

머리칼은 나발(螺髮: 부처의 머리카락. 소라 껍데기처럼 틀어 말린 모양)이며

육계(肉髻: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

마모되어 거의 드러나지 않아 아쉽다.





경기지역 일대의 옥외에 봉안된 미륵보살의 수인을 보면

 왼손바닥을 펴 손전체를 내려뜨리고 오른 손은 펴 손바닥을 들어올리는 수인을 하고 있는 데

이런 경우 왼손을 여원인(與願印), 오른 손을 시무외인(施無畏印)이라 한다.

 그런데 도곡리 이 석불좌상이 미륵보살이라면  오른 손의 위치가 다르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석불상들은  서민풍이 배어 나는 불상이기에

 비록 수인은 다르지만  이 일대에 많은 미륵보살이 발견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도곡리 이 석불좌상도 미륵보살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사료해 본다.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고, 왼손은 엄지손가락을 손바닥 쪽으로 살짝 당겨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다리 위에 얹고 오른손은 가슴 부근에 대고 있다.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으로 넓게 트인

 대의(大衣: 설법을 하거나 걸식을 할 때 입는 중의 옷) 안에 내의(內衣)를 입었다.  




 






 

양팔에서 형성된 두터운 옷 주름은 양 무릎으로 흘러내려 <>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옷자락 일부는 그대로 흘러내려 양 무릎 위에 독특한 모양으로 표현되었다.

왼쪽 어깨 위에는 대의 자락을 고리로 고정해 삼각형 주름을 만들었다.

 등 뒤에는 간략하게 대의(大衣)의 윤곽선만을 나타냈다.



··하대로 구성된 대좌는 불상에 비교하여 작은 편이다.

상대석의 앙련(仰蓮: 위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8()이고

그 사이에는 간엽(間葉: 사이 잎)이 있다.

 연꽃 안에는 마모가 되었지남 두광(頭光: 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

신광(身光: 부처나 보살의 몸에서 발하는 빛)을 갖춘 불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처럼 상대석 연꽃 안에 불상을 표현한 경우는 다른 불상 대좌에서는 그 예를 찾기 어렵다.


 

중대석은 8각형으로 여섯 면에는 안상(眼象)을 음각하고 그 안에 서 있는 신장상을 새겼다.

나머지 두 면에는 완전 마모가 되었는 지는 몰라도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아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하대석에는 16개의 연꽃을 표현하였고 그 아래 8각형의 각 면에는 안상(眼象)을 새겼다.

 지대석은 현재 땅에 묻혀 있는데 세 조각으로 깨어졌다.

 (안상(眼象)이란 불상의 대좌나 석등, 석탑, 목조건축 등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연화문과 함께 많이 쓰이는 문양을 일컫는 말이다.)













뒤편에서 보면 나발(부처님 머리카락)이 거의 마모되어 있다.



도곡리 석조여래좌상은 얼굴 모습이나 왼쪽 어깨의 삼각형 주름, 양팔의 계단식 옷 주름,

··하단을 갖춘 팔각 대좌 등으로 보아 9세기 조각 양식을 계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근처 여주 포초골 미륵좌상(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5),

여주 계신리 마애여래입상(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8)과 더불어

이 지역 조각 양식을 살필 수 있다.

그리고 10세기 경에 제작된

봉림사지 석조여래좌상과 비슷한 수법을 보이고 있어

고려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